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와는 달리, 지난 10년간 우리경제의 기업 환경이 크게 개선된 것으로 드러났다.
기업문제를 연구하는 민간기관인 코레이(KorEI)는 지난 14일 우리기업 환경을 측정, 평가하는 기업환경종합지수(약칭 코레이지수)가 지난 92년 100을 기준으로 했을 때 지난 93년부터 2002년까지 10년 동안 217로 높아져 두 배 이상 개선됐다고 발표했다.

조선일보는 지난 15일자 B5면에 ‘기업여건 꾸준히 개선’이란 제목으로 이 같은 사실을 인용 보도했다. 특히 코레이지수는 97년 147에서 2002년 217로 높아져 IMF를 기점으로 더욱 높아져 왔다. 조선일보는 “코레이지수의 세부항목들 중에는 사회 간접자본, 시장효율, 기업지배구조, 인력, 기술 등에서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경제를 망치는 노동자들 때문에 기업들이 죽을 맛이라던 신문치고는 이례적인 보도였다. 그러나 나흘 뒤 조선, 동아일보는 앞의 보도를 까마득히 잊은 듯, 다시 노무현과 이익집단들(노조) 때문에 나라가 망하겠다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를 다시 빼들었다.
19일자 조선일보는 “노무현 정부가 정치권과 이해단체(노조)의 제살 뜯어먹기식 투쟁으로 경제 리더십을 잃고 우왕좌왕 하고 있다”는 경제학자들의 기자회견 내용을 정작 회견이 열리기도(!) 하루 전에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이 내용을 며칠 동안 스트레이트 기사와 칼럼 등을 통해 울궈 먹었다.

물론 동아일보도 가세했고, 중앙일보 역시 빠지지 않았다. 중앙일보 20일자 ‘400여 경제학자들의 외침’이란 사설까지 동원해 이들 교수들의 기자회견과 발표한 성명 내용을 우국지사들의 구국의 결단인 양 칭송했다.
그러나 이번 교수들의 집단행동은 김병주 서강대 교수가 주도했다. 조선과 중앙일보는 김 교수의 인터뷰 내용을 문답식으로 기사화하기도 했다. 김 교수가 누구인가. 얼마 전 중앙일보는 김 교수를 놓고 박정희 시대 이후 대통령 경제수석 등을 지내며 지난 30여년 동안 우리경제의 핵심 브레인 역할을 해 온 경제엘리트 집단인 ‘서강학파’의 막내둥이라고 평가했다.

이들은 권력의 하수인이 돼 수 십 년 동안 이 나라 경제정책을 좌지우지하면서 나라경제를 거덜내온 IMF의 원흉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지금 와서 자신들이 망친 경제를 살려야 한다며 시국성명을 발표하는 건 코미디다. 이들은 70, 80년대 개발독재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장본인들이다.

이들의 시국성명은 악몽과도 같은 개발독재를 관 두껑 열고 되살려 내라는 절규에 가깝다.
그들은 “노조와 같은 각종 이익집단을 과감히 처단하고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도 신속히 종결해 기업하는 이의 의욕을 부추겨야 한다”는 우회적인 논법을 구사하고 있지만 사실 그들의 논리는 국민이야 어떻게 되든 기업주만 잘 사는 대한민국을 건설해 달라는 주문에 다름없다.

조선, 동아일보는 이들의 성명발표 사실에 너무 흥분한 나머지 성명발표도 나기 전인 지난 19일 아침신문에 ‘경제학자 500여명 오늘 성명 발표’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정작 이들은 19일 오전 미리 배포한 숫자에 크게 못 미치는 411명의 연서명을 받아 성명을 발표했다. 따라서 중앙일보는 20일 ‘교수 400여명 경제 살리기 촉구성명’이라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스트레이트 기사로도 충분하지 않았는지 20일자 23면 칼럼에선 서명당사자인 연세대 이영선 교수의 글을 실었다. 그래도 분에 차지 않았던지 21일자 3면엔 김병주 교수의 직접화법을 인용해 “지금 우리가 안 나선다면 후손에 또 큰 죄 짓는 일”이란 기사를 실었다.

이들 신문이 수년전 삼성그룹 이재용 상무의 변칙상속을 처벌해 우리경제가 자본주의의 기본원칙이 작동하는 나라로 만들어달라고 했던 그 많은 법학자들의 요구에 대해 어떤 보도태도를 취했는지는 세상 사람들이 다 안다. 이들 신문이 법학자들의 요구엔 처절하리만치 침묵했었다.

재벌과 부당한 국가권력의 경제독식에 대해 수많은 소장학자들이 여러 차례 경고하고 입장을 발표했을 때 침묵했던 조선일보는 21일자 3면기사에선 “이번 경제관련 시국선언은 사상 처음”이었다고 과감하게 단정하고 있다.
또 조선일보는 “이번 선언을 발표한 배경에 대해 국민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도 했다. 이들 교수들은 이번 성명의 배경을 묻는 중앙일보의 질문에 “졸업 후 취업 못하는 제자들을 위해 나섰다”고 핑계를 댔다. 한국사회의 교수들이 언제부터 취업 못하는 제자 걱정까지 했는지 모를 일이다.
이런 식의 ‘앙가주망’은 이제 지겨울 때도 됐다.

이정호 전국언론노조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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