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사건에 대한 보수적인 대법원 판례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사용자와 노동자(노동조합)간에 많은 분쟁의 불씨를 생성시켜, 대법원 판례의 기능인 법적 안정성 및 단결권 보장으로 인한 노사간 자치질서 조성에 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얼마 전 사용자의 불성실 단체교섭에 항의하고자 설립된 지 얼마 안 된 A노조는 공식적 결정에 의한 조합원 전원의 ‘조끼’ 착용을 지시했다. 이에 대해 사용자는 “조끼착용은 판례(대법원1994.06.14, 선고93다29167)에 위반될 뿐만 아니라 조리사의 경우 식품위생법 위반행위”라며 “위법한 쟁의행위 및 업무방해죄,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고소 및 손해배상을 할 것”이라는 내용의 최고장을 개별 조합원에게 송부하였다.
이에 조합원들이 다음날 거의 모두 조합조끼를 벗었으며, 결국 노조의 단결력이 심각하게 위축된 경우가 있었다.

통상 전임 노조간부들은 노조 조끼를 입고 있으며 또한 대규모 사업장의 경우 일반 조합원의 경우에도 평소 이를 입어도 사용자로부터 복장규정 위반 등으로 제제를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또한 쟁의행위 돌입이전에 단결력 향상, 대외적 세력과시 등을 위해 조끼착용, 리본패용, 배지부착 등 ‘복장투쟁’이 사용자와 별 마찰 없이 이루어진다. 반면 신설 노조의 경우 주로 준법투쟁 및 항의표시의 조합활동으로 이루어지는 ‘복장투쟁’의 경우 위 A노조의 예와 같이 사용자와 심각한 충돌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일반적으로 복장투쟁의 개념으로 판례상 문제가 된 경우는 없었지만, 대법원은 △대구파티마병원사건(대법원1994.6.14, 선고93다29167)에서 “평상복 착용은 쟁의행위에 해당한다”고 하였고 △금촌의료원사건(대법원1996.4.23, 선고95누6151)에서도 “위생복 위의 주황색 셔츠 착용은 인사규정 위반의 징계사유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문제는 위의 두 가지 대법원 판례가 “간호사의 평상복 착용을 쟁의행위 개념으로 파악하여 그 업무저해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다만 구체적 업무저해성의 판단기준을 사업의 성질에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조합활동’과 ‘쟁의행위’는 평화의무 적용여부, 노동조합및노동관계법상 각종 절차규정 적용여부, 업무저해성의 당연 용인 여부 등에 있어서 구별되지만, 양 개념이 헌법 제33조로부터 파생되어 그 정당성이 인정될 경우 당연히 민?형사면책규정이 적용된다.
구체적으로 조합활동의 정당성 문제는 첫째, 조합활동성(노동자의 활동이 노조 활동으로서 인정되는지 여부) 둘째, 조합활동의 정당성(시설관리권 및 명예 등 사용자권리와의 비교형량문제)이 준거기준이 되고 있다.

따라서 배지부착, 리본패용, 조끼착용 등 ‘복장투쟁’이 쟁의행위 기간 이전에 이루어질 경우 이는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하는 쟁의행위의 정당성 문제로 파악할 것이 아니라, 조합의 결의 및 지시에 의해 이루어져 사용자의 법익과의 균형 여부가 중요시 되는 조합활동의 정당성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아니할 경우, 노동조합이 나누어준 리본이나 배지 부착, 조끼 착용시 이를 쟁의행위로 보아 노조법상 절차위반, 업무방해죄 등으로 형사처벌이 가능하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가 성립한다.

또한, 복장투쟁으로 인해 전혀 업무에 차질이 없는 것이 통상적인 것에 비추어 볼 때 위 간호사 조합원의 복장투쟁에 대한 판례에 있어서 “환자들에게 불안감을 줄 수 있는 등” 고객을 직접 접하는 사업의 성질상 달리 해석할 여지가 있기 때문에 판시한 것뿐이라고 좁게 해석해야만 한다.
또한 위 판례의 사건들은 연월차휴가사용, 점거농성, 현수막 부착 등 다른 행위와 병합되어 충분히 이견이 생길 수 있는 사례였다.

결과적으로 복장투쟁의 경우 조합활동의 정당성 문제로 접근해야만 하며, 이는 일반적인 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직무 특성상 복장투쟁은 ‘구체적 업무저해’가 발생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에는 복장투쟁은 일본판례의 입장처럼 “주관적 직무전념 의무에 반하게 되어 추상적인 위험이 현존하므로 조합활동으로서의 정당성이 인정되지 아니한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노동법 119>를 읽고 있는 동안 잠시 “오늘 방송될 대장금의 장금이가 어떻게 될까”라고 상상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직무에 전념하지 아니하여 징계될 수 있다는 입장과 뭐가 다른가?
또한 추상적 위험만으로 조합활동의 정당성이 부정되는 것이라면 노동3권을 헌법에서 보장한 취지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적절한 해답은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이다.

권동희 공인노무사
(민주노총 수원지구협의회 법규부장)


상담문의 : 민주노총 경기본부 수원지구협의회 031)252-2348, http://kgrc.nodong.org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