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이 과반을 차지하고, 민주노동당이 10석을 확보하면서 결국 정치권이 전체적으로 좌향좌를 한 것인데, 이 나라가 복잡한 상황으로 갈 것 같다. 경제성장은 안 되고 사회가 시끄럽고 이념적 대립이 강화하면서, 성장의 동력이나 여력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우려된다.”(조선일보 4월19일치 A6면 ‘정치권 좌향좌 … 나라 어지러워질 것’)

김문수 한나라당 의원의 말이다. 정치권이 전체적으로 좌향좌를 해서 나라가 어지러워진다는 얘기다. 이런 우려는 또 있다. “열린우리당 내 좌파 진보세력들이 민노당과 손잡고 급진적 개혁을 밀어붙이거나, 대북 문제 및 대미 외교의 판을 흔들어 안팎으로 알력을 빚으리라는 걱정도 적지 않다”(중앙일보 4월19일치 변상근 칼럼 ‘왼쪽 이동 우려 씻으려면’) 한국경제도 “여당 내의 이른바 진보개혁세력들이 사회주의적 정책노선을 보이는 민주노동당과 연계, 좌파적 정책들을 쏟아내 가뜩이나 위축된 기업 의욕을 더욱 꺾어놓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4월19일치 사설 ‘여당에 대한 기업의 기대와 우려’)을 쏟아놓는다.

그들의 ‘길들이기’

정부가 화답한다. 한덕수 국무조정실장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과반을 확보하고, 민주노동당이 원내진출을 했다고 해서 정부 정책이 ‘왼쪽’으로 방향이 바뀌는 일은 없을 것”(조선일보 4월19일치 사설 ‘정책 좌편향 우려가 나오는 이유를 아는가’)이라고 다짐한다.

4.15 총선 이후 대다수 언론들이 뱉어내는 말들은 언젠가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데자뷰)을 불러일으킨다. 그렇다. 지금의 데자뷰는 2002년 12월 대통령 선거 이후 기득권 세력들이 쏟아낸 바로 그것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원내에 진출한 민주노동당이란 ‘이물질’을 양념처럼 끼워 넣는 모양새다. 자신들이 정해놓은 틀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길들이기’가 시작된 것이다.

우파 시민단체인 바른사회를위한시민회의 정책위원장인 최병일 이화여대 교수(경제학)가 “왼쪽에서 출발했든, 오른쪽에서 출발했든 정책 경쟁 과정은 놀랄 만큼 가운데로의 수렴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진보의 깃발을 내건 민노당은 아마 자신들의 색깔이 바래질까 두려워 자신들이 쳐놓은 울타리 바깥으로 나오기를 머뭇거리고 주저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한다. “민노당의 40여년만의 국회 진출이 ‘화려한 외출’로 끝난다면 한국의 비극은 계속될 것”이라는, 애정어린 충고인지 협박인지 알 모를 듯한 말도 덧붙인다.

이 모든 우려와 충고(?)는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다. 총선 막바지에 조선일보가 민노당을 띄우는 의도를 모른다는 식으로 비난하며 민주노동당 지도부를 ‘돌대가리’라고 매도했던 어떤 양아치 수준의 논객은 아마 부정할 테지만 말이다. 민주노총은 알고 있었다. 총선 다음날인 4월16일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의 일성은 “그동안 노사갈등이 격렬했던 이유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입법을 통해 제도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진보정당의 원내진출로 노사갈등 해결 노력이 커질 것이며 노동운동이 더욱 성숙해질 것”이라는 말이었다.

적극적 자기 정책 실현 관건

하지만 기득권 언론은, 그리고 이 사회의 윤똑똑이들은 도를 넘어서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자신들의 주장이 채택되지 않으면 다시 길거리로 나가고 싶은 유혹을 느끼기도 할 것이다 … 토론하고 타협한다는 것은 내 주장도 타당하지만 상대방 주장도 일리가 있을 수 있다는 인식을 전제로 하고 인내심을 가질 때 가능한 일 … 진보, 개혁, 보수, 어느 깃발을 내걸든 민주주의적 절차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틀 속에서 경쟁이 이뤄져야 한다”고 하나마나한 공자 말씀을 늘어놓는다. 그것이 낳는 효과는 민주노동당은 공자 말씀을 들어야 하는 미숙한 존재라는 이미지다.

기분은 나쁘지만, 이런 애정없는 충고도 기꺼이 받아주자는 게 내 생각이다. 왜냐고? “노무현 정권의 위기는 조중동을 포함한 수구·보수 세력의 공격 때문이 아니라 적극적인 자기 정책을 실현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조중동의 공격이 문제가 아니라 잠재적 지지자들이 지지할 게 없어서 위기”라는, 지난해 12월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가 내린 진단은 민주노동당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적극적인 자기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민주노동당은 참여민주주의에 호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참여민주주의는 민주적 정당성이 취약한 헌법재판소가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무조건 승복해야 한다는 박제화한 법치주의로 결코 환원되지 않는다. 개인적으론, 어쩌면 이제야말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이라는 디제이 정권의 슬로건은 진정한 주인을 만나게 됐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쏟아지는 ‘좌향좌’ 운운을 들으며 입안에 맴돈다. “코미디야, 코미디.”

조준상 전국언론노조 교육국장(cjsang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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