한국에서 ‘사회적 대타협’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12%를 조금 웃도는 노동조합 조직률, 산업별 노조체제의 미정착, 노동계 내부의 분열 등이 꼽힐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좀 더 근본적인 데서 원인을 찾을 것이다. 한국 자본주의가 갖고 있는 물적 토대의 취약성이다. 정부와 사용자가 양보할 수 있는 폭이 매우 적다는 얘기다. ‘세계화’와 ‘자본의 이동성’으로 무장한 ‘국내 사용자의 전투성’의 기초도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강력한 진보정당의 부재, 친사용자적 정부 등도 거론될 수 있다. 보수적 학자들은 ‘노조의 지나친 이념성과 전투성’이라는 지적을 빼놓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요즈음 들어 내 생각은 ‘수구언론’에 가장 결정적인 원인이 있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자 루이 알튀세르가 마련한 개념인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는 ‘시민사회’라는 개념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에서 수구언론은 시민사회의 일부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이다. 이전에 수구언론은 반공 파시즘 국가라는 ‘몸통’의 직접적 일부를 이뤘다. 반공 파시즘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수구언론은 시민사회의 일부로 자리잡기는커녕, 재벌을 ‘몸통’으로 하는 국가기구로 변신했다. 자신이 직접 전면에 나서서 시민사회 내부의 보수적 흐름을 한편으론 추동하고 다른 한편으론 제한하며, 탐탁치 않은 주인 아래에서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기존 ‘국가’와 맞선다.

수구언론은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

이 과정을 가속화시킨 ‘통과의례’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사태이다. 바야흐로 수구언론이 ‘시장’으로 말을 갈아탄 것이다. ‘시장’이라는 이름 아래, 상황에 따라 외국자본을 앞세우거나 재벌을 앞세워 변화를 모색하는 과도기 국가를 공격한다. 물론, 과도기 국가의 내부에 있는 ‘앙샹레짐(구체제)’적 요소들은 적극적인 견인과 육성의 대상이다. ‘반노동 적대주의’를 선동하며, 분배 담론을 ‘하향 평준화’나 ‘결과에 대한 평등’이라고 매도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옹호하는 ‘기회의 평등’을 위해 필요한 각종 조세개혁에는 ‘조세저항이 우려된다’며 딴지를 건다. 편법적인 상속ㆍ증여를 막기 위한 세제개혁 때도 그랬고, 부동산 보유세의 강화 때도 그랬다. ‘경제가 어려운데 개혁이 왠말이냐’이거나 ‘재벌개혁이 밥 먹여 주냐’는 식의 가시 돋친 막말도 서슴지 않는다.

23만4,000여명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가운데 학교영양사, 상시 위탁집배원, 사서 등 4,600여명은 공무원으로, 환경미화원ㆍ도로보수원 등 2만7,000여명은 상용직으로 전환하고, 임금 인상 등을 통해 학교조리사 등 6만5,000여명의 처우를 개선한다는 정부의 기초적인 비정규직 대책에 대해 갖가지 이유를 들이대며 비난한다. “과연 (경제가 어려운) 이 시점에서 꼭 필요한 정책이었는가”(중앙 5월20일치 사설)라는 속 보이는 시기상조론에서부터, “‘안 되면 말고’식 비정규직 대책”에 쓰이는 재원 1,600여억원은 정부가 흥청망청 낭비하는 돈(조선 5월20일치 사설)이라는 비난까지 다양하다.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위해선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동결 등이 필요하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떠들어대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탈법ㆍ불법적 불공정 거래행위를 통해 벌어들인 이윤으로 해마다 뻔뻔스럽게 ‘봉급 잔치’를 벌인다.

수구언론은 철도ㆍ화물ㆍ항공 등 물류 관련 민주노총 산하 노동조합들이 오는 6월 중순 출범시킬 ‘전국운수노동조합연대회의’에 대해 “사실상 공동투쟁본부”(중앙 5월21일치 2면)라고 낙인을 찍으며 일반인들의 불안감을 한껏 부추긴다. 현재의 경기 불황에 대해 “경쟁국과는 달리, 한국경제가 홀로 겪고 있는 불행”(조선 5월21일치 송희영 칼럼)이라는 허위사실도 유포한다.

‘노동자 힘’ 언론개혁에 쓰자

수구언론은 ‘시장’을 신비한 ‘블랙박스’로 만든다. “시장의 급변은 시장 자체의 책임”(중앙 5월15일치 분수대)이라거나, “자연스럽게 상거래가 이루어지는 장소나 수요-공급이라는 거래 당사자간의 관계(=시장)를 정부가 나서서 뜯어고쳐야 할 근거와 이유가 없다”는 ‘말장난’만이 난무한다. ‘시장은 하나의 제도’이며, 그래서 고칠 수 있는 대상이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노동계(민주노총과 한국노총)는 ‘재벌을 사회적 대타협의 장으로 나오게 할 만큼은 아니지만, 수구언론과 재벌의 참주선동에 굴하지 않을 만큼은 강한’ 힘을 갖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제 그 힘을 일상적 조직 시스템 차원에서 언론개혁에 사용할 때가 됐다. 동시에, 노동계 내부의 여러 정파와 현장조직들은 98년 1기 노사정위원회 당시의 ‘엄청난’ 합의사항들을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다. 대법원의 정리해고 요건 4가지를 근로기준법에 명시했다는 이유로 ‘정리해고 팔아먹었다’고 비난하며 강압적 분위기를 연출했던 그때를 차분히 돌아봐야 한다는 얘기다. 우리를 바꾸고 벼리기 위해서다.

조준상 전국언론노조 교육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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