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월 중국 정부는 막대한 외환보유고(2003년 말 4,032억 달러)의 일부를 부실채권 정리에 사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외환보유고 450억 달러를 투입해 중국 4대 상업은행에 속하는 건설은행과 중국은행의 부실채권을 처리한다는 내용이다. 또 이 계획에는 700억 달러를 투입해 공상은행과 농업은행의 자본 확충에 쓰겠다는 방안도 들어있다.

중국 정부는 중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으로 꼽히는 금융 부실 해결을 위해 수출 증가와 외국자본 유입에 따라 증가한 국가적 자산인 외환보유고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까. 지난해 12월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와 재정경제부가 의기투합해 발표한 한국투자공사(KIC) 설립이 고작이다. ‘동북아 금융허브’라는 원대한 구상의 핵심을 차지하는 이 구상은 자산운용업 육성을 위해 일단 외환보유고에서 200억 달러를 헐어 해외자산에 굴린다는 게 뼈대를 이룬다. 사장은 외국인이면 더욱 좋고, 앞으로 국민연금 등 공공기금을 위탁받아 규모를 1,000억 달러를 키운다는 야무진 꿈을 동북아위원회와 재경부가 꾸고 있다(매일경제 12월16일치 참조).

이미 외국계 다국적 기업들은 KIC가 굴린다고 하는 200억 달러의 외환보유고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제너럴일렉트릭(GE) 본사의 임원들은 지난 2월 한국을 방문해 GE에 발행하는 채권에 KIC의 외환보유고를 투자해줄 것을 요청하는 의사를 타진했다. GE는 2003년 전 세계에서 14개 화폐로 510억 달러에 이르는 채권을 발행했고, 올해는 15개 화폐로 500억~600억 달러를 발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원화로 표시된 채권도 포함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결국 이는 외환보유고가 국민경제와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 외국계 다국적 기업에게 직접금융을 제공하는 재원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말해준다. 외환보유고가 무엇인가. 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이후 정리해고와 대량의 비정규직, 환율 급등으로 인한 수입물가 급증, 내수기업의 위축, 공적자금 투입을 통한 기업 회생 등 온 국민의 피와 땀으로 조성된 국가자산이다. 거대한 가계부채를 쌓아가며 만들어낸 눈물 어린 국가자산이다. 그런 국가자산이 국민경제에는 별다른 도움도 되지 않는 다국적 기업의 금융 재원으로 쓰인다는 것은 절대로 바람직스럽지 않다.

차라리 생계형 신용불량자의 부실채권을 탕감하는 데 사용하는 편이 훨씬 낫다. 대량의 신용불량자를 양산한 책임이 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카드사의 마구잡이 카드 발행에 있다고 인식하면서도 그 책임을 몽땅 신용불량자 개인에게 떠넘기는 거대한 사회적 위선을 걷어내는 데 쓰는 게 훨씬 더 생산적이라는 얘기다.

중국처럼 외환보유액을 생산적으로 활용하려면 도대체 우리는 어디에다 외환보유고를 써야 할까. 민주노동당의 주장처럼 북한경제 재건과 주민생활 향상, 이를 통한 남북관계 개선, 남북경제의 상호의존성 증대를 위한 남북개발은행을 설립하는 데 활용해야 한다.

물론 국내 개발은행으로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있긴 하다. 하지만 현재 산업은행은 외국계 투자은행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능력 확보를 위해 투자은행 업무에 주력하고 있어(물론 엘지카드 사태 때처럼 정부의 간접적인 공적자금 투입 창구 구실을 하기도 하지만) 북한 경제 재건에 적합하지 않다. 북한 경제 재건에는 상당한 위험이 따르는 만큼 과감하게 위험을 수용하면서 개발에 뛰어들려면 별도의 ‘남북개발은행’을 만들 필요가 있다. 남북개발은행은 국내?외에서 개발채권을 발행할 수도 있다. 앞으로 동북아개발은행 설립 과정에서도 남북이 주도권을 쥘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계기도 된다.

남북개발은행의 자본금은 KIC의 투자자산으로 굴릴 200억 달러(약 23조원)를 활용하면 된다. 2003년 11월말 기준으로 외환보유고의 84%는 한국은행 소유이고, 16%인 423억 달러 정도가 정부의 소유이다. 일단 정부 소유의 외환보유고 가운데 50억 달러 가량을 자본금으로 삼으면 될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적어도 인구 1억 명 정도가 돼야 해외의존도를 줄이고 내수 주도의 경제발전을 할 수 있다는 의견을 밝히고 있다. 이는 남북경제의 상호의존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고 있다. 남북개발은행은 향후 소요될 통일비용을 지금부터 건설적인 방향으로 지출하는 첫 걸음이다. 통일에 대비해 자라나는 세대를 대상으로 한 평화교육이 필수적인 만큼 경제적 차원에서도 분명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 정부는 말로만 통일 대비를 설교할 게 아니라 그 한 걸음을 내딛는 책임 있는 조처로 남북개발은행 설립에 나서야 한다. 지금은 통일비용 타령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조준상 전국언론노조 교육국장(cjsang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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