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열릴 때마다 태백산을 찾지 않고서는 왠지 좀이 쑤신다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의 성산(聖山)으로 숭앙되어 왔고, 산 높이에 비해 등반거리가 짧은데다 비교적 산세가 부드럽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마 대개는 눈 덮인 겨울 태백이 주는 형용하지 못할 벅참 때문이리라.
올해는 설 연휴를 빼고는 찬바람과 폭설도 잦지 않았고 기온마저 평년보다 따뜻해 세찬 바람결을 따라 나뭇가지마다 안쓰럽지만, 꼿꼿이 자리하고 있는 눈꽃을 보긴 어렵지만 겨울 태백의 기운은 여전하다.



겨울 태백은 이른 새벽에 출발하는 것이 제격이다. 특히 달 밝은 날이면 하얀 눈길이 달빛에 비쳐 렌턴 없이도 걸음이 가능하고, 천제단이나 장군봉에 서서 빨갛게 얼어버린 귓볼을 녹이며 뜨거운 커피에 일출을 기다리는 설렘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 맛을 모른다.

태백산을 찾는 사람들이 가장 즐기는 코스는 유일사매표소에서 장군봉(1,567m)을 거쳐 천제단을 찾는 길이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주목과 어우러진 환상적인 설경을 쉬이 볼 수 있고, 어린 아이 또는 산을 그리 즐겨 찾지 않는 사람이라도 편한 길이기 때문이다.
정상까지는 2시간이면 족하다. 늦어도 오전 5시께부터 산에 들어오기 시작했다면 겨울 해가 뜨는 오전 7시20~40분께까지는 넉넉하게 도착할 수 있다.

태고 때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원형제단인 둘레 27m, 폭 8m, 높이 3m의 자연석으로 차곡차곡 쌓여진 천제단 안에서 몸을 녹이다보면 어스름 붉은 기운 속에 꿈틀대는 태양이 떠오르는 걸 볼 수 있다. 순간 꼼짝도 할 수가 없다.
지리산 천왕봉과 태백산 천제단(또는 300m 떨어진 장군봉)에서의 일출은 3대가 덕을 쌓지 않고서는 여간해선 보기 힘들다고 한다. 우리 집안은 그렇지 못하다고 투덜댈 필요는 없다. 그 자리에 함께 하고 있는 사람 중 하나만 3대가 덕을 쌓은 집안이면 충분하다.
보통은 일출을 본 뒤(아니면 일출을 기다리다 실패한 뒤) 망경사를 거쳐 반재로 해서 당골로 오는 길을 택한다. 이 때 놓쳐서는 안 될 것이 단종비각이다.
12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가 3년 뒤에 숙부인 수양대군(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되어 죽음을 맞이하는 비운의 왕, 해발 1,500m 중턱에 세워진 비각은 바로 단종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함이다. 태백 사람들은 어린 단종의 영혼이 백마를 타고 태백산에 내려와서 태백산신이 되었다고 믿고 있다.

단종비각을 지나 만날 수 있는 망경사에는 손이 시리도록 차갑고 맛좋은 샘물이 솟아나고 있어 용정(龍井)이라고도 하는데, 우리나라 100대 명수의 하나로도 꼽힌다.
그런데 정말 추천하고 싶은 곳은 천제단에서 동쪽으로 40분에서 1시간을 더 걸어 찾을 수 있는 문수봉이다. 말과 글이 짧아 ‘캬~’라는 탄성밖에 지를 수 없었지만 문수봉에서 바라본 굽이굽이 안길 듯 포갤 듯 끊어질 듯 이어질 듯 능선과 구름바다는 그야말로 환상(사진)이다.

문수봉은 해발 1,517m의 수많은 바위로 된 산봉우리인데, 옛날 이 산봉우리의 바위로 문수불상을 다듬었다 해서 문수봉이라 했단다. 부처의 향이 넘치는 듯하다. 문수봉에는 마치 지리산 노고단의 그것처럼 돌탑이 있다.
몇 해 전 40대 후반의 버스기사 출신의 강처사라는 사람이 마음공부를 위해 입산(入山), 문수봉 아래에 움막을 짓고 탑을 쌓고 있다. 그는 모두 7개의 돌탑을 쌓아 칠성탑이라 이름 한다고 했는데, 언젠가 찾게 되면 7개 탑이 모두 완성됐는지 확인해 보라.

이제 출산(出山) 길인데, 문수봉에서 당골까지의 길은 호젓하여 좋다. 비료포대 아니면 좀 질긴 비닐봉지를 깔고 눈썰매도 즐기면서 천천히 당골로 가자. 눈꽃축제 중이던 1월에는 거대한 눈 조각들을 만날 수 있고 광부들의 고된 노동을 찬찬히 볼 수 있는 석탄박물관을 들러도 좋을 일. 아니면 주차장 못 미쳐 있는 식당에서 철판에 삼겹살과 김치를 구워 막걸리를 곁들이는 것도 산에서의 피로를 푸는 행복한 마침표가 될 것이다.

ㅇ 유일사 코스(4시간) : 매표소 - 갈림길 오른쪽 - 유일사 - 장군봉 -천제단 -망경사 -당골
ㅇ 문수봉 코스(5시간) : 유일사 코스로 가다가 천제단 - 주목군락지 - 문수봉 - 당골
ㅇ 당골 코스(4시간30분) : 당골광장 - 반재 - 망경사 - 천제단 - 장군봉 - 유일사 - 매표소

이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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