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대학생 딸의 홈페이지가 무슨 대단한 특종인 냥 사회면에 대서특필했던 우리 신문들이 이번엔 대통령 며느리 배씨의 홈페이지를 앞 다퉈 보도했다. 그렇게 사회문제를 다룰 기사가 없었는지….

조선일보를 중심으로 첫 보도가 나온 지난 2일자 기사는 대통령 며느리 부부에 대한 심한 관음증에 지나지 않았다. 대통령 며느리가 신혼여행을 간 것과 해외여행을 다녀온 사실, 남편 해외출장에 데려가 달라고 떼쓰는 아내 등 일상적인 내용이지만, 서민적인 냄새보다는 이 나라 상류층 가정의 일상이 담겨있다.
대통령 며느리의 홈페이지가 기사 가치가 있는지는 언론사가 판단할 문제지만 이런 보도를 볼 때마다 국민들은 “참 할 일도 없나보네”라는 반응이다.

발렌타인 데이가 오면 80만원짜리 초콜릿 세트가 나왔다고 쓰고(조선일보 1월31일자 10면), 재벌 외손자가 대학교 총학생회장이 됐다고 대서특필한데 이어 그 학생회장이 등록금 인하투쟁을 한다고 또다시 대서특필하는 기사(조선일보 2월4일자 22면)에서 국민은 아예 안중에도 없다.
또 조선일보는 기사 끝 부분에 배씨의 홈페이지와는 별도로 청와대 한 행정관이 또 다른 홈페이지를 개설하면서 경호원들의 사진을 공개한 내용을 싣고 있다. 조선일보는 경호원 사진공개가 논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날 해당 행정관은 징계를 먹었고, 물론 그가 만든 홈페이지도 폐쇄됐다. 그러나 이 행정관과 전혀 별개인 대통령 며느리 배씨의 홈페이지도 함께 폐쇄됐다. 조선일보는 이날 기사 제목으로 ‘대통령 며느리 홈페이지 폐쇄’라고 달았다.
그런데 기사내용에서 배씨의 홈페이지가 폐쇄된 것에 대해서는 설득력 있는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대통령 가족의 사생활이 지나치게 공개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청와대가 권고한 것이라고만 달았다.
그러나 이틀 뒤인 5일자 국민일보 기사를 통해 철없는 부잣집 며느리 배씨의 형편없는 사고방식에 대한 국민들의 들끓는 분노 때문에 며느리 홈페이지가 폐쇄된 것이라는 사실이 새롭게 부각됐다.(국민일보 2월5일자 7면 : “뭐, 150만 원짜리 유모차?")

문제는 출산을 앞둔 배씨가 150만 원짜리 외제 유모차에 반해서 대통령 부부에게 사달라고 졸라야겠다고 밝힌 부분이다. 배씨의 남편도 멀쩡하게 돈을 버는 가장인데 아이 유모차로 150만 원짜리를, 제 돈도 아니고 시부모에게 사달라고 조를 만큼 배씨는 철이 없었던 것이다.
대통령 며느리와 비슷한 나이의 늦깎이 여대생이 일자리가 없어 편의점에서 우유와 빵을 훔치다가 경찰에 입건됐다. 이 여대생은 열심히 살려고 학습지 교사, 아르바이트 등 여러 일을 했지만 결국 실업자가 됐다고 했다. 실업자가 80만명이 넘는 한국 상황에서 대통령 며느리가 홈페이지 만들어서 150만 원짜리 수입 유모차를 흠모하는 꼴에 딱 질려 버렸다. 그래서 네티즌들은 공분했다.
며느리 홈페이지를 보도한 각 언론사 홈페이지에 분노한 시민들의 글이 쏟아졌다. 결국 국민들의 분노가 배씨의 홈페이지를 폐쇄시킨 주 원인인데도 사생활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식으로 둘러대는 청와대의 해명도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이래저래 국민들은 서글프다. 해방이후 50년이 넘게 정권이 수차례 바꿨지만 ‘진정한 서민대통령’ 하나 갖지 못한 우리 국민들은 참 복도 없는 사람들이다. 민경찬, 김홍업, 김현철, 전재용, 박지만 같은 불행한 대통령 자녀와 친인척만 양산하는 건 아닌지….
그래도 노무현 대통령의 아들과 딸이 일찍 결혼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그렇지 않고 미혼으로 있었다면 21세기판 노소영-최태원 부부 꼴이 됐을 게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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