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1년을 돌아보면 ‘노사관계’ 만큼, 굴곡이 많았던 부분도 없을 것이다. ‘노동을 잘 안다’고 알려진 노무현 대통령 당선으로 노동계는 이전 정부에 비해 높은 기대를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출범 당시 대화와 타협에 무게중심을 둔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라는 슬로건을 들고 나온 참여정부는 상반기 두산중공업 고 배달호씨 분신, 철도노조, 화물연대 파업 등을 거치면서 이전 정부와는 분명 차별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그 ‘다름’은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해 6월 철도노조 파업 현장에 공권력이 투입되면서 ‘대화와 타협’보다는 ‘법과 원칙’이 다시 노사관계 전면에 나서게 된다. 노동자의 잇단 자살, 노조 활동 등을 이유로 한 노동자 200여명 구속, 천문학적 손배가압류 등 대립적 노-사, 노-정 관계는 쉽사리 극복되지 못한 채, 지난 1년은 흘렀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노무현 대통령 대선 후보시절 노동특보로 활동하다, 당선 뒤 청와대 노동개혁 T/F팀장을 맡았던 산업연구원 박태주 연구위원. 그는 지난 6월말 헬기사건으로 경질되기 전까지 참여정부 ‘사회통합적 노사관계’의 밑그림을 그리고 주도적으로 이를 추진해 왔던 인물이다. 정부 안팎에서 가깝게 혹은, 멀게 지난 1년을 지켜봤던 박태주 연구위원을 지난 19일 만나 참여정부 노사관계 1년을 돌아봤다.

- 참여정부 출범 1년이다. ‘사회통합적 노사관계’의 의미를 다시 한번 짚어 본다면.
“노동시장과 노사관계 측면으로 나눌 수 있다. 노동시장 측면에서는 양극화되고 있는 시장, 더 나아가 20대 80 등으로 나눠져 있는 우리 사회를 하나로 모아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가는 여성, 비정규직, 장애인, 저학력, 이주노동자 등 취약계층에 대한 보호를 해야 한다.

노사관계 면에서는 사회적 파트너십을 확립하는 것이다. 노,사,정 등 사회적 각 주체들의 참여를 통해 사회적 연대를 증대시킨다는 의미다. 궁극적으로 경제 효율과 사회적 형평 즉,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추구해 나가겠다는 것이 사회통합적 노사관계의 핵심이다.”

- 지난 1년을 돌아보면 ‘사회통합적 노사관계’가 전혀 실현되지 않은 것 같다.
“시대 상황에 맞는 방향을 잡았는데도 지난 1년을 돌아보면 성과가 부족했다. 이전 정부와 무엇이 달라졌나. 다시 옛날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노동시장, 노사관계 등 참여정부는 이전과 차별적인 ‘자기 색깔’을 드러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 원인을 어떻게 보나.
“정부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불운했었다. 그래서 아쉬움이 크다. 경제 상황이 그렇게 나빠지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지난 연초만 해도 상반기 5% 후반 성장을 예상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2.9% 성장이었다. 같은 한 방이라도 몸집이 좋을 때는 타격이 안 되지만 허약할 때 한방은 카운트펀치가 된다.
초반 두산중공업, 철도노조 등 처리 문제로 보수언론, 재계 반발이 심했고, 또한 참여정부가 뿌리 내리기도 전에 경제상황은 나빠졌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의 비(非)전략적인 대응도 노동개혁의 발목을 잡았다. 정부 내 개혁주체 세력이 한 줌밖에 안 되는 속에서 완전히 포위당한 꼴이었다. 결국 개혁세력의 운신 폭이 좁아지면서 기존 대화와 타협이 법과 원칙으로 바뀌는 계기가 됐다. 그 결정적인 사건이 지난해 6월28일 철도노조 파업이다.”

- 노동계는 정부가 ‘법과 원칙’으로 기조가 바뀌게 된 철도파업은 물론 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 화물연대 2차 파업 등은 모두 어렵게 맺은 합의안을 정부가 성실히 이행하지 않은 것이 갈등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대화와 타협이라는 것은 노조도 용기가 필요한 지점이다. 오히려 민주노총 문화 속에서는 투쟁이 더 쉬울 수 있다.
그리고 노동운동이 전체 관점보다는 단기적인 이익극대화 전략 등 극히 협소한 시각에서 사태를 접근했던 것이 철도노조 파업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계속 논란이 되고 있지만 이야기하지 않은 게 더 좋을 것 같은데, ‘노조와의 충분한 대화’ 등을 담고 있는 4,20 합의가 안 지켜졌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 노동정책의 기조가 몇몇 파업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결국 참여정부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 아닌가.
“처음에 정했던 정책방향이 실질적으로 드러나는 데는 그것이 뿌리박을 수 있는 토양과 사회적 주체들 간의 권력 관계가 주요하게 영향을 미친다.

정부가 중요한 변수이기는 하지만 독재도 아닌 이상, 일방적으로 정책을 펼칠 수는 없다. 정부는 정말 ‘경계선’을 걷고 있었다. 두산중, 철도, 화물, NEIS 등에 대해 언론과 재계, 정치권은 ‘좌파정부’까지 거론하며 공격했다.
어렵게 밀어붙이며 대화와 타협 기조를 지켜왔지만 정부 정책은 몰릴 때까지 몰렸다. 철도노조 파업 바람이 불면서 (정부가) 한 발짝 밀렸는데 (그 딛고 있는 곳이 처음과는) 다른 세계였던 것이다.”

- 상반기에 이어 하반기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로드맵)이 나와 또 한번 혼란이 있었다. 정부는 어차피 고쳐야 할 법제도라면 고치고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입장이다.

“자율적 노사관계 토대가 형성되지 않은 속에서 ‘로드맵’ 완성은 가능하지 않다. 자율적 노사관계와 선진화 방안은 ‘노사관계에 대한 정부의 불개입 및 상호 신뢰 회복’이라는 같은 뿌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주체 간 ‘대화와 타협’이 두 정책의 성공을 결정짓는 관건이다.

특히 민주노총 등 노사간 신뢰의 기반이 붕괴한 상황에서 선진화 방안은 오히려 갈등만 부추기게 되며 성공하더라도 본래 성과를 달성하기 힘들다. 이런 점에서 선진화 방안 논의 기간이 연기된 것은 잘 된 일이다. 미룰 수 있다면 더 미뤄야 한다.”

- ‘일자리 만들기’를 통해 사회적 대화를 복원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계속 피력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난 10일 체결된 사회협약을 어떻게 평가하나.
“일자리 만들기 대화는 사회적 공통 ‘의제(agenda)'를 갖고 노사정이 대화 체제를 복원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민주노총이 불참하면서 의미가 반으로 축소돼 버렸다. 새로 당선된 민주노총 집행부는 대화를 하겠다고 국민과 조합원 앞에 선언했다. 따라서 정부는 민주노총이 대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어느 정도 시간적 여유와 분위기를 만드는데 주력했어야 했다. 이런 측면에서 정부가 (총선 등) 정치적 의도를 갖고 일자리 대화를 시작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하는 것이다.”

- 사회통합적 노사관계의 토대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일자리 만들기’ 논의에 민주노총 참여는 중요하다. 하지만 쉽지 않을 것 같다. 정부는 총리실 내 ‘민관합동위원회’ 등 이미 만들어진 ‘판’을 확대하기 원하고 민주노총은 ‘새판’ 짜기를 원하고 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정부다. 정부와 민주노총은 타협할 지점들이 충분히 있다. 정부가 하루라도 빨리 민주노총과 대화 채널을 가동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차이가 있으니까 대화를 하는 것이다.

노사정위 개편 문제, 중층적 교섭구조 방안, 현안 등을 포함해서 포괄적으로 대화를 시작하면 접점이 만들어진다. 지금까지 문제는 이러한 대화채널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전체적인 사안에 대해 대화를 시작하면서 일자리 만들기 논의 문제도 대안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냥 들어와라, 들어와라 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에 대해 대통령 자문기구에서 독립기구로 변화 등 개편을 요구하는 등 올해 노사정위 역할과 위상 문제는 ‘뜨거운 감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노사정위가 지금처럼 준 정부기구로 인식되는 것은 독립성과 관련, 문제가 있다. 민주노총의 지적이 옳다고 본다. 하지만 노사정위의 독립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결국 돈과 인력이 필요하다. 노동계도 노사정위의 개편을 원한다면 돈과 사람을 보탤 만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
또한 노사정위가 사회적 대표성이 약한 만큼, 이 부분에 대한 고민도 따라야 한다. 노사정 결정에 직접적 영향을 받는 사회 제반세력들, 정치인까지 포함한 이들의 의견을 노사정위에서 어떻게 담아낼 것인지 대안들이 필요하다. 민주노총도 새로운 모델을 얘기하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이지 않은 것 같다."

- 민주노총 내부에서 노사정위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양하다. 참여정부 또한 경제정책에서는 신자유주의 노선을 걷고 있는 상황에서 노사정위를 그 연장선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노사정위는 신자유주의의 연장선이 맞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대안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신자유주의로 대표되는 세계화를 전면으로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전면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없지 않나. 노사정위를 통해 조율된 유연화, 규제된 세계화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 우리사회 힘 관계, 결국 자본의 이익이 관철되는 구조다. 노동계의 모습을 냉정하게 보면 예전처럼 투쟁력이 강하지 못하다.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목소리로 취급받지 못하고 있다. 투쟁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적은 힘을 사회적 큰 힘으로 발휘할 수 있게 하는 ‘지렛대’를 찾아내야 한다. 사회적 대화 기구를 제대로 작동하게 만들어 불평등 심화 문제 등에 대한 ‘처방전’을 만들어 내야 한다.”

- 올해 노사관계 전망과 변수는 무엇으로 보나.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고 있듯 총선, 주5일제, 비정규직 문제, 공무원노조, 산별교섭,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 등 올해도 노사관계를 경색 시킬 만한 과제들이 쌓여 있다. 모두 다 첨예한 입장 차이를 드러내고 있는 만큼, 상당한 갈등이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큰 변수는 역시 민주노총이다. 사회적 대화기구 복원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어쨌든 일자리 만들기 대화에 민주노총이 참여하면서 대화 체제에 시동이 걸리는 것이 최대 과제로 본다. 이를 시작으로 중층적 교섭구조 마련까지 논의가 돼야 한다.

그 동안 대립적 노사갈등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는 기업별 체제라고 본다. 중앙 교섭단위에서 한 번 걸러지고, 업종별,지역별 대화에서 또 한번 걸러지면 기업에서 일어나는 갈등도 합리적으로 풀 수 있는데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일자리 만들기를 통한 사회적 대화 기구 복원이 비정규직, 공무원, 임단투, 로드맵, 산별교섭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박태주 연구위원은 지난해 상반기에는 정부 안에, 나머지 하반기는 정부 밖에 있었다. 2시간여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박 연구위원은 상반기를 돌아볼 때는 정부 내 ‘매커니즘’에 무게중심을 두며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는 절박함을 드러낸 반면, 하반기는 보다 냉철하게 정부를 향해 비판의 날을 세우는 등 미묘한 차이를 보였다. 하지만 사회통합적 노사관계의 방향이 옳았고 이를 위해 사회적 대화기구 복원이 필요하다는 점은 줄곧 주장했던 내용이다. 이와 함께 박 연구위원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는 참여정부가 1년 동안 “한 것이 없다”고 강하게 비판하며 말을 맺었다.

“비정규직 보호방안 입법안은 아직 만들지도 못했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도 나오지 않고 있다. 특수고용직 논의도 노사정위에서 머물고 있다.
정부가 약속했던 위에 3가지 모두, 하나도 지켜진 것이 없다. 정부의 일자리 창출 종합대책도 비정규직 보호방안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여서 사회통합적 색깔을 잃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는 무엇보다 비정규직과 관련한 약속을 하루빨리 이행해야 한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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