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는 ‘사기’라고들 한다. 특히 통계 전문가들에게서 자신의 밥줄을 끊을 수도 있는 이런 얘기를 심심찮게 듣는다. 그만큼 오류가 많을 수 있고 조작이 가능한 만큼 냉철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는 것일 게다. 산업은행을 통한 사실상의 공적자금 투입으로 결정이 난 ‘LG카드 사태’가 상징하는 카드사 위기에서도 통계 조작의 어두운 그림자는 어김없이 드리우고 있다. 바로 연체율이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으로 8개 전업카드사의 1개월 이상 연체율은 13.5%에 이른다. 1년 전인 2002년 말(6.6%)보다 2배 이상 높아졌다. 14개 은행권 카드의 1개월 이상 연체율은 2003년 12월 말 7.8%로, 1년 전의 8.4%보다 낮았다. 문제는 정부의 배려로 이 연체율이 상당히 과소평가 돼 있다는 것이다.

현재 카드사 연체율은 카드사의 ‘관리자산’을 기준으로 총여신 대비 1개월 이상 연체액의 비중이다. 이 관리자산은 카드사가 실제로 굴리는 돈이다. 그런데 관리자산 말고 ‘보유자산’이라는 게 있다. 카드사가 운용하는 돈 말고 실제로 보유하는 자산인데, 여기에는 카드매출채권 등을 담보로 발행한 자산담보부증권(ABS)이 포함된다.

정부는 2003년 3월17일 정부의 1차 카드사 대책을 내놓으면서 이전까지 보유자산 기준으로 계산되던 신용카드 연체율을 관리자산 기준으로 바꾸었다.

왜? 연체율을 낮춰주기 위해서였다.
그때 계산으로는 이렇게 기준을 바꾸면 연체율이 2%포인트 정도 하락한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었다. 무슨 소리인고 하니, ABS 발행용 담보로 설정된 카드매출채권 등에서 발생한 연체액은 연체율 통계에서 빼준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황당한 일이 발생할 수 있을까? 당시 정부는 우리나라의 ABS를 마치 미국식 ABS처럼 취급하는 ‘무리수’를 뒀다. ABS를 발행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미국에서 널리 통용되고 있는 것처럼, ABS를 발행하기 위해 설립하는 ‘페이퍼컴퍼니’(흔히 ‘특수목적회사’라고 부른다)에 담보자산을 아예 양도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페이퍼컴퍼니에 위탁하는 것인데, 우리나라의 ABS는 몽땅 이 방식으로 발행돼 왔다.

두 방식의 차이는 매우 크다. 특히 ABS를 발행한 회사가 파산할 때 극명한 차이가 드러난다. 양도의 경우 ABS 상환의무는 페이퍼컴퍼니에 있지만, 위탁은 ABS를 발행한 회사에 있다.

지난 2001년 12월 파산한 미국 제7위 기업 엔론을 예로 들어보자. 엔론이 주주와 종업원에게 낳은 손실 규모는 족히 600억 달러는 됐다. 하지만 미국 중앙은행 격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엔론에 대한 구제금융을 단행하지 않았다.

시티그룹, 제이피모건체이스, 캐나다상업제국은행(CIBC), 도이체방크 등 ‘큰손’들은 엔론과의 공모를 통해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고, 그래서 연준은 금융시스템에 별다른 충격을 주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비결은 엔론과 이들 금융기관이 짜고 ABS 발행을 악용한 데 있다. 이들은 외부투자가의 자본이 3%만 넘으면 자회사가 아니라는 회계기준을 악용해 금융감독 사각지대인 역외 조세피난처에 900여개를 포함해 자회사 3,500개를 차렸다.

이들 자회사가 바로 ‘랩터 Ⅰ, Ⅱ, Ⅲ’,‘제다이 Ⅰ, Ⅱ’ 등 ABS 발행을 위한 일종의 특수목적회사(SPC)였다. 엔론의 채권과 파생금융상품들은 몽땅 이런 SPC에 양도됐고(이는 엔론에 매출로 잡힌다), SPC는 양도된 자산을 담보로 ABS를 발행했다. 엔론의 종업원과 수많은 공적,사적 연기금들이 여기에 투자했고, 결국 엔론 파산의 모든 손실은 이들의 몫이었다. 이렇게 교묘하게 미국의 저축자들에게 손실이 떠넘겨진 것이다.

ABS 발행의 근거가 되는 담보자산을 위탁했을 때는 다르다. ABS를 발행한 기업이 이자와 원금을 갚아야 할 의무를 지닌다.

우리나라에서 카드사가 발행한 ABS에 대한 상환의무는 카드사에게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 카드사 연체율을 계산할 때 그 기준을 보유자산이 아니라 관리자산으로 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이는 연체율을 낮추기 위한 통계적 조작일 뿐이며, 카드사 사태의 심각성을 축소할 뿐이다. ABS를 포함하는 보유자산 기준이 연체율 기준으로 부적절하다면, 카드사 뿐 아니라 모든 금융기관에 이를 확대 적용해야 하는데도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LG카드 발행 ABS가 8조원이다. 삼성카드도 이에 못지않을 것이다. ABS를 통해 조달된 이런 자금 중 얼마만큼이 부실해졌는지를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정부의 배려 때문이다. 그러면서 정부는 최근 금융기관들이 보유하고 있는 LG카드 ABS를 1년간 만기연장 하도록 조처했다. 그나마 미국보다는 투명하다는 데서 위안을 찾아야 할까.

조준상 전국언론노조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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