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는 주주총회에서 노조가 추천하는 사외이사가 선출된 것이나 노사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합의한 것에 대해서도 예외적인 사건으로 치부하고 싶을 것이다. 자신들이 지배해 온 독과점체제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시장원리에 따른 공정경쟁을 주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단체의 목소리가 자못 커지고 있다. 볼멘 소리 정도가 아니라 사뭇 날이 서 있는 듯하다. 상대는 노동계와 정부 양 갈래다.

지난 4월 25일 출자규제가 투자를 저해하는 주범이라고 주장한데 이어 5월 5일 경제5단체장들은 “정규직 지상주의가 고용시장 악화를 초래한다”고 노동계를 비난하였다. 이어 7일에는 부회장들이 긴급회합을 갖고 대우종합기계 매각과정에 노조가 참여하는 것에 대해 강하게 반대하였다.

이들은 노조의 경영참여는 경제원칙을 무시한 경영권 침해행위로써 기업활동을 위축시키고 외국인투자도 감소시킬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비정규직 문제도 정규직의 임금이 지나치게 높은데서 생긴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아울러 이들은 정부가 추진중인 공정거래법 개편과 관련하여 출자총액제도 폐지, 금융회사 의결권 축소 반대, 계좌추적권 연장 철회 등을 내세웠다. 신용불량문제와 내수부진으로 어려운 판에 기업의 투자를 더욱 위축시킨다는 이유였다. 요컨대 경제계는 노동계에 대해 경영참가와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해결은 불가하다는 것을 선언하고 정부에 대해서는 재벌개혁을 취소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계 전면공세가 뜻하는 것

경제계는 막대한 자금력을 갖고 있다. 수구언론 매체와 지식인들을 동원하여 자신들의 주장을 대변케 함으로써 여론을 조성하고 자신들의 공통의 이해를 관철시킨다. 여기에는 고도로 정밀하게 계산된 의도와 목표가 있을 터이다. 그렇다면 이번 공세에는 어떤 뜻이 담겨 있는 것인가?

먼저 최근 정치정세의 변화에 대비한 선제의 의미가 커 보인다. 곧 지난 총선의 결과로 정부가 노동계에 끌려가지 않을까 우려한 나머지 미리 못을 박아두자는 것이다.

이것은 민주노동당이 국회에 진출한데 대한 자본가들의 반응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전경련이 회원사를 상대로 노동계 정당의 국회진출이 노사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40.8%는 노사관계 입법이 노동계에 유리해질 것이라고 답했고 31.8%는 정치투쟁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노조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어 노사관계가 안정될 것이라는 희망은 10.9%에 불과하였다. 여기다 진보와 개혁을 표방한 열린우리당이 민주노동당의 요구를 거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경제계는 보고 있는 것이다.

이 발상에는 작년 참여정부 출범 이후 대대적으로 노무현 대통령과 노조진영을 공격하여 둘 사이를 갈라놓고 결국은 정면대결 양상으로 몰아간 짜릿한 성공의 추억이 작용하였을 것이다.

노조의 임단투에 대한 대응책으로서의 비중도 매우 높아 보인다. 올 노동계의 요구가 주5일제와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에 집중되어 있음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주5일제는 국민의 70%가 동의하고 있다. 전체 노동자의 60%에 육박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는 단순한 노사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가 된 지 오래다.

작년 말에서 올해로 이어지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항의 자살이 이를 잘 말해준다. 게다가 정부가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자 - 물론 그것도 전체 23만명 중에서 겨우 3만3천명에 불과하지만 - 재계는 조바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런 조건들은 반기업 정서가 광범하게 확산되어 있는 상황에서 기업에게는 강한 압박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경제계는 정규직 노동자의 상대적으로 높은 노동조건을 거듭 강조함으로써 정규직 노동자의 이기주의를 부각시키고 노조의 임금인상 공세를 무력화시키려 한 것이다.

한편 경제계가 정부나 노동계에 들이미는 무기는 투자기피론이다. 이처럼 장기적으로 경기가 침체한 상황에서 노조가 투쟁을 벌이고 정부가 재벌개혁 정책을 강행하면 투자를 꺼리게 되고 외국인 투자도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이다. 재계의 이런 주장이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하는지는 이미 김대중 정부 때 경험한 바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재벌의 금융지배 방지, 순환출자 억제, 변칙상속 근절이라는 세가지 재벌개혁원칙에다 투명성 제고, 경영진의 책임 제고를 추가하여 재벌개혁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4.13 총선거에서의 패배와 경기후퇴에 직면하여 김대중 정부는 사실상 계획을 백지화하였고 재벌개혁의 핵심고리인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종이호랑이로 전락하고 재벌의 금융지배는 사실상 관철되었다. 그 후 경제계는 계속 재벌개혁의 허점을 비난하였지만 그 주장이 얼마나 허구인가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렇게 밝히고 있다.

2001년 4월부터 2003년 4월 사이 재벌들이 신규투자의 핵심인 회사설립에 쓴 돈은 전체의 7.9%에 불과하고 66.3%는 다른 회사의 주식을 사들이는데 쏟아부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경제계는 시치미를 떼고 큰 소리를 치고 있다. 여기에다 정부의 경제부처나 정치계에는 든든한 우군들이 버티고 있다. 재경부나 산자부, 일부 국회의원들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해 경기침체나 투자기피 따위의 이런 저런 이유를 달아 시장에 맡기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독점적 발상으로 노사관계 발전은 어려워

경제계는 대립적이고 소모적인 노사관계를 청산하고 상생의 노사관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성장우선론의 관점에서다. 이 논리에 따르면 노동자의 요구는 자제되어야 하고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무한정 허용되어야 한다.

이들에게 노조는 동반자가 아니라 여전히 경영의 효율성을 저해하는 배제와 경계의 대상일 수밖에 없고 경영참가는 노동자의 자발적인 참여를 위한 제도적 틀이 아니라 자본의 고유한 영역을 넘보는 위협요소로 보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들이 의도하지 않는 새로운 변화는 이단으로 매도하거나 애써 외면하려는 경향을 나타낸다.

작년 현대자동차에서의 노사합의를 둘러싼 경제계의 반응이 그 대표적인 예이지만 얼마 전 현대증권 주주총회에서 노조가 추천하는 사외이사를 선출한 것이나 금호타이어 노사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합의한 것에 대해서도 예외적인 사건으로 치부하고 싶을 것이다. 이 같은 제왕적 논리는 정부 정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자신들이 지배해 온 독과점체제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시장원리에 따른 공정경쟁을 주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경제계가 아무리 경제의 어려움을 호소해도 노조의 불신이 가셔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모순된 논리와 공격적인 태세로는 노동계와의 불화만을 돋굴 뿐이다.

이 점에서 경제계 편이라는 중앙일보와 현대경제연구원이 조사한 최근의 결과는 시사한 바가 많다. 그에 따르면 조사대상자 가운데 노사갈등의 책임이 사용자에게 있다는 쪽이 58.6%이고 40세 이하에서는 71.2%나 된데다,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갈등요인으로 47.5%가 빈부격차를 들었다고 한다.

이것은 경제계가 주장한 것처럼 반기업 정서가 진보적인 매체나 노조 또는 시민단체의 선동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매우 뿌리가 깊은 역사적 유물이자 변화를 거부한 채 스스로 자초한 결과는 아닌지 돌이켜 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오랫동안 정부의 과보호와 특혜 속에서 총수 중심의 폐쇄된 권위주의 경영구조를 그대로 온존시킨 결과는 아닌지, 경쟁력 강화를 내세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내팽겨쳐둔데 대한 국민 일반의 반감은 아닌지 깊이 새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원보|본지 논설위원
leewb@klsi.org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