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서울신문 사회면(11면) 한 구석에 1단 짜리 기사 한 줄이 실렸다. 기사 제목은 ‘청년 실업대책 격무 공무원 순직'. 기사는 두 문장짜리 단신으로 처리됐다. 너무 작아서 눈에 잘 띄지도 않았다.

청년실업대책과 일자리 창출 업무로 격무에 시달린 문화관광부 기획총괄담당관실 김아무개씨가 순직했다는 거다. 김씨 나이는 고작 35살. 죽어야 할 나이가 아니다. 그는 대통령이 지시한 청년실업대책과 일자리 창출 업무에 시달리면서 과로를 호소하다 지난달 30일 병원으로 옮겨져 무려 3주 동안 혼수상태 끝에 순직했다. 그는 김정현의 소설 '아버지'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승진도 물 건너가고, 병들어 정년만 기다리던 문화관광부의 만년 서기관이 아니었다. 살아갈 날이 창창했던 30대 청년이었다.

* 창창한 30대 공무원의 죽음

그런데 왜 노동부 직원이 아닌 문광부 직원이 실업대책을 짜내다 쓰러져야 하는가.

총선에 '올인'한 대통령이 '일자리 창출'을 말하자 정통부는 IT 일자리 30만개(<서울신문> 1월20일), 보건복지부는 36만개(<서울신문> 1월21일) 과기부는 1만개(<서울신문> 1월31일) 재경부는 50만개까지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발표했다.

내각 전체가 미쳤다. 정부 안에서 누군가는 이 30대 젊은이의 죽음에 책임져야 한다. 대통령이 총선에 정신 팔려 한국 최대 공영방송의 예능담당 PD(프로듀서)가 지휘하는 대담프로에 출연해 학자인지 연예인인지 분간하기 힘든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며칠 뒤엔 국민에게 이름께나 알려진 외국CEO(제프리 존스 - 주한미국상공회의소 명예회장)와 마주 앉아 한국정치를 논하는 '정치 쇼'를 벌이던 바로 그 시각, 그는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고 있었다.

우리나라 전체 실업자가 80만명 선인데 이런 식으로 정부 각 부처가 만들겠다고 내놓은 일자리 수는 무려 200만 개에 육박하니 실업률 마이너스를 기록할 판이다.

* 경기고 출신의 화려한 부활?

지난 번에는 민주노총 위원장과 출신 고등학교가 같은 노동부장관이 입각했다고 언론이 한동안 호들갑을 떨었다. 따라서 국민들도 노동자 친화적인 장관 때문에 올해는 노정 관계가 좀 나아질 것이라 기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착각이다. 진보적 학자 1명을 노동부장관으로 기용했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 이번 개각을 즈음해 이헌재(경제부총리), 안병영(교육부총리), 오명(과학기술부장관), 한덕수(국무조정실장)씨 등 4명의 경기고등학교 출신이 입각했다.(한국경제신문 2월17일 6면)

이미 들어와 있던 정보통신부 진대제, 해양수산부 장승우, 통일부 정세현 장관에 고건 총리까지 치면 총리에서 장관까지 고작 19명인 우리 정부조직표에서 무려 8명의 경기고 인맥이 포진했다. 30%가 넘는다. 나라의 거의 모든 실권이 이들 낡은 기득권 세력에게 넘어갔다. 박정희 때도, 전두환 정권 때도 보기 드문 기현상이다.

그동안 노 대통령이 말한 '코드'는 애마(차량) '렉스턴'을 타고 강원도로 여행간 문재인 수석(매일경제 2월16일 2면)의 실종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다시 한번 국민들은 철학 없는 대통령을 만났다는 당혹감과 두려움에 떨고 있다.

*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나

경기고 인맥의 입각을 놓고 한국경제신문은 '화려한 부활'이라고 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려는 사람들에게는 분명 화려한 부활이겠지만 신용불량자 370만명 시대에 소득분배의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 계수'만 점점 벌어지는 오늘의 국민들에겐 '악령의 부활'일 수밖에 없다.

국민들이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대통령의 정당, 열린우리당이 소수당이라서 안정적 국정운영이 어렵다는 2003년의 상황이 아니라, 오는 4월 총선을 통해 한나라당의 원내 과반수를 저지한 대통령의 다음 행보가 더 두려운 것이다.

누군가는 대답해야 한다. 청년실업대책을 짜내기 위해 왜 문화관광부 공무원이 죽어야 했는지.

국민들이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대통령의 정당, 열린우리당이 소수당이라서 안정적 국정운영이 어렵다는 2003년의 상황이 아니라, 오는 4월 총선을 통해 한나라당의 원내 과반수를 저지한 대통령의 다음 행보가 더 두려운 것이다.



이정호 언론노조 정책국장leejh66@media.no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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