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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갈등 사이에 노동자 생존권은 없나
요즘 드라마를 하는 저녁시간에는 가족끼리 텔레비전 채널권 쟁탈전을 벌이는 경우가 잦아졌다. 가족 중 누군가에게 채널권이 빼앗기면 다른 가족들은 으레 재방송을 챙겨본다.
그것마저 못 보면 돈을 내고 방송사 인터넷을 통해 볼 정도로 그만큼 드라마가 시청자에게 미치는 영향력 또한 만만치 않게 됐다.

특히 지난해 10월에 끝난 KBS ‘노란손수건’이라는 드라마는 ‘호주제’ 문제를 녹여내 많은 관심을 모았다. 미혼모인 여자 주인공이 아이의 양육권을 요구하는 전 남자에게 “지금은 아빠가 정영준이었다가 학교에 들어가면 아빠가 이상민으로 바뀌는데 그 애한테 그런 혼란을 주고 싶어요?”라고 절절한 감정이 담긴 대사 한 마디, 눈물로 호주제 문제를 건드렸다.

이 드라마로 인해 호주제 폐지 문제에 대한 홍보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드라마 홈페이지 게시판 접속자도 폭주해 ‘호주제 폐지’에 관한 열띤 토론이 이뤄지기도 했다. 시사프로에서 아무리 호주제 폐지를 말해도 관심 없던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이 드라마는 지난해 여성부가 주는 ‘남녀평등 방송상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이처럼 드라마는 감정적으로 친밀하게 사람들에게 다가가 어느 순간부터 그들의 의식을 건드린다. 그
러나 ‘노란손수건’처럼 긍정적 효과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아니, 오히려 부작용이 더 많다.

남녀간의 사랑, 미움, 증오 등 감정곡선만 따라가다 보면 자칫 잘못된 여론몰이를 깨닫지도 못한 채 무의식적으로 모든 걸 받아들이게 되는 경우도 많다는 점이다. 특히 드라마의 왜곡된 노동문제 접근에 대해서는 각 방송사의 옴부즈맨이나 언론 단체들조차 무관심하다.

현재 방영 중인 ‘발리에서 생긴 일’(SBS)이나 ‘귀여운 여인’(MBC) 등의 드라마에서는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무시한 채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로 노동자를 해고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올해 1월부터 방영을 시작한 ‘발리에서 생긴 일’은 하지원(이수정 역)을 등장시켜 돈 없는 강인욱(소지섭)과 돈 많은 정재민(조인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관계를 연출하고 있다.
갈등 과정 중 정재민이 이수정에게 자신의 회사에 계약직으로 취직을 시키나, 정재민 어머니는 이수정이 자신의 아들을 유혹했다며 직원을 시켜 해고를 통보했다. 해고사유는 계약기간 만료도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었으며 해고 예고 등의 어떠한 절차도 없이 “넌 해고야”로 끝났다. 사유를 묻자 담당 상사는 “임시직한테 (해고) 이유가 어딨어? 나가라면 나가야지.” “억울하면 정식 직원으로 오면 될 거 아냐?” 라고 되레 소리를 치고, 이에 이수정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라며 눈물을 흘리더니 끝이다.



‘귀여운 여인’에서도 마찬가지다. 백화점을 운영하는 장대웅(정보석)이 그의 약혼녀가 백화점에서 일하던 김소연(장신영)을 내보내라고 하자 그는 김소연에게 백화점을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옮길 것을 요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해고만이 문제가 아니라 채용과정에도 문제가 있다. ‘발리에서 생긴 일’의 정재민 약혼자로 나오는 최영주(박예진)는 이수정을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갤러리에 채용시킨다.
채용과정은 간단하다. 최영주가 거만하게 묻는다. “저번에 있던 곳에서 얼마 받았어요?” 하지원이 말한다. “80만원이요.” “그럼 100만원 줄께요. 내일부터 나와요.” 채용은 끝났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한다거나 임금 외에 다른 근로조건에 대한 설명은 없다.

드라마에서 부당하게 해고된 노동자가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낸다거나 노동부에 진정,고소,고발을 하는 모습을 기대하기 힘들지라도 적어도 왜곡된 표현은 없어야 한다.

특히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임시직을 해고하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냐”라는 대사나 개인감정을 앞세워 해고를 하는 행위 등은 명백한 노동법 위반임에도 자칫 부당한 해고에 맞설 권리마저 없다는 왜곡된 인식을 부지불식간에 심어줄 우려가 크다.

민주노무법인 윤여림 노무사는 “사용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단순히 개인적인 감정으로 해고를 했을 경우 부당해고로 사용자는 5년 이하의 징역과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된다"고 설명한다.

조금미 기자

조금미 기자  labortoday@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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