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TV에서 보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오른손에는 붕대가 감겨져 있다. 악수를 너무 많이 해서 손이 퉁퉁 부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자들의 사진 플래쉬만을 의식한 그들의 행렬이 지나면 대부분의 서민들이 “다 쇼 아닙니까?”라고 되뇌이는데도 ‘훈장’처럼 마이크는 붕대 감은 오른손의 몫이다.

지난 9일 오전 7시 울산 현대자동차 명촌 정문 앞. 붕대도 없는 거친 오른손이 출퇴근하는 노동자들의 손을 맞잡는다. 민주노동당 단병호 비례대표 후보. “반갑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노동자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바람에 1분에 거의 30여명과 악수를 하고 있었다.

▲초록색 띠가 있는 출입증과 볼펜으로 사람 이름이 적힌 일일방문증은 모두 하청노동자의 것이다. 출근길 정문에서부터 확연히 구분되는 그들의 신분. 민주노동당 단병호 후보의 인사를 받고도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저만치 돌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거리낌없이 악수를 청하는 하청노동자들도 있다. ⓒ 매일노동뉴스 이정희

20년 가까이 노동운동을 해 오면서 수많은 노동자들을 만났을 터이지만 민주노동당 후보로서 ‘악수’는 남다른 의미다. “투쟁을 조직할 때와 지지를 부탁하는 건 다른 일입니다. 노동운동 할 때는 상황을 설명하고 설득하고 조직하면 됐습니다. 이제는 화법이 달라졌습니다. 새로운 정치에 대한 동의를 구하고 ‘부탁한다’고 호소하면서 ‘책임감’과 ‘중압감’을 더 크게 느낍니다.”

비정규직에게 악수 거부당한 적도

그런 중압감은 비정규 노동자들을 만날 때 더 느껴진다고 한다. 노동자들의 출입증 색깔의 차이는 민주노동당 후보와의 거리감의 차이인 것 같다. 2002년 대선 때 현대자동차를 찾았던 권영길 후보는 비정규 노동자들이 인사조차 거부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는데, ‘민주노동당 = 민주노총 = 정규직 중심’이라는 인식은 아직도 크게 바뀌지 않아 보인다.

“정규직들은 다 반갑게 맞아주는데, 비정규직들은 소극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정치적 무관심도 있겠지만,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악수를 거부당한 경험도 있습니다. 구속되기 전인 2001년에 느꼈던 비정규직 문제는 3년이 지난 지금 더욱 심각해진 것 같습니다.” 비단 당에 대한 태도 뿐 아니다. 그는 이날 오전 고 박일수씨 장례식에 500여명‘밖에’ 모이지 않을 것을 아쉬워하며 “만약 정규직의 장례식이었어도 이렇게 적게 왔을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몇해 전부터 정규직노조가 하청 문제를 다뤄온 현대자동차 등에서는 조금 다른 양상을 띠기도 한다. 현대차 5공장 식당에서 만난 노동자들은 정규직-비정규직 할 것 없이 “수고많으십니다”며 서로 악수를 권했다. 20대 하청노동자 김원영씨는 “집회 때 몇 번 봐서 익숙한 얼굴”이라며 “기대가 크다. 꼭 당선돼서 하청노조 활동을 보장하고 처우개선에 힘써주길 바란다”고 말한다.

대중투쟁-의회전술 결합 관건

강원, 제주를 빼고는 전국 곳곳의 노동자들을 만났다는 단 후보는 “물론 노조가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지역의 당 지지도는 높지만, 노동자들의 정치의식의 편차가 노조운동 발전속도만의 차이는 아니”라며 “지금까지는 생활이 안정되고 의식적으로 사회활동을 해 본 사람 중심으로 당 지지가 높았다면 이제는 축적된 당 활동의 경험을 바탕으로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는 ‘노동자가 국회의원이 된다’는 의미보다는 노동자 스스로 ‘노동자의 대변자’를 국회로 보낼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는 의미다. 그만큼 노동자들의 정치의식이 고취됐다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단 후보는 ‘정당득표 15%’를 자신한다.

노동자들은 단 후보에게 크게 3가지를 주문한단다. (권위적으로 보이지 않게) 넥타이를 매지 말 것과,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것, 그리고 변하지 말 것.
“의회에 진출한다고 해도 우리는 소수입니다. 노동자 대변기능은 하겠지만 의회활동만으로 각종 제도개선을 모두 관철하긴 쉽지 않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투쟁과 의회전술을 어떻게 결합할 지가 관건입니다.”

국회의원이 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뭘까? “당에서 배치해주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노동쪽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노동법 전체를 개편하는 것은 물론 특히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정부 법안을 폐기시키고 정규직화와 차별해소 입법을 만드는 데 주력할 생각입니다.”

이정희 기자(goforit@labo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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