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영화가 있다. 보고나면 할 말이 없어지는 영화. 영화가 현실에 너무나 닮아 있어서 다시 꺼내는 것이 더욱 가슴 아픈 영화. 돌아가는 길 내내 머릿속은 복잡하고 입은 무거워지는 영화. 그런 영화가 또 나타났다.

푸른 영상 김동원 감독의 <송환>. 비전향 장기수들의 삶을 담은 이 영화는 제작 기간은 총 12년에 그 동안 촬영에 쓰인 테이프가 500개를 넘는단다. 필름이 오래되면 스크린에 ‘어지럽게’ 그어지는 선이 보일 정도로 그 옛날 하이팔(Hi-8)미리(mm)부터 시작해서, 유메틱(U-matic)이나 VHS로 찍은 것까지 포함하여 총 무려 800시간이 넘는 촬영 분량을 편집한 것만으로도 이미 대작의 반열에 오르고도 남는다.





1999년부터 본격적인 송환 운동이 시작되고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과 함께 송환 운동은 급물살을 탄다. 송환이 현실이 되자 남쪽이 고향인 장기수들, 옥중에서 전향을 하여 북으로 갈 요건이 안 되는 이들, 결혼을 발표하여 동료들의 비난을 받는 이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갈등 상황이 빚어진다. 송환을 앞두고 조창손은 30년 전 체포되었던 울산을 찾아가 죽은 동료의 넋을 달래고 그의 가족에게 전해 줄 흙 한 줌을 퍼 간다. 그리고, 비전향장기수 63명은 2000년 9월 2일 북으로 송환된다.

<송환>은 국내 최초의 본격적인 ‘오테르 다큐’라고 한다. 오테르 다큐는, auteur가 ‘작가’를 의미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감독의 시선이나 주관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다큐멘터리다. 그래서 이 영화는 감독의 나레이션을 그대로 치면서 자신의 순간순간 감정변화를 그대로 말하고 있다. 기네스북에 오른 최장기간 장기수 김선명씨가 출소 후에도 가족들에게 거부당하다가 민가협의 적극적인 설득으로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한 달 전 극적으로 상봉하는 장면. 감독은 “김선명씨가 45년을 장기수로 복역하면서 유일하게 미안한 사람은 바로 어머니일 것이다”고 말한다. 그렇게 감독은 호기심으로 접근했던 장기수 할아버지들과의 12년을 느끼는 그대로 관객들에게 전달해 준다.

그러나 이 영화는 감독의 재담보다는 카메라가 얼마나 이 장기수들의 면면을 이해하고 있는지 변화를 쫒아가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장기수 할아버지들이 카메라와 닮아가는 모습은 무어라 할 수 없는 감동이다.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가서 동지들에게 미안하다”며 마지막 눈을 감는 모습. 송환 결정을 앞두고 북에 있는 가족과 남에 있는 가족을 선택해야 하는, 그렇게 굳은 의지로 수 십년을 버텨 왔던 올곧은 노인이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유약한 어깨를 보이는 모습. 이런 카메라가 가능했던 이유는 감독이 참여적이면서도 주연 할아버지들을 배려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주변이 불편해 하면 카메라를 끌 줄도 알고, 집요하게 캐물어 ‘쇼부’를 내기 보다는 12년을 그들과 닮아가는 그런 편안한 카메라를 만들면서 말이다.

김경란 기자(eggs95@labo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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