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구조조정을 한다고 하면서 계속 사직을 강요하더니 결국 원무과로 대기발령 내었습니다. 후배들 보기도 민망하고, 회사에 나오는 것이 죽기보다 싫습니다.”

한 대학병원에서 임상병리실 실장으로 일하던 조아무개씨(52)는 3개월분 임금을 위로금으로 받고 사직할 것을 계속 강요받았으나 거부하였다. 그러자 결국 회사는 조씨를 무기한 대기발령 처분을 하고, 원무과 책상에 앉아 있으라는 지시를 하였고, 정년을 눈앞에 둔 조씨는 이와 같이 억울함을 호소해 왔다.

불황지속에 대기발령 상담 부쩍 늘어

불황이 지속되면서 위와 같은 대기발령에 대한 상담이 부쩍 많이 늘었다. 대기발령은 직위해제 또는 보직해임과 같은 의미인데, 노동자에게 직위를 부여하지 않음으로써 직무에 종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므로 통상적으로 보직과 연관된 수당(직무수당, 팀장수당 등)이 지급되지 않기 때문에 임금삭감을 동반하게 된다. 그러나 임금삭감보다 대기발령에서 더욱 큰 문제가 되는 것은 대기발령에 처해 있는 노동자에게 인격적 수치심을 주어 견딜 수 없도록 압박을 가하여 사직서를 받아내려는 사용자의 의도에 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 부당한 대기발령을 받은 조씨는 어떤 법적인 구제절차 및 보호방안이 있겠는가?

대기발령(직위해제)은 직무수행능력이 부족하거나 징계절차가 진행 중인 경우 또는 형사사건으로 기소된 경우 등으로 인해 노동자가 장래에 계속 직무를 담당하게 될 때 예상되는 업무상의 장애를 예방하기 위하여 일시적으로 직위를 부여하지 않음으로써 직무에 종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잠정적인 조치이므로 징계와는 다르다.(대법원 1983.10.25. 선고83누184 판결, 대법원 1992.10.29. 선고95누15926 판결 등 참조) 따라서 취업규칙이나 인사규정에 직위해제를 하기 위한 절차가 명시되어 있으면 그에 따라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대기발령을 내릴 때 절차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기발령을 징계의 일환으로서 행할 때에는 반드시 정당한 징계절차를 거쳐야 한다. 사용자들은 대기발령 제도를 악용하여 정리하고 싶은 노동자를 대상으로 대기발령 처분을 하고, 이는 징계차원의 대기발령이 아니라 단순한 인사발령이므로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노동자 불이익 크면 인사차원 대기발령도 부당

그러나 대기발령은 근로기준법 제30조의 ‘전직’의 하나에 해당되므로 인사상 필요성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항상 정당한 것은 아니며, 대기발령의 정당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 대기발령의 정당한 사유가 있는지 여부는 대기발령을 내려야 하는 사용자의 인사상 필요성과 대기발령으로 인해 발생하게 되는 노동자의 불이익 정도를 비교해서 인사상 필요성이 크다면 대기발령이 정당하다고 판단되고, 노동자가 입는 불이익이 더 크다면 인사 차원의 대기발령이라도 부당하다고 판정된다. 그런데 대기발령의 업무상 필요성은 조직체계 개편, 징계위원회 회부, 업무능력 부족 등 상당히 폭넓게 인정되고 있는 반면에 노동자의 생활상 불이익면에서는 경제적인 불이익 외에 다른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어 임금이 지급되는 대기발령인 경우 생활상의 불이익이 크다고 판정되는 경우가 드물다. 그러나 대기발령은 위 사례의 조씨처럼 조직에서 필요 없는 자로 낙인찍혀 해고의 위협을 받는 중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고, 이러한 대기발령은 노동자에게 인격적인 모멸감과 불안감을 주어 노동자가 정상적인 직장생활을 하지 못하게 되는 등 정신적 불이익은 이루 말로다 형용할 수 없다. 그런데도 이를 대기발령 정당성 여부를 다툴 때 고려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위 사례의 조씨는 노동위원회에 부당대기발령 구제신청을 제기하여 본인이 대기발령 되어야 할 업무상 필요성이 전혀 없다는 사실과 생활상의 불이익을 구체적으로 주장함으로서 다른 법적인 절차보다는 신속하게 구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회사규정에 대기발령 이후 일정한 기간(예컨대 3개월)이내에 보직을 못 받는 경우 당연 퇴직한다는 규정에 의해 해고된다고 하더라도 그 해고가 당연히 정당한 것은 아니며, 대기발령 사유가 정당하지 못하거나, 대기발령 기간 중 대기발령 사유가 해소되었다면 그 해고는 부당하다.

상담문의 :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부설 민주노무법인 02)376-0001, www.workingvoic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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