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는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우선, 경제적으로 커다란 변화가 있었으며 이러한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경제시스템이 요구되고 있다.

전통적인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가 지식정보산업 중심의 고부가 가치 산업 중심으로 바뀌고 있으며, 경제운영방식은 보호무역과 시장규제 중심에서 시장개방과 탈규제로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IMF 사태라는 엄청난 고통을 겪었고 지금도 비정규직 확산, 청년실업 고착화, 빈부격차 심화 등과 같은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영,미식 자본주의의 폐해

문제는 이 뿐만 아니다. IMF 사태 이후 우리 사회에 급격히 이식된 영,미식 자본주의가 청년실업과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있으며 빈부격차를 심화시키고 있다. 또한 손쉽게 돈을 벌려는 풍조가 확산되어 로또 열풍과 부동산 투기로 중소기업들은 만성적인 인력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영,미식 자본주의는 협력보다는 경쟁을, 연공보다는 성과를 강조하고 주식시장을 통해서 자본을 조달하고 경영자를 감시,견제하기 때문에, 이러한 영,미식 자본주의를 채택한 우리 기업들은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과학기술이나 인적 자원에 대한 투자를 더욱 회피하여 우리 경제의 국제경쟁력은 더욱 약해지고 있다.
청년실업과 비정규직의 양산도 이와 같은 영,미식 자본주의 제도를 도입한 데 따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 경제의 국제경쟁력을 제고하고 실업과 비정규직 그리고 빈부격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영,미식 자본주의 제도를 우리 실정에 맞는 새로운 제도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정치적으로도 커다란 변화가 있었고 그러한 변화들은 새로운 형태의 정치와 제도를 요구하고 있다. 87년 이후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가 보장되고 국회의 역할이 활성화되었으며, 시민사회에서는 대부분의 개인과 단체들은 자유롭게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물러난 뒤에는 보스에 의한 전횡은 더 이상 어렵게 되었으며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에는 지역감정도 이전과 같은 위력은 잃어가고 있다. 반면 민주적 리더십은 아직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개인 또는 집단간 첨예한 대립과 갈등이 국회와 정당, 생산현장과 지역사회에서 끊임없이 터져 나오고 있다.

대외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고 이 역시 새로운 외교정책에 대한 요구로 이어지고 있다. 불신과 대치로 일관하던 남북관계는 교류와 협력이 강화되었으며, 미국이 요구하면 무엇이든 들어주는 대미종속적인 한국 외교에 대한 국민적 불만도 높아지고 있다.

진보정당의 원내진출, 시대적 필연

이처럼 우리 사회는 대내외적으로 중대한 도전과 문제에 직면해 있으며 국민들은 이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정치적 리더십을 갈구하고 있다. 그러나 보수정당들은 그런 능력도 자격도 없다.
기성정당들은 하나같이 영,미식 자본주의를 최선의 대안으로 신봉하고 있으며,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삼간 태워 버리는’ 것처럼, 재벌이라는 애물단지를 개혁하려다가 오히려 한국 경제의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당내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정책정당을 표방한 진보정당이 2002년 지방선거와 대선에서 국민들로부터 폭발적인 지지를 얻자, 보수정당들도 하나같이 당내 민주주의를 한다고 선언했지만 당비도 내지 않는 당원을 여전히 돈으로 매수하고 있으며, 정책정당을 지향한다고 하지만 그 정책들이 다른 정당과 차이도 없다.

국회에서는 허구한 날 상대방 비리나 부패를 폭로하고 비방하는데 급급하고, 그것도 모자라 선거자금 또는 개인치부를 위해 기업인들로부터 ‘푼돈’이 아니라 아예 ‘차떼기’로 돈을 뜯어가고, 그러다 발각된 동료의원의 구속을 막기 위해 방탄국회를 소집한다. 일부 정당들은 3김을 대신할 리더십조차 만들어내지 못해 해체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개혁정당’을 자처하는 기성정당조차 아직도 북한을 협력 상대로서보다는 경계 대상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보수정당들은 ‘마마보이’처럼 미국이 없으면 금방이라도 북한이 쳐들어올까 두려워 미국의 요구는 무엇이든 다 들어주고 있다. 불필요한 무기도 구입하고 미군기지 이전비용도 기꺼이 부담하고 미국이 잘못해서 저지른 전쟁을 지원하기 위해 우리 군대도 보내 아까운 국민의 혈세와 생명을 낭비하고 있다.

기성정당이 이러니 국민들이 진보정당에게 눈을 돌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 진보정당의 원내진출은 이 시대의 국민적 요청이며 필연이다.

정영태 본지 논설위원,인하대 교수(사회과학부)
ytjung@in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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