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9일 정부는 공공부문 전체 노동자 125만명 가운데 18.8%(23만 4천명)를 차지할 만큼 무분별하게 확산된 공공부문내 비정규 고용문제에 관해 대책을 마련하여 발표했다. 그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면 △상시위탁집배원, 학교영양사, 도서관 사서 등의 공무원화(4,619명) △이용석 열사가 소속된 근로복지공단 계약직의 정원확대 (740명) △직업상담원, 환경미화원, 도로보수원의 고용안정성 보장(26,634명) △그밖에 학교 조리보조원 및 정부부처 사무보조원의 처우개선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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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조치는 모든 사회보호 정책의 수립과정에서 경험하듯이, 정부부처 협의단계에서 경제부처와 기획예산처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당초 노동부가 마련한 10만명 정규직화 방안보다 훨씬 후퇴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9년부터 비정규 고용의 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등장한 이래 가시적인 조치나 법제도의 개선은 수반되지 않은 채 논의만 무성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정부의 조치가 갖는 의미는 자못 크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공공부문이 노동시장에서 선도적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향후 차별과 저임금, 무권리 상태에 노출되어 있는 780만 비정규 노동자의 문제를 풀어가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인지 주목된다.

지금까지 거의 법적인 제약 없이 마구잡이로 비정규 노동을 남용해 오던 재계는 이번 조치로 불똥이 튈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들은 정부의 이번 조치가 ‘민간부문으로 그대로 적용되어서는 안된다’라며 경계심을 표명하면서 노동시장이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재계의 기득권 유지 전략은 비정규 고용이 전체 임금노동자의 56%를 차지할 만큼 방대해져 우리 사회가 감내할 수준을 훨씬 넘어섰을 뿐 아니라, 2001년 한국통신 계약직노동자의 목동전화국 점거에서 볼 수 있듯이 노동자들의 극단적인 투쟁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사회불안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애써 외면하기 때문에 사회적 공감을 얻기 어렵다. 더욱이 우리는 이미 이용석, 박일수 열사 등과 같이 비정규 노동자들의 분신사태를 경험하지 않았던가.

한편 노동계는 정부의 조치가 근본적 대책이 아니라, 마지못해 하는 생색내기용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즉, 집배원은 이미 노사합의로 공무원화를 추진하기로 합의했으며, 환경미화원 역시 이미 상용직 신분을 가지고 있는 노동자라는 것이다. 정작 정규직화 해야 할 학교조리보조원이나 정부부처의 사무보조원 등 6만5천여명이 제외됨으로써 기본취지가 실종되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재계와 노동계의 엇갈린 반응에도 불구하고, 이번 조치가 반대자들의 눈치 때문에 부실해지고 미흡한 점이 많은 것은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정부가 지난 3월 18일 국가인권위원회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인권실태조사’에서 아래와 같이 제시한 비정규직 정책의 기본방향을 충실히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첫째, 핵심업무, 상시적 업무를 수행하는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해야 한다. OECD의 공공행정위원회(PUMA : Public Management Committee) 발표(2000, 2001)에 의하면 우리나라 전체 공공부문 종사자 수는 1998년 기준 전체 고용의 4.5%에 불과하며, 인구 대비 공무원 비율(1999년 기준)도 1.8%에 불과해 최하위 수준이기 때문이다.

둘째, △공공행정과 공공서비스의 안정적 운영을 위한 정규고용의 원칙 △비정규직 채용의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요건과 사유를 담은 통일적인 ‘관리지침’을 만들어야 한다.

셋째, 아무런 규제 없이 날로 늘어나는 민간위탁에 따른 간접고용에 대한 후속조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들은 간접고용이라는 이유만으로 공공부문 실태조사와 대책에서 아예 제외되어 있고, 최저임금 수준의 열악한 조건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우리사회의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한 비정규 고용 문제의 해결은 정부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조치가 일회적인 미봉책이라는 비난을 면하려면, 실효성을 담보하면서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또한 민간부문의 비정규직에 대한 법적제도적 개선으로 이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국제노동기구(ILO)가 선언했듯이, 우리는 권리를 보호받고, 적정한 수입이 보장되며, 사회적 보호가 수반되는 양질의 노동(Decent Work) 사회를 향해 전진해 가야 하기 때문이다.

조진원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chojw@kcw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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