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 /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 선암사 해우소 앞 /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조계산 북쪽 중턱 송광사 저녁 예불도 놓치고 싶지 않았지만 같은 산 동남쪽 기슭에 있는 선암사(仙巖寺)를 찾았다. 꼭 정호승 시인의 글이 아니래도 석연치 않았던 한 덩어리 짐을 덜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절 뒤편에는 조계산에서 내려온 물이 돌로 만든 세 개의 큰 그릇에 담겨져 차례로 내려온다. 돌 모양은 각기 다른데 제일 처음 것이 거의 사각형에 가깝고, 다음은 조금 둥글어지고 그 다음은 거의 원에 가깝다. 스님의 말씀은, 사람의 마음도 저와 같아 수양을 할수록 모가 없어지고 포용력 있는 둥근 그릇이 된단다.

사립문을 열고 나서면 뒤편 야산에서 동백과 어우러진 차밭을 만나는데, 주지인 지허스님의 노력에 힘입어 선암사의 우리 차는 한국 전통차의 맥을 가장 완벽하게 이어온 점이 인정돼 ‘가마금잎차’라는 이름으로 브리태니커사에 납품되기도 했다 한다.

산빛 깨치고 달려드는 절의 풍광에 빠져있다보면 어느 새 해질 녘인데 서둘러 속세로 돌아가지 말고 법고소리 가슴 저미는 저녁 예불을 놓치지 말길.


아 참, 선암사는 임권택 감독의 ‘아제아제바라아제’의 마지막 장면을 촬영한 곳이기도 하고, 소설가 조정래의 아버지 조종현이 승려로 있었던 사찰이기도 하다. 해방 당시 선암사 부주지였던 조종현은 “절은 대중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절은 소작인들을 거느려서는 안된다”며 실천불교와 사회개혁에 앞장선 것으로 알려지며, <태백산맥>에서 “절 소유 토지는 소작인에게 무상 분배해야 한다”고 나섰다가 빨갱이로 몰리는 ‘법일스님‘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 찾아가는 길 : 광주나 순천에서 직행버스나 시내버스를 타거나, 호남고속도로에서 승주IC를 빠져 857번 지방도를 따라가다보면 선암사가 나온다.


이정희 기자(goforit@labo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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