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란싱그룹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고, 양해각서(MOU)까지 주고받았던 채권단이 가격이 맞지 않는다고 우선협상대상자였던 란싱의 지위를 박탈하였다고 한다. 사실상 란싱 그룹으로의 매각은 물 건너 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정부와 채권단이 지금까지 했던 매각 방식에서 탈피할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벌써 중국의 또 다른 기업이 인수대상자로 거론된다. 정부 당국과 채권단은 이번 사태에 대한 아무런 반성 없이 똑같은 일을 반복할 모양이다.

* 해외매각, 정책의 발상부터 바꿔야

기아차, 삼성차, 대우차, 그리고 이번 쌍용차에 이르기까지 정부의 산업재편 정책은 ‘해외매각’에서 옴짝달싹도 하지 않고 있다. 정부가 ‘해외매각’을 선호하는 이유는 ‘세계 글로벌 산업 네트워크 편입’이다. 글로벌 세계에서 해외자본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논리다.

정부의 정책 추진 결과 해외 매각된 기업들은 초국적 기업의 생산기지로 전락하고 있다. 독자적인 모델 개발은 사실상 중단되었으며(GM대우 ‘하청기지’로 전락하나 <국민일보 2월2일자>, 르노삼성 조립기지로 전락하나 <매일경제 3월15일자>), 상용차 부문과 부품산업은 초국적 해외기업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대형 부품사들이 외국계로 많이 넘어가 엔진 변속기 제동장치 등 핵심 부품을 외국계가 납품하는 사례가 많다. 국내 완성차 업체가 외국계 부품업체에 기술적으로 종속될 수 있다”는 우려는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차 부품 60% 외국계가 장악 <매일경제 3월21일자>)

정부 당국과 채권단들은 쌍용자동차 매각을 다루면서 이런 현실을 철저히 외면했다. 중국의 란싱그룹을 우선인수협상대상으로 선정하면서 ‘경영권 보장’과 ‘투자 확대’ 및 ‘국내 생산시설 유지’를 약속했다지만 삼성차, 대우차 때도 그런 약속은 있었다. 현실에서 보듯이 독자적인 생산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초국적 자동차 기업들이 자신이 인수한 한국의 기업을 위해 ‘연구개발 투자’, ‘생산시설 독자가동’ 계획을 세운다는 약속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금융자본을 위한 매각 밀어붙이기…금융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

쌍용자동차는 워크아웃 기업으로 선정된 후 경영상태가 호전되고 있었다. 채권단의 부채를 계속 상환하고 있었고, 엔진 및 신차 개발 등에도 일정한 투자를 지속하고 있었다. 이른바 흑자경영 상태였다. 그런데 쌍용자동차의 채권단은 이런 상황에 아랑곳 하지 않고 매각을 결정했다. 정부 역시 워크아웃 사업장에 대한 기업 처리를 마무리하라고 은행과 채권단을 독촉하였다.

그럼 왜 정부는 채권단들에게 워크아웃 사업장 처리를 독촉한 것일까? 금융회사들의 부실화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굴지의 카드회사들조차 유동성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이 벌어지자 금융 부실을 막기 위해 금융회사들의 부실 채권을 정리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금융회사들은 BIS 비율을 맞추고(부채비율 축소), 투자이익을 실현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쌍용자동차와 같이 순이익을 실현하고 있는 멀쩡한 회사까지 ‘비싸게 팔아서’ 채권을 빨리 회수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일들 역시 해외금융(투기)자본을 위한 처방에 불과하다. 은행과 각종 금융기업들을 외국 금융자본에게 팔아버린 결과 지금 한국 금융 시스템을 쥐락펴락하고 있는 곳은 투자 이익의 실현을 위해 움직이는 초국적 금융(투기)자본과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제하는 데에만 여념이 없는 국제금융기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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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하게도 란싱그룹과 채권단이 가격 협상에 실패하면서 흑자기업이 헐값에 팔리는 일은 모면했다. 그러나 이런 금융 시스템이 유지되는 한 흑자기업들의 해외 매각은 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다. 쌍용차와 같이 흑자기업을, 쌍용차보다 훨씬 못한 외국 기업에 매각하려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의 금융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 은행이 우량 기업 및 기간산업의 채권을 장기 보유하는 것을 독려해야 하고, 투자 이익만을 쫓는 초국적 금융(투기)자본을 통제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잘못된 정책…노동조합이 나서야 한다

‘조건부 매각’으로 선회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노조 집행부로서는 이번 사태로 일단 한숨을 돌릴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 그렇다면 차제에 ‘매각이냐 독자생존’이냐를 놓고 어느 하나를 선택하고 그에 따라 한 방향으로 줄달음쳐왔던 방식의 전환을 도모해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어떤 경우라도 매각 대상 기업의 노동자들에게 고용과 생존권 문제는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그 문제는 다른 기업, 공장의 노동자들이나 연구자들이 ‘정치적’으로 접근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대우차에서처럼 경영진이나 채권단, 정부가 ‘정리해고’와 같은 시도를 한다면 노조의 대응은 한결 같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 쌍차의 상황은 대우차와 약간 다른 것 같다. 흑자기업이고 신규 투자 계획을 갖고 있는 상황이므로 당장 정리해고와 같은 시도는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연맹이나 지역본부 등이 나서서 쌍용차 처리 문제를 좀 더 사회적 문제로 부각시키는 대응이 필요하지 않을까? ‘독자생존’ 요구에 머물기보다 산업정책, 금융정책을 바꾸기 위한 ‘사회적 대응’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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