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예약행사가 있는데 파업은 막아야겠기에 도장 찍어줬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이거 다 지키면 호텔은 망합니다"

경기도 이천시 안흥동에 자리한 도내 최대규모의 호텔, 미란다(대표이사 문병근)가 몸살을 앓고 있다. 4월22일 노조의 전면파업에 호텔이 직장폐쇄로 맞설 당시만 해도 특별히 심각한 사태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노조의 조업복귀 통보에도 불구, 호텔이 50일 가까이 직장폐쇄를 풀지 않으면서 극한대립의 징후가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기자가 이 곳을 방문한 현충일 오후, 호텔 주차장에는 직장폐쇄 중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승용차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전 업장이 정상영업중입니다'라는 플랭카드가 이 곳의 비정상적인 직장폐쇄를 묘하게 '자인'하고 있었다. 꼭지만 보이는 깃발을 나침반 삼아 주차장 한 켠에 위치한 노조의 농성천막을 찾아갔다.

"날씨가 더워 애를 먹고 있습니다만, 단 한명의 대오도 이탈하지 않고 있습니다" 김태원 노조위원장(32세)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햇볕을 피해 천막으로 모여든 조합원들은 아직 '싱싱해' 보였다. 장기간의 천막농성으로 심신의 피로가 적지 않을 텐데도 전열이 흐트러지지 않고 있는 데는 무언가 특별한 이유가 있어 보였다. 그들이 밝힌 이유는 간단명료했다. '분하다'는 것이었다. 무엇이 비정규직 29명을 포함, 70명 남짓한 젊은 노조원들을 열혈투사로 만들어 버린 것일까?

* 일년 동안 다섯 차례 노사합의서 작성

대상그룹의 계열사였던 호텔미란다는 지난 해 1월1일 주식회사 썬앤문에 매각됐다. 그런데 그 이후의 노사갈등은 오너가 바뀌고 경영진이 교체되는 변화속에서 일반적으로 추측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다.
고용승계 및 단협승계를 문제를 둘러싸고 빚어진 1월4일의 파업을 비롯 지난 해에만 세 차례의 파업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노사는 1월5일, 3월15일, 4월2일, 5월29일, 9월21일 모두 다섯 차례나 노사합의서를 작성했다. 이 가운데 임단협과 관련, 파업돌입 직전에 체결한 5월29일의 노사합의서가 핵심이다. ▲비정규직 3개월 이내 정규직 전환 ▲정규직 적정인원 유지 ▲하도급 및 용역 전환시 노조와 사전합의 등 31개항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노사합의는 지켜지지 않았다. 심지어 지난 해 9월21일 고소고발을 취하하면 노사합의를 재확인하겠다는 호텔의 제안을 받아들여 노조가 20여건의 소를 취하하고 9월21일 체결한 합의서 마저 휴지가 돼 버렸다.

*"평화적으로 대화를 해야 합니다"

최영수 사장을 만난 것은 '정상영업' 중인 호텔 커피숍에서였다. 주차장과는 달리 실내는 무척 한산했다. 노사 극한대립의 와중에서 영업도 난조를 보이고 있는 것 같았다. "주말에는 '만실(滿室)'이 돼야 수지가 맞을 텐데 지난 주말에는 40%도 겨우 채웠다"며 최영수 사장은 안타까워 했다. 또한 5월17일 800명 짜리 예약행사가 취소된 것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노사합의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을 솔직히 시인했다. 그러면서 그가 제시하는 사태의 해법은 이런 것이었다. 쟁의신고를 철회하고 파업을 재개하지 않겠다는 굳은 약속과 함께 건전한 협상안을 제출할 경우 직장폐쇄를 풀겠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호텔영업의 특성상, 직장폐쇄를 풀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동석한 주소돈 관리이사는 덧붙여 "휴전기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닷새고 열흘이고 일체의 쟁위행위 없이 교섭에만 진력할 시간을 갖자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사태에 원인은 무엇일까?

*일년동안 호텔미란다에서 일어난 일들

노사합의에 대한 위반이 밥 먹듯 이뤄지는 동안 호텔미란다는 격변에 가까운 체제 개편이 이뤄졌다. 최초의 변화는 정규직의 대폭적인 감소였다. 호텔측은 정규직원에 퇴직위로금을 지급하고 비정규직으로 재취업 시키는 방식과 정규직의 퇴직 이후 비정규직을 채용하는 방식으로 고용구조를 개편해나갔다. 또한 3개월 이내 정규직으로 발령토록 돼 있는 단협도 지키지 않아 정규직의 수가 급감했다. 이 과정에서 노조원도 대폭 줄었다. 썬앤문 인수 당시 만해도 120여명이던 조합원이 올해 초에는 불과 36명으로 줄어들었다.

호텔은 또한 객실을 제외한 모든 영업장에 소사장제를 도입했다. 영업장 매출의 77%를 호텔이 가져가고 23%로 소사장과 그 휘하의 비정규직, 아르바이트생들의 임금이 지급됐다. 특이한 것은 소사장제가 실시 중인 영업장에도 버젓이 호텔미란다의 정규직이 뒤섞여 근무한다는 사실인데, 이들 정규직에 대한 임금만큼은 호텔측이 부담하고 있었다. 이같은 기형적인 구조에 대해 호텔측은 "파견근로로 보기 때문에 호텔이 직접 월급을 주되, 단 그 금액만큼은 소사장이 호텔에 추가 지급한다"고 답했다. 미란다 호텔 정규직의 현주소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노조에서는 봉사료를 징수하는 영업장을 객실로 한정해 다른 영업장에서 징수되던 봉사료를 착복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회사는 고객 및 종업원 보호의 명목하에 각 영업장별로 CCTV는 물론 도청장치까지 설치한 뒤 지금까지도 철거하지 않고 있다.

*단협 실효성 확보가 핵심 쟁점

호텔미란다사태에 대해 김태원 노조 위원장은 단체협약의 실효성이 확보되지 않고 있는 것을 핵심적인 문제로 꼽고 있다. 회사측이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사항, 즉 임금관련 문제에 대해서는 지키려는 노력이라도 기울이지만, 민사소송의 대상이 되는 사항들에 대해서는 큰 부담을 갖지 않는다고 김 위원장은 말했다. 결국 호텔미란다의 노사대립은 98년3월26일 헌법재판소의 단체협약위반 형사처벌 위헌 판정 이후 예견됐던 수많은 부작용의 또하나의 사례라는 얘기다.
최근 노사관계를 '게임'의 논리에 견주어 해석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룰'을 중요시하고 '페어플레이'를 강조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런데 호텔 미란다는 우리식 노사관계의 게임에 결함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룰'을 위반했을 때 이를 제재할 '페널티'가 제기능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호텔 미란다는 룰이 지켜지지 않는 게임은 언제라도 이기기 위한 '싸움'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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