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이 이제 사흘 남았다. 소한(小寒)의 추위가 절정에 달한다는 대한(?寒)의 고비를 넘어 우리는 설을 맞는다. 설이 지나면 절기상으로도 24절기의 첫째로 새로운 해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立春)이 기다리고 있다.

지난 주 노동계에는 굵직한 행사들이 있었다. 초미의 관심사였던 민주노총 4기 임원선거(16일)는 ‘변화’에 초점을 둔 2번 이수호-이석행 후보조가 자신들과 뜻을 같이 하는 부위원장 4명과 함께 당선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한국노총도 이례적으로 단일 안건을 놓고 임시대의원대회(15일)를 열어 ‘사민당을 통한 정치세력화’를 중심으로 한 정치방침을 만장일치로 최종 확정했다.
이제 노동계 절기상으로도 한국노총, 민주노총 모두 대한의 추위(정치방침 논란, 선거과정 공방)를 넘어 입춘을 향해 서서히 달려가고 있는 셈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성경 구절이 있다. “낡은 가죽 부대에 새 포도주를 담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서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둘 다 보존된다.”(마태복음 9장16~17절)
실질적인 2004년 준비에 본격 시동을 걸은 노동계에 담겨질 ‘새 술’은 어떤 것이고 그 술을 담을 ‘새 부대’는 어떠한 변화를 겪게 될지 관심이다.

지난 주 노동계 ‘말말말’을 꼽으라면 1순위가 “사민당 해산당하면 사퇴하겠다”는 이남순 한국노총 위원장의 발언이 아닐까. 이 위원장은 15일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올 총선에서 2%를 득표하지 못하거나 지역구 한 석도 내지 못해 사민당이 해산당하면 위원장직을 사퇴할 것”이라고 밝혔다. “4.15 총선이 제1노총 지위를 좌우할 것”이라는 그의 공공연한 발언과 맞물려 해석할 때 사민당의 존립여부가 위원장직을 걸만큼 중차대한 과제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민당 당원이 이제 1만명을 조금 넘은 수준인데다 당의 대중적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고 기존 정당에서 사민당으로 당적을 옮길 명망 있는 한국노총 출신 정치인들이 얼마나 많을지 아직은 판단하기 어려워 총선에서 사민당이 어떤 결실을 맺을지 주목된다.

민주노총은 이제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4기 임원선거 결과, 다수 대의원들은 ‘계승’보다 ‘변화’를 원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동안 이수호-이석행 후보조는 현장 조합원들의 상태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총파업 전술과 지도력 부재를 비판해 왔다.
당선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수호 위원장은 “모든 일에 대안을 마련하고 적극 대화하면서 투쟁다운 투쟁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초미의 관심사인 대정부 교섭틀과 투쟁방안과 관련, 그는 “새로운 노사정위 틀을 만드는 대화를 정부와 시작할 것이며, 새로운 틀이 마련되면 다시 참가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고, “내부 혁신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내부 제도와 시스템을 개혁하는데 주력하겠다”며 ‘준비된’ 총파업의 전제들을 얘기했다.

이수호-이석행 체제에 대해 정부는 기본적으로는 ‘긴장과 갈등’을 유지하면서도 고용안정, 일자리 창출, 사회안전망 확충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대화의 장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전투적 조합주의를 벗어나 실리적 조합주의 성향의 운동방향을 추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당선이 확정된 직후 권기홍 노동부장관은 이수호 위원장 당선자에게 ‘상생의 노사관계를 만들어내자’는 내용의 축전을 보내고 전화통화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거는 끝났지만 민주노총 내부는 한동안 내홍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철저하게 정파간 조직선거로 치러져 사무총국 개편은 물론 올 사업계획 수립과정이나 투쟁방안 결정에 있어서도 논란이 예상된다.

또한 양 후보 진영 모두 비정규 사업의 중요성을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비정규 사업 담당자로 내정한 부위원장 후보들이 모두 떨어져 이후 비정규 사업 담당 임원 선정은 물론 선거제도에 대한 개편은 불가피해 보인다.

이정희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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