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오후 1시 청량리 기차역에 위치한 청량리기관차 승무사무소.
입구에는 '선배님들의 복직을 환영합니다'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고 건물 안에서는 웃음소리와 얘기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이날은 지난 1994년 전국기관차협의회(전기협)와 전국지하철노조협의회(전지협) 공동파업으로 해고됐던 이들이 복직해 처음 출근한 날. 24명의 복직자 가운데 청량리 사무소로 복직한 두 명의 선배 기관사를 환영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복직의 주인공은 당시 전기협 의장과 대변인으로 철도 기관사들의 파업을 이끌었던 서선원씨와 이철의씨.
지난 16년간 함께 운동을 해 왔던 두 사람은 10년 만에 청량리기관차 사무소에서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서씨는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지만 함께 복직되지 못한 동지들에 대한 안타까움도 커 보였다.
“94년 투쟁은 철도청에 민주노조를 건설하기 위한 투쟁이었고, 당시 동지들이 흘린 피가 오늘날의 철도노조를 만들었다고 봅니다. 다만 당시 함께 했던 동지들이 모두 복직되지 않아 무척 아쉽습니다. 이들도 곧 복직될 것으로 믿습니다.”

이철의씨는 10년 만에 서게 될 기관차 운전석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복직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어요. 지난 50년간의 어용노조 역사와 엄혹한 조건에서 시작된 철도노조 운동을 생각하면…. 지금은 열차운전을 한다는 것이 너무 좋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평생 동지인 서선원 동지와 복직된 것이 정말 좋습니다.”
지난 1994년 변형근로제 철폐 등을 요구하며 전기협과 전지협 소속의 서울지하철노조, 부산교통공단노조는 6월27일 공동파업을 결의했다.
이에 대해 김영삼 정권은 파업에 돌입하기도 전인 6월23일 새벽, 전기협 20개 지부사무실에 경찰병력을 투입했다. 파업은 24일로 앞당겨졌고 두 조직은 30일까지 일주일동안 우리나라 최초의 궤도노동자 공동파업을 벌였다.
이철의씨는 당시 23일 새벽 연행돼 200여일 간의 옥살이 뒤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서선원씨는 수배생활 끝에 같은 해 9월 연행돼 2년여의 옥살이를 했다.

두 사람은 당시 파업에 대해 철도노조 민주화의 단초마련, 최초의 궤도노동자 공동파업이라는 점에 의미를 두었다.
하지만 김영삼 정부에 대한 순진한 기대감으로 승리를 가져오지 못한 투쟁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철의씨는 “전기협지부 사무실이 침탈당한 뒤 기독교회관으로 농성장소를 옮긴 것은 오판이었다”며 “군부독재 경찰병력도 들어오지 못한 기독교회관에 김영삼 정부가 병력을 투입할 줄은 몰랐다”고 회고했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해 6월 철도노조를 비롯한 지하철노조들의 투쟁을 가슴 아프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서선원씨는 “앞으로는 항만, 항공 등 운수노동자들이 총 연대해서 투쟁을 벌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궤도노조의 투쟁은 개별단위 투쟁으로 갈 때는 반드시 깨지게 돼 있습니다. 단순히 공동투쟁만으로는 안됩니다. 한날한시에 파업에 돌입해야죠.”
철도청 정년퇴직인 만 57세까지 12년이 남은 두 사람은 당분간 기관사로서, 평 조합원으로서 소임을 다할 계획이라면서도 민주노조운동에 헌신하겠다는 의지는 버리지 않았다.

“80시간 이상의 수송교육을 착실하게 이수할 것입니다. 10년간 변한 것이 많으니까요. 우리 경험이 도움이 되면 좋겠지만 지금은 중심이 될 생각이 없습니다. 철도노조에도 젊고 힘 있는 동지들이 많이 있는데요. 하지만 1, 2년 후에 대중들이 요구한다면 피해서는 안 되겠지요.”

김학태 기자(tae@labo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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