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나 다를까. 재계와 보수언론들이 난리다. 금속산업연맹 자동차분과가 협상의제로 내놓은 ‘사회공헌기금’에 대해 앞 다투어 나라가 망하기라도 할 것처럼 호들갑이다. 노동부 장관이 20일 기자 간담회에서 이 문제의 공론화 필요성을 언급한 뒤 일제히 포문을 열었다.

노동자 대표들의 생각은 이러했다. 당기순이익의 5%를 출연해 산업발전과 비정규직 처우개선 등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에 쓸 기금을 조성하자는 내용이다. 이른바 기업활동을 통해 번 이윤의 일부를 사회 전체를 위해 사용토록 하자는 것이다. 더구나 기업의 이윤에는 주주와 경영진뿐만 아니라 종업원들의 몫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노사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다면 구체적인 비율과 사용처에 대해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대화할 수 있다고 했다.

경총은 여기에 대해 ‘큰 우려’를 담은 성명을 발표했다. 우선 기업의 이익에 대해 기금조성을 요구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노사간의 교섭대상이 아니라는 것이고, 이렇게 사회공헌기금으로 비정규직 처우개선이나 고용보장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사용자의 ‘일방적’ 부담으로 전가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대기업 노조들이 진실로 비정규직을 위한다면 과보호된 정규직의 근로조건 조정, 고용유연성 확보 등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라는 주장이다.

가관인 것은 한국경제신문의 22일자 사설이다. “기업이윤 ‘유용’이 사회공헌인가”라고 아주 자극적인 제목까지 달았다. “기업 이익의 일부를 강제적으로 갹출하는 것은 그 목적과 의도가 무엇이든 자본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잘못된 발상”이라며, 노조의 구상이 실현될 경우 “기업 부담이 지나치게 늘어나 경쟁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게 되고 새로 투자할 재원도 줄어들어 결국 장기적으로 기업은 몰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이에 “그런 결과를 초래한다면 결국 기업자금을 ‘유용’한 것과 다르지 않다”라는 것이 그 신문의 결론이다. 극단적인 발상과 단계적 비약의 방법이 여기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매일경제와 조선일보도 이와 비슷한 사설과 논평기사를 냈다. 그리고 대부분의 신문들이 ‘경총’발, ‘경제부총리’발 반격 기사들을 쏟아냈다.

노동착취와 환경파괴 등에 반대하면서 사회적으로 책임을 다하는 기업들에게만 돈을 투자하자는 ‘사회적책임 투자(Socially Responsible Investment, SRI)’가 국내에도 조금씩 소개되고 있다. 자본주의의 심장부인 미국에서 이 운동을 이끌고 있는 사회적투자포럼(SIF)은 최근 발간된 <2003년 보고서>에서 2001년과 2002년 기간 동안 전반적인 투자총액이 4% 감소하는 침체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책임투자는 7% 이상 증가세를 보였고, 2003년말 현재 19조2천억달러에 달하는 미국내 총 투자자산의 약 11%가 SRI에 참여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특히 주주들에 의한 사회적책임투자 결의가 2003년에만 310건에 달해 2001-2003년 기간 동안 15%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세계가 어찌 돌아가는지 엄혹하게 보라고 매양 말하지만, 진짜 세계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 지는 제대로 보지 않으려 한다. 투자자와 기업들이 이윤에만 혈안이 되어서는 경쟁에서의 진정한 승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이러한 변화의 교훈이다.

그러니 진보정당의 원내진출도 제대로 예견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묻고 싶다. 그저 한나라당이 압승할 줄 알고 ‘차떼기’로 내어 준 수백, 수천 억원의 돈이야 말로 명백한 기업자금 ‘유용’이고, 그 비자금에 비정규직 하청노동자와 종업원들의 피땀이 묻어 있다고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

책임 있는 노사 대표가 머리를 맞대 논의한 다음, 문서로 서명하고 사회 구성원들에게 공공연히 약속하면서 투명하게 운영될 수밖에 없는 ‘사회공헌’ 기금을 기업자금 ‘유용’이라고 규정하는 그 발상은 도대체 어떤 책임의식에서 나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다단계의 사내외 하청 관계로 짜여진 생산구조 하에서 모든 이윤이 집적되는 정점에 있는 대기업의 정규직 노동자가 기업 내부의 이익배분에만 매달리는 것을 우려할 수는 있다. 사회공헌기금 논의가 성숙한 노사관계를 만들어가는 시발점이 될 수도 있는 이유다. 그러니 자꾸만 불안과 갈등을 조장하는 그 행태는 이제 좀 멈추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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