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상 전국언론노조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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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언론들은 ‘농촌당’이란 신조어를 만들었다. 소속된 당에 관계없이 지역구를 농촌에 두고 있는 의원들이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몸으로 저지하자, 이를 빗대어 조롱하기 위한 것이다.
역시 압권은 <중앙일보>이다. 지난 1월8일 ‘농촌의원’들의 실력 저지로 비준이 무산되자, “국회가 국익을 외면했다”(1월9일치 1면 머리기사), “표에 눈먼 ‘농촌당’ 의원들, 세계시장서 한국 왕따 자초”(1월9일치 3면 머리기사)고 힐난했다.]

대부분의 신문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왜 유독 <중앙일보>냐고 묻는다면 그 이유는 이렇다. 상황이 닥칠 때마다 그때그때의 논리로 때우는 ‘싸구려 신문 장사꾼’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중앙이 FTA 비준에 반대하는 ‘농촌당’ 의원들을 비난하는 논리를 정리하면, ‘지역구의 이해에 휩싸여 표에 눈이 멀어 전체 국익을 외면한다’는 것이다. 국회의원은 지역구에 발목을 잡혀서는 안 된다는 얘기이리라.

이런 인식 속에서 중앙이 정치개혁 과제 가운데 선거구제에 대해 취해야 할 태도는 과연 어떤 것이어야 할까. ‘지역구 축소,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확대’다. 국회의원은 ‘국회’의원이지 도의원이나 시의원과 같은 지역의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앙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확대에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낸다. 중앙은 12월12일치 사설 ‘의원 수 늘리는 게 정치개혁인가’에서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가 내놓은 ‘소선거구제 축소-비례대표제 확대’ 방안에 대해 황당한 비난을 퍼붓는다. 범개협은 국회의원 수를 현행 273인(지역구 227인, 전국구 46인)에서 299인(지역구 199인, 비례대표 100)으로 늘리자고 제안했다.

“(비례대표제는) 공천 헌금이나 당 지도부에 대한 충성도에 따라 나눠먹기로 이뤄져온 게 현실이다. 공정성을 기할 만한 아무런 장치도 없이 비례대표만 늘리자는 것은 새로 등장한 정치지도자들의 세력화 수단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 직접 선출권을 제한한다는 논란을 감수하면서 갑자기 대폭 늘려 어떻게 하려는 건가…”

민주노동당이나 열린우리당(?)에 이로울 듯한 비례대표제 확대에는 기를 쓰고 반대하면서, ‘농촌당’ 의원들의 FTA 반대에 대해서는 쌍심지를 켜는 태도는 그때그때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의 ‘철학의 빈곤’을 나타낼 뿐이다.
물론 나는 김효석(민주)이나 임원배(한나라) 등과 같은 이른바 ‘농촌당’ 의원들이 비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국익’이라고 불려지고 있는 것에 대해 반대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너무나 무식해서 농민의 정당한 요구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동남아국가연합과 같은 주요 경제권과 FTA를 먼저 맺지 않고 농산물 수출강국인 칠레와 먼저 체결하는 우를 저질렀다’ ‘칠레는 농산물 수출 3대 강국이다’ 그들은 이렇게 엉터리 논거를 내놓았다. 그리고 국익을 지킨다는 언론의 ‘밥’이 됐다. “농촌당의 억지”(중앙 1월10일치 취재일기), “‘칠레는 농산물 수출 3대 강국’ 엉터리 자료 제시, 눈,귀 막은 농촌의원들”(서울 1월10일치 5면) 등등.

다시 근본인 사실관계로 돌아가자. 정부의 주장, 그리고 이를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언론의 주장처럼, FTA 비준 지연으로 인해 자동차, 휴대폰 등의 수출이 떨어지고 있는 것인가.
칠레와 자동차 무관세 협정을 맺은 아르헨티나,브라질과 달리, 칠레와 FTA를 맺은 유럽연합과 달리, 칠레가 우리에게 적용하고 있는 관세 6% 때문에 국산 자동차의 시장점유율이 하락하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무엇보다 환율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페소화의 환율은 2001년 12월말 달러당 1페소에서 2003년 12월말 달러당 2.95페소, 같은 기간 동안 브라질의 환율은 달러당 1.97헤알에서 2.94헤알로 각각 195%, 49.2% 상승했다.

그만큼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수출품의 가격이 싸졌다는 얘기다. 반면 유로화 환율은 2001년 달러당 1.11유로에서 0.83유로로 34.6% 하락했다. 일본 엔화 환율은 같은 기간 달러당 131.5엔에서 109.6엔으로 16.7% 떨어졌다. 그만큼 수출품 가격이 높아진 것이다. 반면 원화 환율은 달러당 1313.5원에서 1199.4원으로 8.7% 하락하며 수출품 가격이 비싸졌다.

2003년 11월까지 국산 자동차의 칠레 시장점유율이 19.3%로 2001년 23.8%보다 하락한 반면, 같은 기간 동안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각각 14.4%, 5.6%에서 18.1%, 15.8%로 껑충 상승한 것이나, 2003년 2월 칠레와의 FTA가 발효한 유럽연합 회원국인 프랑스의 점유율이 10.5%에서 9.5%로 떨어진 핵심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칠레와 FTA 체결이 안 돼 있는 같은 조건에서 수출품 가격이 우리보다 더 급속히 높아진 일본 자동차의 시장점유율이 18%에서 23.6%로 상승한 원인은 무엇인가. 제 눈의 들보에 해당하는 이런 물음은 던지지 않고 만만한 ‘농촌당’ 의원들 때려잡는 데서 우리 언론은 쾌감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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