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호 위원장은 쉽지 않은 인터뷰 대상이었다. 모든 사안을 단정적으로 보지 않고 결과를 열어놓고 있는데다 의견수렴 과정을 중요하게 보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노사정위원회 재편 등 현안에 대한 답변이 시원하게 느껴지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거의 모든 답변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현장을 움직이게 하겠다, 내부 의견수렴을 거쳐 결정하겠다, 노사정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겠다는.

- 집에도 자주 못 들어간다고 들었다. 사무총장을 맡았을 때(1999.9~2000)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총연맹 일이 더 확대됐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처음이어서 그렇겠지만 일정을 소화하는 것도 힘들다기보다는, 안배하기가 어렵다. 예전보다 언론의 관심도 높아졌다. 주요 일간지, 방송뿐만 아니라 전문매체나 인터넷매체 등 다양한 언론에서의 인터뷰도 몰리고 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다양해지고 복잡해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런 점들이 더 부담감과 책임감을 갖게 한다. 성격상 거절을 잘 못하는 것이 어렵기도 하다.

- 노동부, 법무부, 경찰청 수장을 잇달아 만난 것이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어떤 의미이며, 어떤 성과가 있었는가. 경총과 전경련 쪽을 만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관련 부처와 적극적으로 대화하면서 쌓인 문제들을 풀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법무부장관을 만나서는 노동자 사면복권, 손배,가압류 중단, 이주노동자 문제 등을 논의했다. 경찰청장을 만났을 땐 수배자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지역건설노조에 대한 수사 등 노사문제에 대한 경찰의 과도한 개입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경찰청장은 지역건설노조와 관련해선 사용자쪽 주장에 근거해 수사를 했는데 앞으로 노사문제 관점으로 봐라보면서 수사중단을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지역건설노조 수사가 전국적으로 확대될 조짐을 보였는데 (더 이상) 수사가 확대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경찰청 쪽에서 또 개악된 집시법과 관련해서도 지금 집회하는 것보다 더 어렵게 하진 않겠다고 답했다. 화염병이나 쇠파이프가 나오지 않는 이상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만나는 것은 풀건 풀겠다는 의미다. 필요하면 어떤 상대라도 만나겠다. 경총 신임 회장도 조만간 인사를 오겠다고 해서 오라고 했다. 잘해보자는 의미보다는 현안에 대해 상층 단위의 대화를 하겠다는 뜻이다.”

경총 이수영 신임 회장은 오는 8일 양대 노총 위원장을 잇달아 만날 예정이다.

- 현안에 대해 투쟁지원 역할에 머물지 않겠다고 밝혔다. 외환카드 정리해고, 쌍용자동차 매각 등 정부의 산업,금융정책과 관련해서 총연맹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는지.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쳐서 그 정책을 올바르게 잡아가는 것이 총연맹 역할이라고 본다. 또 사안을 전국화시켜내는 것이 필요하다. 노사간 문제 해결사로서 역할도 중요하지만 모든 문제에 총연맹이 개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 단위가 해결할 수 있도록 하고 해당 연맹이 지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해당 조직이 자주적으로 싸우도록 해주면서 그것을 활성화하는 일이 총연맹 역할이다. 특히 상층교섭을 적절하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

-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과 관련해 이행을 점검하기 위한 민관합동위원회가 구성된다. 민주노총은 일자리 만들기와 관련, 정책대안을 만들겠다고 했는데, 민관합동위원회에 들어가 같이 논의할 계획은 있는지.

“정책대안을 만들겠다는 계획은 있지만 아직 민주노총 내부를 정비하지 못했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3년의 임기동안 우리 사업을 올바로 세워 확정하고 전열을 정비하면서 싸우겠다. 지금은 올해 주력할 사업의 큰 틀을 만드는데 역량을 투여하고 있다. 3일 열릴 중앙위원회에서 지난 2월 정기대의원대회 때 유보된 사업계획안을 통과시킨 다음 일자리, 비정규직 문제 등 현안에 대해 연구하고 대안을 만들어가겠다. 일자리 사회협약이나 노사정위의 새로운 틀에 대해 외부역량까지 동원해서 논의해볼 것이다. 지금 정부가 일자리 관점으로만 논의하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 실업, 비정규직, 산업공동화 문제 등 산업 전반적인 구조문제로 보고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만들어진 틀로 들어와서 논의하자’는 것은 수용하기 힘들다.”

민주노총이 3일 중앙위원회에 상정하는 사업계획안에 따르면, △투쟁방침 △교섭방침 △조직방침 △향후 3년간 조직혁신방침 등과 관련 2004, 2005, 2006년의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해 놓고 있다.

- 노사정의 새로운 대화 틀을 만들자고 주장했는데 독립적 기구를 원한다는 것 외에 아직 구체적인 방안은 나오지 않은 것 같다.



“(민주노총의) 구체적 안을 갖고 책임 있는 구조를 만들어서 논의하자고 할 것이다. (새로운 대화 틀은) 현재 노사정위원회를 결과적으로 변화시키는 형태가 될 것이다. 일부를 개편하자는 것과는 다르다.

조직 내부적으로는 지난 중집(2월23일)에서도 노사정위원회와 관련해 토론했다. 방향을 제시하면서 조합원들이 관심을 갖고 자유롭게 토론하게 할 것이다.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의견을 모아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중앙위 이후 기본자료를 갖고 대중적인 토론을 진행하면서 내부 공론화 과정을 거치고 총선 이후에 본격화시킬 것이다. 총선에서도 새로운 노사정 대화틀과 관련한 요구를 할 것이다. 총선이 끝나고 새로운 노사정위를 만드는 과정이 합의되고, 새로운 노사정위가 만들어진다면 필요할 경우 사회적 협약 등에 대해 다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노사정 교섭이 필요하다는데 다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여론수렴 등 절차를 밟아나간다면 내부에서 합의하는데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 노조를 포함한 단체의 정치자금 제공 금지 등을 담은 선거법 개정이 추진돼 노동계의 ‘총선투쟁’이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총선에서 어떤 부분에 주력할 계획인지.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과정을 통해 운동을 새롭게 재편하고, 활기차게 만드는 계기로 만들 것이다. 또한 통일단결의 기풍을 만들어 낼 것이다. 선거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지만 결국 노조활동을 통해 선거운동을 하게 될 것이므로, ‘선거투쟁으로서의 노조활동을 강화’하는 게 중요하다. 계급투표 관점에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해나가야 한다. 필요하다면 개정 선거법에 대한 불복종운동도 벌이겠다. 수많은 노조간부들이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됨으로써 부당성을 폭로하는 방법도 한 방법이다. 지금도 모든 회의와 교육을 4?15 총선에 맞추고 있다.”

- 단병호 전 위원장 등 민주노총 출신인사도 비례대표로 출마했다. 비례대표 후보 발굴에 대해 민주노총이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비례대표 논의는 못한 형편이다. 당선가능한 후보가 한정돼 있는 등의 현실적 문제가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후보 발굴에 나서지 않았으며, 자발성에 맡게 놓았다. 정치는 본인 의사와 결단이 필요한 부분이다. 민주노총 출신인사가 출마하면 적극 지원할 예정이다.”

- 민주노총 임원선거 이후에 각 연맹에서 미묘한 정파갈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책은 있는지.

“지방에 다니면서 예상보다 (정파갈등이) 많은 것 같아 안타까웠다. 난 이 같은 정파갈등을 해소하는 역할을 부여받고 당선됐다는 생각이다. 단순하고 쉬운 문제는 아니기 때문에 당장 뭘 하겠다기보다 시간을 갖고 꾸준히 해결해 나갈 계획이다. 이 문제는 사업추진 태도, 특히 위원장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본다. 모두를 포괄하면서 일을 해나가고 조직 내 절차적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게 중요하다. 어떤 의견도 존중하면서 수렴되는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데로 흘러가 고이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문제가 있으면 토론을 통해 고쳐야 한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는 게 아니라 결합해내야 한다.

지난 중집에 안을 제출할 때도 이런 방식으로 만들었다. 집행부 안을 고정화시키는 게 아니라 전체 의견을 물어 고쳐나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모두에게 의견을 제시하게 하고 충분히 말하게 하고 있다.

노동운동의 선배, 지도자그룹이 자주 만나서 보다 친밀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것도 필요하다. 며칠 전 위원장실을 찾아온 단병호 전 위원장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서로 건너뛰는 이야기 속에 오해하는 일은 철저히 막아야 한다. 이념과 사상이 다른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인간관계를 뛰어넘는 일이 생겨선 안 된다.”

이 위원장의 이런 태도는 지난 중집에서도 확인된다. 민주노총은 지난달 23일 저녁에 시작한 첫 중집 회의를 새벽 3시쯤에야 끝냈다. 이 위원장이 되도록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집에 상정된 회의자료는 세세한 문구까지 의견을 수렴해 수정되기도 했다.

- 연대기금을 올해 사업계획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는데, 그 의미와 앞으로의 계획을 말해 달라.

“비정규직 집회에서 정규직을 원망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아프다. 다 포괄해야 하는 위원장 입장에선 정규직 노동자들이 실업자나 비정규직 노동자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게 된다. 전체 노동자가 함께 해야 한다. 금속산업연맹이나 보건의료노조에서 임단협 지침으로 연대기금을 확정했다. 이제 시작이다. 상징적 의미가 상당하다.”

- 내부 시스템 개선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는데,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제도개선과 인선원칙은 어떤 것이었는지.

“시스템 개선은 시작단계다. 아직은 기존 조직에 사람을 배치하는 수준이었다. 우선 분위기를 바꿔보자는 생각이 컸다. 그건 사람을 바꾸는 것이었다.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비정규실과 법률원을 빼고 정무직은 다 바꿨다. 현장 목소리를 총연맹에서 많이 수렴하기 위해 현장파견을 많이 받으려고 노력했으나, 생각보다 파견직을 많이 받진 못했다.”

- 고 박일수씨 분신사망과 관련한 현안대응은 어떻게 할 계획인지.

“현안에 맞게 적절하게 대응한다는 게 원칙이다. 현장과 해당연맹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동력이 현장에서 나오도록 해야 한다. 총연맹이 억지로 끌고 가지 않겠다. 우선 울산지역이 움직이도록 하고 총연맹은 노동부와 공식채널을 열어 현안을 해결해나가겠다.”

인터뷰 도중 KBS 수습기자(30기) 30여명이 이수호 위원장에게 인사를 드리러 찾아오는 바람에 인터뷰가 잠시 중단됐다. 수습기자들은 민주노총하면 떠오른 것이 ‘단병호’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이 위원장은 “단병호 위원장과 나이도 비슷하고 다 비슷하다. 키만 내가 좀 작다”고 농담으로 답했다. 이 또한 차이를 부각시키지 않는 이 위원장의 한 단면이었다.

그러나 다르지 않은 모습 속에서도 ‘변화’를 찾아내는 것은 기자의 몫일 것이다.

송은정 기자(ssong@labo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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