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먼저 한국의 노동운동은 언제나 ‘민주주의 투쟁의 전위투사’였음을 전제한다. 이는 지금의 대통령 탄핵 정국이 총선 연기나 개헌 등 사실상의 ‘정권 찬탈’로 비화하는 조짐이 보일 경우, 한국의 노동운동은 이를 막기 위해 맨 앞에서 싸울 것이라는 얘기다. 지난 16일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하게 열린 민주노총 전국단위노조대표자회의에서 총선 연기나 개헌 시도에 대해서 총파업으로 맞서겠다고 결의한 것은 이를 상징한다. 이런 전제 아래에서 이번 탄핵 정국의 성격을 논의하고자 한다. 여기에는 탄핵 정국의 발단과 전개과정은 구분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깔려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자민련이 함께 3월12일 대통령 탄핵 발의안을 통과시킨 행위를 어떻게 볼 것이냐는 논란이 뜨겁다. 그 논란의 중심에는 역시 “합법의 탈을 쓴 의회 쿠데타”라는 열린우리당의 규정이 자리 잡고 있다. 아마도 한국 사람들이 ‘쿠데타’를 이해하는 의미는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그 유명한(?) 법원 판결에 집약돼 있을 것이다. ‘정권 찬탈을 위한 치밀한 사전 시나리오’와 ‘불법성’이 그것이다. 이런 측면이 결여된 대통령 탄핵에 대해 나는 ‘정권 찬탈을 위한 의회쿠데타’라고 보지 않는다. 이보다는 오히려 대통령과 국회의 총선전략이 충돌하는 정쟁 속에서 빚어진 ‘극히 정상적이면서도 일탈적인 예외적 국면’이라고 판단한다.

먼저 이번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민주당이 ‘정권 찬탈을 위한 치밀한 사전 시나리오’를 갖추고 있었을까. 나는 <조선일보> 3월10일 ‘대통령과 야당의 총선 인질 탄핵 도박’이란 제목의 사설의 분석에 동의한다. 오해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 이 사설의 모든 표현에 동의한다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과 야당의 권력 게임에서 야당이 패착을 했다는 논지에 동의한다는 것임을 밝혀둔다. “대통령의 버티기 못지않게 한심한 것이 대통령의 이 불법 미끼(선거개입 발언)를 탄핵 발의로 덥석 물어버린 야당의 전술부재다. 헌법 위반이 분명한 대통령의 ‘재신임 투표’ 발언에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며 걸려들었던 사태의 재판 비슷한 것이다.“

물론, <한겨레>는 이와 대조를 이룬다. 같은 날 사설 ‘한나라,민주 쿠데타 하려는 것인가’에서 “정당하지 않은 탄핵 발의는 국회 다수의 힘을 바탕으로 노 대통령의 탈권을 겨냥한 일종의 쿠데타라고 할 것이다 … 다수 야당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정당하게 사용하고 있는지 곰곰이 다시 생각하기 바란다”고 쓰고 있다. 나는 <한겨레>의 이런 분석에 동의하지 않는다. 대통령 탄핵은 지금의 헌법의 틀 내에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정상적인 현상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여소야대 국회에서 거대 야당이 대통령에게 어떤 행동을 자제해줄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한다. 하지만 대통령은 계속 거부한다. 대통령도 의견을 말할 자유가 있다는 이유를 대면서 말이다. 이런 대통령에 대해 결국 국회가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은 탄핵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민주당 탈당’은 이런 권력 투쟁의 일반논리를 더 가속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진보적인 단체들의 성명에도 많은 고민이 엿보인다. <한겨레> 3월16일치에 실린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등 4단체 공동성명이 그렇다. 이 성명은 3.12 대통령 탄핵을 <한겨레>의 주장처럼 “시대착오적인 반역”이나 “의회쿠데타”로 규정한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부패수구-파벌보수 집단)과 구분되는 보수진영의 제분파인 열린우리당이나 노무현 대통령 또한 이번 정쟁에서 면책될 수 없다”고 꼬집는다. ‘의회쿠데타’와 ‘정쟁’이라는 양립할 수 없는 표현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번 사태를 보는 가장 상식적인 판단이 <프레시안> 3월15일치 데스크칼럼 '탄핵 역풍의 시대정신을 읽어라'에 실려 있다고 판단한다. 이 칼럼은 “3?12 탄핵안 가결 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평균적 여론추이는 ‘탄핵 잘못 70%, 열린우리당 지지 35%’이다. 이 같은 여론은 한-민 지도부가 미처 예상도 못한 결과였다. 그만큼 ‘주관적 판단’에 매몰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탄핵을 통해 ‘친노-반노’ 국면을 만들어 총선에 임하려던 계산이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착각’이었음을 꼬집고 있다.
그리고 이 칼럼은 “노무현대통령의 지난 1년 국정운영에 대해 비판적 여론은 분명 다수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핵사태를 맞아 표출된 여론은 ‘최소한 한-민 등 야당에게는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하야시킬 자격이 없다’는 단호한 것 … 여기서 우리는 한국사회의 한단계 ‘발전한 민주주의 의식’을 목격 …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 호불호, 만족불만족을 떠나 ‘국기’를 지키려는 냉철한 민주의식이 그것”이라는 의미를 도출한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자신들의 판단 착오로 인한 결과를 언론에 돌리고 있다. 이런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모습이야말로 조선일보 말마따나 그들의 ‘전술 부재’를 드러내는 것이다. ‘총선전략’이라는 표현과 ‘정권 찬탈을 위한 치밀한 사전 시나리오에 따른 의회쿠데타’라는 표현 사이에는 ‘말장난’이 아닌 건널 수 없는 간격이 있다. 탄핵 정국은 공자의 ‘정명’(正名)에 대해 언론이 차분히 새겨봐야 할 국면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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