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특수강 해고자 조성옥, 이재현씨의 압연로 굴뚝 농성이 5일 현재 92일째다. 그런데도 기아특수강에서 세아홀딩스로 바뀐 회사는 아무런 대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35년 만에 찾아온 추위로 비닐 안에 있는 물이 꽁꽁 얼고, 3평의 난간 철바닥에서 얼어 죽지 않으려고 침낭을 부여잡고 꿈에도 그리는 해고자 원직 복직을 이루려고 사투를 벌이고 있는 농성자들의 5번째 편지를 소개한다.


기아특수강 해고자 이재현, 조성옥

네 번째 편지를 쓰고 나니 자신만만해 하는 우리를 시험하려는 듯이 설 연휴를 맞아 강추위에다가 폭설까지 몰아쳤습니다. 우리는 일주일 가까이 계속된 추위와 싸우느라 힘을 다 쏟아야 했습니다.

군산에도 35년 만에 기록했다는 영하 15도의 추위와 눈보라로 설날에 조상님 못 찾아 뵌 죄송스러움도 느낄 겨를이 없었습니다. 추위와 맞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참아내는 것밖에’ 없었지요. 평소에도 옷을 7겹이나 껴입고 지내는 굴뚝 생활이지만, 이때는 옷 하나라도 더 껴입고 침낭 속에서 체온을 뺏기지 않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살아남았습니다. 어떤 분이 “동사 실험 중인 마루타”라고 우리들을 안타까워하셨지만, 우리 몸은 얼지 않았습니다. 굴뚝 위 비닐 움막 안에 있는 물병이 밤새 얼음덩이로 바뀌었지만 다행히도 우리 몸은 그대로였습니다. 다만 앙 다물었던 어금니만이 아플 뿐이었습니다.
지난 10년 해고생활의 고통과 설움을 겪지 않았다면, 또한 자본가들에 대한 분노가 없었다면 추위와의 싸움이 더 힘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추위에 우리가 살아있는지, 휴대전화 배터리가 아직 남아있는지를 확인하는 가증스러운 자본가들에 대한 적개심이 우리 투쟁의 샘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추위와 한판 싸움을 끝내고 나서 맞이한 추위 없는 세상은 어느 때보다 포근하고 살맛났습니다. 물론 그것도 일주일이 채 못가고 그저께부터 다시 추워지고 말았지만, 설 때처럼 추워지랴 생각하니 그리 걱정이 안 되네요.
지난 편지에서 썼듯이 오늘도 어김없이 음식물과 옷가지를 올릴 때면 가족들과 회사 관리자들 간에 싸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휴대전화 배터리와 시위용품 때문인데, 얼마 전부터는 금속탐지기까지 동원해서 배터리를 찾으려고 제정신이 아닙니다. 가족들에게 금속으로 된 보온물병을 플라스틱으로 바꾸라고 요구한다고 하니 싸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감옥에서도 볼 수 있는 책조차도 안 된다고 합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추위에 해고자 얼려 죽이려는 사람들이 해고자 건강 생각해서 담배도 올려주지 않겠다고 말했다는데, 정말 왕짜증입니다.
하지만 신나는 일도 있습니다.

지난달 26일 공고된 임원선거에 그동안 회사 탄압에 맞서 현장 활동을 함께 해온 기아특수강민주노동자회(기민노) 동지들이 후보로 출마해서 해고자 복직을 내걸고 선거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앞에 내거는 구호가 “사정없이 싸우겠습니다” 랍니다. 너무 재미있고 너무 멋집니다.
노조의 성격을 확 바꿔낼 중요한 선거여서 굴뚝 해고자들도 우리들 요구를 잠시 접어두고, 선거 운동원으로 변신했습니다. 그저께는 “기민노와 함께 당당한 노조 건설"이라 적은 가로 5m 짜리 대형 현수막과 “꿈은 이루어진다. 민주노조"라는 현수막을 새로 걸었더니, 회사 관리자들이 난리가 아닙니다. 아마도 굴뚝 아래를 아예 막아버릴 작정인가 봅니다.

며칠만 있으면 우리가 굴뚝에서 싸움을 시작한지 100일이 됩니다. 지극정성 100일이면 하늘도 감동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100일 기도들을 한다는데, 우리도 그동안 정성으로 싸웠다고 생각하는데, 기념잔치(?)를 안할 수는 없겠지요. 지역동지들은 100일이 되는 오는 13일에, 그리고 전국의 동지들은 일요일인 15일에 잔치를 열어주신다고 하니 힘이 솟습니다.
그때 많은 동지들을 만나 뵐 수 있길 바라면서 글을 줄입니다.

굴뚝농성투쟁 91일째 날에(2월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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