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의 죽음을 계기로 비정규노동 문제가 올해 노사갈등의 주된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민주노총은 올해 비정규직 문제를 단체협약에 반영하겠다는 교섭방침을 밝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비정규노동의 철폐를 주장하면서 지난 주말 울산에서 대규모 집회를 개최했다. 반면 경총은 비정규노동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그 처우 문제가 경영권의 고유한 영역으로서 교섭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이미 올해 단협지침에서 이에 대한 교섭을 거부한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노사 두 쪽의 이런 입장에는 이해조정의 여지가 별로 없어 보여 올 노사관계도 그 전망은 매우 어두워 보인다.

그런데 비정규노동 문제는 이처럼 노사간에 이해가 대립되기만 하는 사안일까 그것은 반드시 그렇지 않다. 다른 경제사안들과 마찬가지로 이 문제도 나라마다 제각기 제도적인 틀이 다르고 따라서 기능과 성격도 다르다. 물론 우리나라처럼 비정규노동이 노사간에 대립적인 이해를 반영하는 경우도 있다. 영국과 미국의 경우가 바로 그러한데 여기에서는 1980년대 이후 경영 쪽의 주도적인 공세로 노동시장에 대한 각종 노동보호 규제가 철폐되면서 그 여파로 비정규노동이 급격히 증가하였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자진해서 노동보호 입법과 단체교섭제도의 탈규제화를 부추겼고 그 결과 비정규노동은 경영 쪽의 이해만을 일방적으로 반영하면서 노동 쪽의 희생을 유발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결국 소위 ‘노동하는 빈곤층’이 형성되었고 심지어 희망 없는 저임금직종이 대량으로 형성되어 ‘맥잡’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비정규노동이 노사간의 상호이익을 위한 합의의 산물인 경우도 있다. 유럽의 경우가 바로 그러한데 이들 나라에서는 1980년대 소위 ‘고용 없는 성장’의 대안으로 비정규노동이 노사간의 합의의 산물로 각광을 받았다. 이때 정부는 노사간의 합의를 주선하고 노동보호입법과 단체교섭제도가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 결과 여기에서는 비정규노동이 기존의 노동보호제도를 전혀 해치지 않으면서 단지 고용문제를 개선하는 긍정적인 기능만을 수행하였다. 파트타임 노동의 창출을 통해서 기존의 노동복지제도를 그대로 유지한 채 고용의 기적을 이룬 네덜란드나 덴마크의 경우가 바로 그런 대표적인 사례이다.

요컨대 비정규노동 문제도 이처럼 유용한 노동정책 도구로 사용될 수도 있고 노사간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불씨로 작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 그것이 어떤 기능을 하게 될 것인지는 노사간의 합의구조가 존재하느냐의 여부와 이 과정에서 기존의 노동보호제도, 특히 단체협약체계를 정부가 얼마나 보호하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비정규노동 문제의 장래는 상당 부분 정부의 의지에 달려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강신준/동아대 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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