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은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음악극 형태 중에서 가장 대중적 장르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익숙한 장르는 아니었다. 한국에서는 어떻게 뮤지컬이 변화?발전되어 왔는지, 서양 뮤지컬의 변천사에 이어 한국의 뮤지컬에 대해 알아보자.



우리나라에서 뮤지컬과 유사한 형태의 극양식이 선보인 것은 1930년대의 일이다. 서구 음악극을 모방하여 가수의 노래에 연기와 무용을 첨가한 '악극'이 그것이다. 악극은 사랑과 애한을 주정서로 삼아 막혀있던 관객의 심금을 울리며 많은 관객을 확보하게 된다. 그 당시 악극의 가장 큰 형식상 특징은 막간을 이용하여 변사나 광대가 짤막한 코미디나 만담, 가요, 숨은 장기 등을 보여주는 '막간극'('방창'이라 부르기도 함)이 있었다는 것이다.

막간극은 글자 그대로 막과 막 사이를 이어주는 극이다. 장면전환을 위한 시간동안 관객에게 지루함을 달래주기 위해 장면을 만들어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것이 의외로 관객들의 큰 호응을 받자 독립적인 오락물로 공연하게 되었고 노래, 춤, 코미디 등이 극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나열되던 종래의 형태에서 벗어나 하나의 일관된 줄거리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렇게 발전된 악극은 연극적인 양식의 결합으로 더욱 정교해지고 세련되게 성장한다. 하지만 1950년대 이후에는 사회, 경제적인 어려움을 속에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현대적인 뮤지컬 양식의 시작은 1962년에 '예그린 악단'이 창단되면서부터. 예그린 악단이 처음으로 시도한 것은 연극 형태의 음악극이었다. 첫 작품으로 발표한 '삼천만의 대향연'이 그랬다. 연극과 음악을 합성한 형태였으며 그 이후에도 그와 같은 형식의 공연물이 올려지다가 1963년에 공연된 '흥부와 놀부'에서 처음으로 무용, 음악, 연극이 함께 만나는 뮤지컬 형식을 취하였다. 그러나 '흥부와 놀부'는 극에 맞는 음악을 새롭게 작곡하여 공연된 작품이 아니라 극의 줄거리에 맞도록 기존 민요를 적절히 편곡하여 엮어나간 작품이었다. 예그린 악단의 본격적인 현대적 뮤지컬 작품은 1966년에 만든 '살짜기 옵소예'다. 이 작품은 당시 상당한 반응과 호응을 일으켰으며 패티 김이 부른 주제가 '살짜기 옵소예'는 어느 대중가요보다도 큰 성공을 거두며 한국 뮤지컬의 시작을 알렸다. 예그린 악단의 '살찌기 옵소예(1966)'를 본격적인 뮤지컬의 효시로 보는 것은 현대적인 뮤지컬 양식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며 대중적인 인기에서도 역시 서구적인 뮤지컬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예그린 악단은 국립 가무단(1976)을 거쳐 국립 예그린 예술단으로 활동할 때까지 '꽃님이 꽃님이 (1967)', '대춘향전 (1968)', '바다여 말하라 (1971)', '시집가는 날 (1974)' 등을 공연하였다. 이 단체는 1977년 서울시립가무단(현재 서울시뮤지컬단)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세종문화회관을 주무대로 활동하고 있다.

예그린 악단과 더불어 우리나라 뮤지컬의 현대화에 기여한 공연단체는 현대극장이다. 1977년부터 꾸준히 뮤지컬 공연에 정성을 기울인 현대극장은 상업극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빠담빠담빠담'을 비롯해서 '피터팬 (1979)',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1980)', '사운드 오브 뮤직 (1981)', '에비타 (1981)', '올리버 (1983)',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1987)', '레미제라블 (1988)' 등 주로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공연하였다.

극단 민중, 대중, 광장 등도 유리나라 뮤지컬 역사에 한 축을 그었다. 1983년 '아가씨와 건달들'을 공동 제작하여 유례없는 성공을 거둔 것이다. '아가씨와 건달들'은 현재까지 한국인이 가장 많이 관람한 뮤지컬로 약 200만명 이상의 관객이 관람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한편 1993년에는 뮤지컬 프로덕션 '에이콤'이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뮤지컬 전문단체를 표방하며 출범하였다. 1995년 국내에서 초연되어 큰 성공을 거둔 창작뮤지컬 '명성황후'를 가지고 1997년 8월 뮤지컬의 본고장인 미국의 뉴욕 링컨센터에서 공연함으로써 한국 뮤지컬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 작품은 현재까지 80만명 이상의 관객을 모으고 있다.

물론 열광적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뮤지컬의 특성중 하나가 이해하기 쉬운 줄거리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명성황후라는 소재가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기에 작품의 한계로 지적되고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우리의 작품은 외국인들의 입맛에만 맞게 만들 수도 없는 것이다. 이것이 세계를 향한 한국 뮤지컬의 딜레마라 하겠다. 비록 한국 뮤지컬 역사가 40면도 채 되지 않았지만 이제 한국 뮤지컬은 세계중심으로 꽃망울을 내밀고 있다. 마치 이봄에 풀꽃들처럼.

김신기 세종문화회관노조 서울시극단지부장
poetwolf@hanmail.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