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9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될 정치자금법 개정안에 ‘노조의 정치자금 후원 전면금지’조항이 포함된 것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노동계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정당투표제 도입으로 인해 진보정당의 국회진출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노동계가 지지하는 정당을 후원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정치기금을 모금하고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이 같은 정치자금법 개정안이 발표돼 노동계의 충격은 더 큰 상태다.

양대 노총은 11일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저지하기 위해 연대투쟁을 벌일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대국회 투쟁이 예상된다. 민주노총 신언직 정치국장은 “한국노총에 공동투쟁을 제안할 계획”이라고 밝혔으며, 한국노총도 “민주노총과의 공동투쟁을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노동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정치자금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노조의 정치자금 모금 자체가 불법소지가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한국노총은 사민당 총선후보로 20여명을 출마시킨다는 계획 아래 조합원 1인당 3,000원씩 모금하고 있으며,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 총선후보로 45명을 확정하고 조합원 1인당 5,000원씩 정치기금을 모금하고 있다.

이에 앞서 국회 정치개혁특위는 지난 9일 전체회의를 열어 비례대표 축소, 지구당제 폐지, 기업?단체의 정치자금 기부금지 등을 골자로 한 선거법ㆍ정당법ㆍ정치자금법 개정안을 일괄처리, 법사위로 넘겼다. 정치권이 기업의 정치자금 기부금지를 합의한 것은 불법 대선자금과 경선자금 문제로 인한 국민적 공분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노동단체와 기업을 동일한 잣대로 취급한 것에 대해 양대 노총은 “위헌판결을 무시하는 등 진보세력의 원내진출을 막기 위함 음모”라고 주장하고 있다. 기업은 사익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조직이지만, 노조는 노동자의 자발적 결사체로서 노동자의 정치적 지위향상도 조직목적에 포함되기 때문에 지지하는 당을 지원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

노동단체가 정치자금을 자유롭게 내게 된 것도 불과 4년여밖에 안됐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99년 11월 한전산업개발노조가 제기한 헌법소원에 대해 “노동단체의 정치자금 기부행위를 금지한 정치자금법 제12조 5호는 위헌”이라고 결정한데 따른 조치이기 때문이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사용자단체는 정치자금 기부를 허용하면서 유독 노동단체만 그런 행위를 금지하는 것은 평등권을 침해하고, 기부를 통한 정치적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길을 제한하는 것”이라며 “이는 특히 근로자들에게 불리한 정치의사가 형성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민주노동당 김종철 대변인은 11일 “위헌여부 검토가 끝나는 대로 위헌청구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한국노총은 11일 성명에서 “어떻게 ‘차떼기’, ‘떡값’ 등의 부정한 방법으로 모아진 수십, 수백억원의 검은 돈과 노동자들의 정치개혁을 위해 한푼 두푼 모아낸 정치발전 기금이 도매금으로 함께 취급될 수 있는지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민주노총도 같은 날 성명에서 “97, 98년 노동자 대투쟁에 의해 확보한 노조의 정치활동 자유를 일거에 박탈하고 있다”며 “기업의 불법적인 유착행위를 한국정치의 민주적 개혁을 추구하는 행위와 동일시하는 몰염치한 음모”라고 규탄했다.

송은정 기자(ssong@labo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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