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버린의 에스케이그룹 장악 시도는 소액주주운동에 대한 재벌의 대반격을 낳는 계기였다. 최근에는 소액주주운동이 입각하고 있는 ‘주주가치 경영’이야말로 포퓰리즘이란 도발적 문제제기가 있었다.

이 논쟁에 접근할 때 염두에 둬야 할 점이 하나 있다. 재벌들은 소액주주운동에 대해선 비판하면서도 ‘주주가치 경영’은 옹호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재벌총수이든 전문경영인이든, 입버릇처럼 주주가치 경영을 내세운다. 그런데 소액주주운동에 대해 못마땅해 하는 이들은 이 운동이 주주가치 경영에 따르고 있다고 비판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괴리’에 얼마나 주목하느냐가 소액주주운동에 대한 정치적 태도를 결정한다고 본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는 동아일보 2월25일치 칼럼 ‘주주 포퓰리즘을 경계한다’에서 “주주가치 경영이 장기적으로 기업에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주주가치를 올리는 가장 빠른 길은 대규모 감원을 통해 인건비를 줄이는 한편 설비나 기술개발 등에 대한 투자를 최소화해 이익을 많이 올리고, 그렇게 얻은 이익 중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부분을 배당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우리 기업들이 사상 최대의 이윤을 내면서도 투자와 고용을 창출하지 못하는 것도 바로 이런 주주가치 경영을 채택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여기서 포퓰리즘의 정의는 “단기적으로 보통 사람들을 위하는 듯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국민경제의 안정과 성장잠재력을 해쳐 결국 보통 사람들을 해치는 정책 노선”이다.

이에 대해 같은 신문 2월27일치 칼럼 ‘주주가치 경영이 포퓰리즘인가’에서 김주영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소장(변호사)은 “주주가치 경영이 단기적인 성과에 흐를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그 자체를 포퓰리즘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며 “기업의 주주총회장에서 제기되는 소액주주들의 요구 전부를 포퓰리즘적인 주장이라고 단순히 폄하해서도 안 된다”고 반박한다. 김 소장은 우리사주조합을 통해 부당한 합병에 저항하고 외국인 대주주의 전횡을 견제하는 행위, 사회적책임투자(SRI) 등의 예를 들며 “이는 결국 (기업의) 이해관계자가 주주로 수렴되는 현상으로서, 주주 총회장에서 소액 주주들의 목소리를 ‘주주가치 경영’이란 말로 단순화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한다. 문제는 기업 ‘오너’(재벌총수)들의 포퓰리즘이지 주주 포퓰리즘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먼저, 나는 ‘주주가치 경영의 전형은 미국식 자본주의’라는 주장은 매우 단순한 도식임을 전제한다. 흔히들 미국식 주주가치 경영이 이른바 ‘월스트리트 룰’(기업이 마음에 안 들면 주식을 팔고 떠나면 된다)에 입각해 있다고 하는데, 엔론이나 글로벌 크로싱 등에서 벌어진 거대한 회계부정사태는 ‘월스트리트 룰’마저 미국 자본주의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오히려 미국 자본주의의 현실적 모습은 주주가치 경영을 빙자한 경영자 독재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측면에서 한국 자본주의는 미국 자본주의를 닮아가고 있다. 재벌이 내세우는 주주가치 경영은 재벌총수 독재를 정당화시키는 이데올로기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노동조합과 노동자에 대한 공격을 정당화시키는 수단으로 이용된다.

‘주주 포퓰리즘’에 대한 장하준 교수의 비판은 이런 측면에서 매우 타당하다. 임금을 올릴 돈은 없어도 주가 부양을 위해 자사주 구매에는 수천억원씩 때려 넣는 모습은 그 극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이해관계자가 주주로 수렴되고 있다”는 김주영 소장의 지적은 주주가치 경영에 대한 그동안의 비판이 간과한 지점을 보여준다. 소액주주운동이 ‘경영자 독재’(우리나라의 재벌총수 독재)를 견제하는 긍정성을 지닌다는 주장도 현재적 긍정성을 지닌다. 그 단적인 사례가 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을 비롯한 소액주주운동 참여자들을 마치 ‘미친 개 쫓듯 몰아낸’ 삼성전자의 주주총회 모습일 것이다.

하나의 이해관계자인 ‘주주’와 ‘주주 근본주의’는 당연히 구분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주요 재벌이 추구하는 것은 ‘주주 근본주의’도 아니고, 이해관계자의 한 당사자로서의 ‘주주’에 대한 적극적인 인정도 아니다. 대를 이어 기업을 세습하는 총수일가에 대한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주주에도 단기주주가 있고 장기주주가 있다. 펀드에도 단기 펀드가 있고 장기 펀드가 있다. 장기주주나 (사모펀드가 아닌) 장기 펀드 육성은 긍정성을 지닌다. 장기주주와 장기펀드가 원,하청 관계를 개선하려는 원청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사회적책임투자’(SRI)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적 재산’인 그룹을 개인회사처럼 생각하고 자식에게 기업을 물려주는 한국의 재벌총수 일가가, 대그룹을 지배하면서도 기업의 일상적 경영에 관여하지 않는 일본과 유럽의 가문으로 환골탈태하기 위해서는 아직 소액주주운동은 부정성보다는 긍정성이 많은 것 같다.

조준상 전국언론노조 정책국장
(cjsang21@hanm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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