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원자재 싹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중국 경제는 최근 2~3년 동안 투자가 붐을 이뤘다. 2003년 성장률은 9.1%나 됐고, 이런 추세는 올해로 이어져 1분기에는 거의 10%에 육박했다. 덩달아, 중국에 붙는 ‘세계의 공장’이란 형용사의 의미가 우리에게 점점 또렷해지고 있다. 기업의 해외이전, 투자의 해외 유출 등 산업 공동화, 이에 따른 일자리 수출이 그것이다.

이런 우리에게 지난 4월29일 원자바오 총리의 중국경제에 대한 경기과열 경고가 계기가 된 ‘차이나 쇼크’는 착잡하게 다가온다. ‘세계의 공장’으로 꼽히는 중국에서 대지진이 시작된 것일까. 아니면, 성공을 향한 일시적인 진통에 불과한 것일까. 중국경제는 ‘거품 붕괴’의 우려를 벗고, 목표대로 7%대 성장세로 연착륙할 것인가.

일찍이 중국의 개혁ㆍ개방이 자본주의 세계경제에 갖는 함의는 이매뉴얼 월러스틴이나 조반니 아리기와 같은 세계체제론자들에 의해 주목됐다. 이들의 주장은 “중국은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마지막 변경”이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내부와 외부의 변경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해 왔는데, 중국은 그 마지막 변경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세계경제로서는,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 그 자체가 성장 동력의 고갈을 의미한다.

‘중국의 부상’ 앞으로의 경로 4가지

세계체제론자들은 주변부에서 반주변부로 도약을 꿈꾸는 ‘중국의 부상’이 앞으로 걸을 수 있는 경로를 네 가지 정도로 꼽는다. 하나는 ‘중국의 실패’다. 반주변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부실채권과 과잉투자 속에 허덕이며 축적체제가 붕괴하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세계체제론자들은 중국이 반주변에 진입하지 못하는 것이 자본주의 세계경제에 주는 충격이 가장 적다고 말한다.

중국이 완전히 반주변으로 도약하고, 중국과 기존 반주변 국가들(한국, 대만, 브라질, 칠레, 이스라엘 등)의 경쟁 격화로 생활조건이 한 곳으로 수렴하는 경로도 있을 수 있다. 수렴의 방향은 중국의 생활수준이 기존 반주변으로 상승하거나, 기존 반주변의 생활수준이 중국으로 하강하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한국 안에서 사용자단체들과 수구?보수 언론에서 끊임없이 제기하는 ‘중국의 인건비는 한국의 몇 십분의 1’이라는 식의 주장은, 생활수준을 중국 수준으로 낮춰가자는 함의를 갖는다. 세계체제론자들은 아래로 수렴하는 이런 두 번째 경로를 ‘기존 반주변의 주변화’라고 부른다. 자본주의 세계경제에서 반주변이 갖는 ‘양극화의 완충판’ 구실을 감안할 때, ‘반주변의 주변화’는 자본주의 세계경제 차원에서 ‘정치적 불안정’과 ‘수요의 감소’를 뜻하게 된다. 이는 기존 반주변 국민국가 안에서 물적 토대가 취약해지는 정부와 사용자가 점점 노동배제적인 모습을 띠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중국의 생활수준이 (중국 노동자들의 투쟁이나, 미국 및 기존 반주변 국가들의 다양한 경로를 통한 압력에 의해) 기존 주변부로 상승한다면 어떨까. 이 경우는 한국이나 대만 등 기존 반주변이 경쟁력을 유지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현재 노무현 정부가, 그리고 어쩌면 한국에 사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경로다. 하지만 이 세 번째 경로에 따를 경우에도 기존 주변부에 거대한 재앙이 찾아온다는 게 세계체제론자들의 분석이다. 세계인구의 5분의 1에 이르는 중국의 거대한 인구 규모를 감안할 때, 중국의 생활수준 향상은 에이즈 환자가 2900만명에 이르는 사하라 사막 이남에 있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궁핍화를 더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미 보츠와나나 짐바브웨의 경우 앞으로 10년 안에 성인인구의 절반이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마지막 경로는 ‘중국에 의한 반주변의 대체’, 곧 중국의 생활수준이 상승하면서 기존 반주변을 완전히 대체하는 경우이다. 세계체제론자들은 중국에다 인도나 러시아와 같은 나라들을 함께 대입해도 이런 네 가지 시나리오는 적실성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강조한다. 간단한 ‘사고실험’을 해보자.

2005~2025년 동안 세계경제는 연평균 3.5%, 중국경제는 목표대로 7.5% 성장한다고 하자. 20년 뒤 세계 총생산(구매력평가 기준)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4%에서 30%로 높아진다. 중심부에 있는 선진국들이 해마다 3.5% 성장하며 자신들의 몫(55%)을 유지한다면, 기존 반주변과 주변의 비중이 16%포인트 감소한다는 얘기다. 이는 기존 반주변부와 주변부 국가들의 연평균 성장이 2.4%, 인구증가율을 2%라고 할 때 20년 동안 1인당 소득증가율은 0.4%에 그치게 된다는 얘기다.


‘저항’으로 시작한 영화 <매트릭스>의 결론은 결국 ‘타협’ → ‘공존’으로 이어진다. 이 영화 속에서 ‘네오’와 ‘스미스’는 매트릭스 안의 존재이면서 그 통제를 벗어나는 매트릭스의 경계를 상징한다. ‘세계의 공장’ 중국이 바로 그런 존재에 가깝지 않을까. 현실은 영화와 같을까.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삶터의 초토화를 그나마 최소화시킬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조준상 전국언론노조 교육국장 (cjsang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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