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당’을 생각하며 -

시인 김수영은 실존의 벽과 시대의 한계를 동시에 넘으려 몸부림쳤던 자유인이었다. 그는 4.19 혁명의 패배가 분명해진 1960년 10월에 <그 방을 생각하며>라는 시에서 이렇게 썼다.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그 방의 벽에는 싸우라 싸우라 싸우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어둠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기성의 ‘육법전서’를 기준으로 하는 한 4.19 혁명은 “결코 혁명이 될 수 없다”고 소리친 그였고, 따라서 학생들의 ‘선언문’이 아니라 “창자가 더 메마른” 사람들에게는 “혁명의 육법전서는 오직 혁명밖에 없다”고 믿었던 그였기에, ‘약간 덜 부패한’ 제도정당으로 권력의 주체를 이동시킨 것에 불과했던 4.19의 귀결에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진짜 패배한 것이라고 믿지는 않았다. 어느 누구도 감히 때려눕히지 못할 것이라고 믿었던 거대한 권력이 민중의 힘에 의해 무너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던 인습과 전통의 거대한 뿌리가 흙덩이째 뽑힐 수 있음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탄식과 자조로 시작했던 시를 이렇게 끝맺는다.

“방을 잃고 낙서를 잃고 기대를 잃고/ 노래를 잃고 가벼움마저 잃어도/ 이제 나는 무엇인지 모르게 기쁘고/ 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풍성하다.”

사흘이 지나면 투표일이다. 막판으로 갈수록 지역주의 구도는 완연히 되살아나고 있다. 한나라당은 탄핵 이전의 위세를 상당한 정도로 회복하게 될 것이고, 열린우리당은 몰락한 민주당과 퇴각한 한나라당의 영역으로 집권여당의 진지를 확장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4.15 총선의 정치사적 의의는 축소 평가될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아졌다. 애당초 기대되었던 수구정당의 몰락와 지역구도의 전면해체는 어려워 보인다. 오로지 민주노동당의 대규모(?) 원내진출이라는 중대한 변화가 이번 선거의 가장 큰 성과로 남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

유팔무 교수가 9일자 조선일보의 칼럼에 썼듯이 민주노동당에는 한때 사회주의를 꿈꾸었던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고,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해야 한다고 믿는 당원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더욱 더 철저하게 실현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와 농민에 기반한 진보정당이 더 힘있고 강력한 정당이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으며, 이러한 이유 때문에 진보정당의 후보에게 표를 던질 것이다. 극소수의 부자와 엘리트를 위한 국회가 아니라 다수의 가난하고 평범한 사람들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진보정당의 대안을 선택할 것이다. 강대국과 재벌의 이익을 위해 젊은이들을 전쟁의 사지로 내몰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민주노동당을 지지할 것이다.

또한 진보정당의 국회입성은 노사관계에 있어서도 중대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그동안 대한민국 국회에는 온전한 노동자 대표가 없었다. 노동계 지도자 가운데 국회의원으로 활동한 사람이 없지 않지만 그들은 보수정당의 계파 일원으로서, 혹은 노동계와 가까운 정치인 개인으로서 분류될 수 있을 뿐이었다. 더구나 그들이 진정으로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의정활동에 나서기라도 하면, 그래서 기업들의 이익과 정면으로 충돌할 양이면 금새 거세대상으로 지목되었다. 동부그룹의 돈봉투 뇌물과 부당노동행위를 바로잡으려 했던 고(故) 김말룡 의원은 대표적인 ‘왕따’ 의원이었다.

이제 노동자와 농민이 스스로 세운 정당의 대표가 의회에 등장할 것이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진정한 민주공화국이 될 것이다. 그들은 나아가 비정규직과 여성, 장애인, 이주노동자, 성적소수자를 옹호하게 될 것이고, 반전평화주의와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주창하게 될 것이다.

“혁명 대신 국민들은 당을 바꾸었다.” 시인 김수영의 고백은 2004년 4월, 이렇게 수정되어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편집국장 박영삼(yspark@labo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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