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손석춘 논설위원이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추기경의 근심, 백성의 걱정’이란 칼럼이 쟁점이 됐다. 손 위원은 “추기경의 정치적 발언이 현실을 호도할 뿐만 아니라 민족의 내일에 심각한 걸림돌로 불거졌다”고 했다.
그러자 조선, 동아, 중앙일보는 일제히 2일자 신문부터 연일 오마이뉴스가 민족의 원로까지 폄하하기 시작했다며 칼럼과 후속기사로 논쟁을 가열시켰다. 조선일보는 3일자 26면 데스크 칼럼에 오마이뉴스의 기사 제목을 본 딴 ‘추기경의 근심, 좌파의 걱정’이란 글을 실었다. 이 칼럼에서 조선일보는 “김 추기경은 민족의 걸림돌이 아니라 좌파의 걸림돌이 됐다”며 “어설픈 정치적,이념적 목적에 사로잡힌 채 김 추기경을 깎아 내리는 것”을 비난했다.
보수화를 부추기는 세력
나는 오마이뉴스를 좋아하진 않는다. 국정철학이라고는 한 푼도 없는 참여정부가 언론개혁의 대상인 신문사 편집국장들을 청와대 뜰 앞에다 불러놓고 흥청망청 술이나 마시면서 ‘존경하는 홍 회장(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이라고 말하면 며칠 뒤 오마이뉴스에 홍 회장 인터뷰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리는 걸 보면 오마이뉴스 역시 권력화 된 제도권 언론의 모습을 답습하고 있다는 생각만 든다.
그러나 이번 손 위원의 추기경 비판은 정당하다고 본다. 더 정확히 말하면 추기경 개인이 문제가 아니라 추기경의 눈과 귀를 막는 일부 카톨릭 교단의 문제다.
한국 사회에서 추기경은 원로다. 카톨릭 교단 역시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위해 여전히 많은 일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언제부턴가 명동성당은 노동자에게 농성장을 빌려줄 수 없다고 했다.
명동성당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한총련 수배자와 해고,수배 노동자, 심지어 지난해 12월21일엔 법무부의 체포망에 갇힌 불법체류 이주노동자에게마저 퇴거명령을 내렸다.
대한성공회와 기독교연합회관, 기독교 100주년 기념관, 서울조선족교회 등 6곳의 종교단체가 이들 갈 곳 없는 이주노동자에게 기꺼이 성소를 내 주었다. 심지어 보수 성향의 한국기독교총연합회마저 이주노동자 문제해결에 나섰다. 그러나 명동성당은 내부회의를 열어 농성중인 이주노동자에게 퇴거를 명령했다.
이는 추기경의 결정이 아니다. 추기경 주변에 광범위하게 포진해 카톨릭 교회의 보수화를 부추겨온 교단이 문제의 중심이다. 수많은 스님들이 가난한 중생구제를 위해 아무리 노력해도 조계종 교단을 장악하기 위한 낯부끄러운 유혈폭력 사태가 발생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추기경의 오판은 이번만이 아니다.
전국의 지하철과 철도 노동자가 동시에 파업을 벌였던 94년 6월 전국지하철노조협의회와 전국기관차협의회의의 공동파업 때도 김 추기경은 ‘파업투쟁 자제 요구 및 정부의 성실한 대화’라는 소위 ‘원로 성명’으로 파업을 일거에 잠재워 버렸다.
우리는 이를 ‘6인 원로성명’이란 이름으로 기억한다. 이 성명에는 김 추기경, 송월주 스님, 김성수 주교, 강원룡 목사 등 원로 6명이 참가했다. 이 성명서 한 장 때문에 물도 없이 커피봉지를 생으로 입에 털어 넣으며 졸음을 쫓아야 했던 기관사들의 살인적 노동강도 완화요구는 한 숨에 깨져 버렸다.
그 때에도 문제의 핵심은 추기경이 아니었다. 당시 이 파업을 이끌었던 파업노동자들은 그 해 7월22일 ‘6인 원로성명 경위 최종보고서’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한 노동전문지 사장이 청와대 등과 교감, 파업중재를 자청하다가 파업노동자와 협의 없이 원로들의 선의를 왜곡해 독단적으로 추진했다고 나온다.
그는 추기경에게 성명서 작성을 권해 승낙을 받은 뒤 성명서 문안까지 만들어왔다고 한다. 당시 성명에 참가한 강원룡 목사는 명동성당에 가보니 이미 기자회견장과 성명서가 만들어져 있었다고 했다. 이 사장은 이후 보건복지부 장관까지 했지만 정작 자신과 노동운동을 연결짓는 유일한 고리였던 그 노동전문지는 문을 닫았다.
추기경을 놓고 난장판 싸움을 벌이는 조,중,동의 오늘의 모습에서 10년 전 그 때 일이 떠오르는 것은 왜 일까.
이정호 언론노조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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