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출근길, 공영방송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뉴스에 귀가 기울여졌다. 즉 ‘국내 대학생 중 상당수가 최근 청년실업 해소를 위하여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가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것으로 생각하고, 기업의 투자확대를 유도하는 것이 두 번째 시급히 요구되는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전경련의 여론조사에 따른 것이란다. 그런데 나를 놀랍게 한 것은 그 다음 말이다.
이 설문은 최근 전경련이 실시하는 ‘시장경제’ 교육과정에 참가한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결정적인 결함을 갖고 있어, ‘기사’로서 그 자격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그 문제점을 보자.

237명의 설문대상자는 전경련이 실시한 ‘시장경제’ 교육 참가자들이다. 이 설문이 ‘시장경제’ 교육 전과 후 언제 실시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추론컨대 교육 후인 것 같다. 이 교육에서 어떤 내용이 실시되었으리라는 것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설령 교육 전에 실시한 것이라 하더라도 이들이 뉴스에서 말하는 것처럼 국내 일반 대학생의 의견을 대변한단 말인가?

특정 이익집단이 실시하는 시장경제 교육을 참가한 대학생 집단은 결코 표본의 공정성을 확보한 집단이 아니다. 설문대상 집단의 선정 자체가 문제가 있는 이 설문은 공정성과 정확성을 생명으로 하는 뉴스로서 부적합한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결과가 공영방송 라디오 뉴스로 전파를 타고 흘러나온단 말인가.

이 ‘사건’을 아침 7시 조간 뉴스의 기사로 채택한 데스크와 이것을 ‘기사’로 생산해 배포한 기관의 홍보실과 기자들에게 진심으로 묻고 싶다. 어떻게 이런 설문결과가 뉴스로 되어 정확성과 공정성을 확보한 것으로 포장되어 아침 출근길 뉴스거리로 방송된단 말인가? 이런 것을 뉴스거리로 생산하는 집단도 물론 무지함(?)을 반성해야 한다.

그러나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기자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무지함을 뼈저리게 반성하고 열심히 공부하거나, 이러한 질타의 의미를 잘 모르겠으면 기자직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97, 98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우리는 지식인 집단에 대한 대중적 신뢰의 완전한 붕괴를 경험했다. 그 후 지식인 집단에 대한 대중적 불신과 그에 따라 생긴 공백에 언론집단이 들어섰다.

특히 공중파 매체가. 요즈음 특정 전문인의 생각과 그 가치의 사회적 유의미성을 평가하는 집단이 누구인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언론에 종사하는 집단은, 자신에 대한 사회적 기대나 자신들이 누리는 권력에 비교할 때, 너무나도 노력하지 않고 있다. 그뿐 아니라 단지 감각과 입맛에 맞는 것만을 ‘뉴스’로 취하여 생산해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쪽으로 주류의 방향이 정해졌다 싶으면 모두가 그쪽에 줄서기 바쁘다. ‘수십 수백 개가 그러한데 내가 하나 더 더해주는 것 어떠하리’라는 판단에 근거해서일까? 정말 가십(gossip)성 기사 하나 더해준 것이라 생각하고 만들어내는 것일까?

이런 뉴스를 보고 들어야 할 때는 짜증나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참담한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는 진정 균형과 공정함을 찾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매일의 일상에서 듣고 접해야 하는 기사 내용이 이러한 경향을 고려해 취사선택하는 기자들의 판단에 따라 정해지고 있다면, 우리는 또 다른 취함이나 마비의 상태에 빠져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편견에 입각한 사고(?考)의 여과장치 중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심하게 작동하는 것은 노사문제나 노동문제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점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노사갈등은 있어서는 안 되는 것, 없어져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노사갈등은 시장경제체제에 내재적인 것이다.

노사갈등이 없다는 것은 비정상적으로 억압적인 체제이리라. 문제는 노사갈등을 사회적으로 저비용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사갈등에 대한 사회적 관용도 필수적이다. 추위나 더위의 강도도 개인의 몸과 마음 상태에 따라 달리 느껴진다. 즉 관건은 체감도이다.
해동(解冬)과 아울러 몸도 서서히 풀리는데, 마음은 더 움츠러든다. 올 봄 임단협 국면에서는 얼마나 심하게 두들겨 패고 맞는 공방전이 될까?

송태수 한국노동교육원 교수
tssong@kle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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