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중앙, 세계, 국민일보에는 핀란드의 20대 청년이 자동차로 딱 한 번 과속을 했다는 이유로 무려 2억원짜리 딱지를 떼였다는 기사가 실렸다.

재미있었다. 청년은 제한속도가 시속 40km인 도로를 80km로 달리다가 경찰에 들켰다. 핀란드에서는 위반한 속도범위가 시속 20km 이하면 우리와 비슷하게 몇 만 원짜리 스티커를 발부한다.

그러나 위반 속도가 시속 20km를 넘으면 위반자의 소득에 따라 벌금액이 달라진다. 핀란드 국세청은 이 청년이 핀란드 굴지의 소시지 회사를 상속받은 재벌 2세로 소득 140억원이 넘는 부자라고 경찰에 알렸고, 경찰은 2억2,000만원짜리 스티커를 발부했다.

민주노동당의 주요 공약인 ‘부자에겐 더 많은 세금을(부유세)’이란 구호처럼 핀란드는 자동차 속도위반자도 부자면 세금을 더 많이 낸다. 2000년에도 인터넷 백만장자가 과속 한 번 잘못했다가 1억 넘는 스티커를 받았다.

우리나라에 이런 제도를 도입한다면 우리 언론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가만히 앉아 1년에 집값이 몇 억씩 뛰는 강남의 부자에게 고작 재산세 몇 십 만원 올렸다고 게거품을 물고 달려드는 게 언론이다. 그런데 중앙일보는 다른 두 신문과 달리 이 기사를 사회면에 실었다. 가독성이 높은 사회면에 실어, 우리도 같은 제도를 시행하자고 할 중앙일보가 아닌데 왜 그랬을까. 아무튼 우리 언론이 외신에서만큼은 참 공정하다.

중국 공무원이 파업해 지자체 하나가 몇 달째 완전 마비돼도 파업 노동자들의 주장을 상세하게 실어준다(“밀린 월급 지급하라” 中 지자체 공무원 파업 : 동아 2001년 6월21일). 우리나라 공무원노조는 파업할 권리만 말해도 언론으로부터 난자당한다.

우리 언론은 외국의 사회갈등에는 합리적이다가도 국내 문제로 돌아오면 이성을 잃는다. “파업 노동자를 다 때려 잡아라”는 사설은 기본이다.

민주노총이 99년부터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동시간 단축으로 주5일 근무제 도입을 요구할 땐 들은 척도 안하던 우리 언론이 프랑스에서 벌어지는, 주5일제도 아닌 주4일제 학교 수업 논쟁은 어느 쪽에도 치우침 없이 썼다.

동아일보는 2001년 8월27일 국제면에 파리특파원 이름으로 “주4일제 수업 찬반 논쟁 팽팽”이라고 썼다.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프랑스는 지금 주4일 수업제를 둘러싸고 논쟁이 한창이다. 일간지 르피가로가 23일 한 면을 털어 주4일 수업 찬반론을 소개하는 등 … 프랑스 국민과 언론의 주요 관심사가 되고 있다.”

프랑스 초등학교는 수,일요일에 쉬고 토요일에는 등교하는 주5일제다. 그런데 학부모인 노동자는 토,일요일 쉬는 주5일제다. 문제는 토요일이다. 토요일에 부모는 집에서 쉬고 애들은 학교 간다.

그러니 주말여행이라도 다녀오려는 노동자들이 토요일 등교하는 애들 때문에 함께 장거리 여행을 못 간다. 특히 91년부터 학교장 재량으로 토요일까지 쉬는 주4일 수업이 점점 늘어났다.

이 참에 아예 모든 학교에 주 4일제를 도입해 가정을 화목하게 하자는 주장에 대해, 다른 쪽에선 그래도 학교가 일주일에 5일은 열어야 한다며 논쟁이 붙었다.

지난해 우리 정부는 노동자 요구는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2004년 7월 1,000인 이상 사업장부터 시작해 2005년 7월 300인, 2006년 7월 100인, 2007년 7월 50인, 2008년 7월 20인 이상 사업장에서 각각 주5일제가 실시된다. 그런데 20인 미만 영세사업장은 2011년까지 도입할 계획이다.

학교는 구체적인 합의가 없었지만 적어도 2008년까지는 전면 주5일제 수업이 도입될 것이다.

따라서 프랑스식 논쟁은 우리에게서도 얼마든지 불거질 수 있다. 우리는 훨씬 심각하다. 프랑스에선 부모는 일하러 공장가고 자녀들은 집에서 노는 수요일은 논쟁거리도 안 됐다. 정부가 부모 없이 집에 있는 ‘수요일 아이들’을 따로 위탁 교육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2009년 토요일’은 끔찍하다. 2009년 우리나라에선 20인 미만 공장의 노동자는 토요일에 일하러 간다.

그런데 자녀는 집에서 논다. 부자 부모야 대부분 대기업에 다녀서 2009년 토요일이면 집에서 애들과 함께 놀 수 있겠지만 20인 미만 영세공장 영세노동자는 대부분 저임금이라 맞벌이가 대부분이다. 부모가 모두 공장에 가는 토요일에 초등학교 1~2학년 애들이 집에 혼자 있게 된다. 안전사고와 유괴에 무방비다. 우리에겐 ‘토요일 아이들’을 돌봐줄 변변한 아동복지제도도 없다.

혹자는 “20인 미만 사업장이 얼마나 된다구!”라고 할지 모른다. 그런데 이런 영세노동자가 이 나라 300만 명이다. 전체 노동자의 25%다. 정부가 특별한 대책을 세워줄 것 같지 않다.

그럼 언론이라도 짖어야 할 것 아닌가. 남의 나라 ‘주4일제’는 쓰면서 우리나라 주5일제 하나 제대로 챙기지 않는 언론이다.

이정호 전국언론노조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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