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수 공인노무사(민주노무법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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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8일자에서 소개했던 P시의 정리해고와 같은 사례가 P시만의 특수한 경우는 아니었다. S시는 행정자치부의 지침을 이유로 240여명의 근로자들을 일시에 해고하면서 정리해고의 어떠한 절차도 지키지 않았다. S시에서 해고한 근로자들의 신분은 소위 ‘일시 사역인부’라는 임시적인 업무에 필요한 인력이었다.
그러나 S시는 이들을 70~280일 단위로 채용해서 마치 임시직인 것처럼 근로계약서와 예산서를 작성했지만, 사실상 이들을 수년간 상시고용 해왔다. 게다가 S시가 정리해고의 근거로 주장한 행정자치부의 지침은 반드시 준수해야 할 법적 강제성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S시는 행정자치부의 지침을 받은 이후로 4년 동안 1년 이상 사용하면 안 된다는 지침을 위반하여 일시 사역인부를 신규채용하고 상시고용 했어도 어떠한 제재도 받지 않았을 뿐더러, 지금에 와서는 그 책임을 근로자들에게 모두 전가시켜 240여명의 근로자들을 일시에 해고하였다.

그러면서 S시가 한 해고회피노력은 공공근로알선, 취업알선정도였는데 특히 공공근로가 국가적인 실업대책사업임을 감안한다면 지방자치단체에서 해고한 해고자를 상대로 실업대책사업을 하는 지독한 자가당착인 것이다.

정부지침을 빌미로 한 무분별하고 무원칙한 정리해고는 중앙정부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중앙정부 산하 K기관은 1999년 기능직공무원합리화지침에 따라 소속 기능직 교환원 214명을 감원하였다.
K기관에서는 일시에 많은 인원을 감원하기 위해 여러 가지 무리수를 두었다. 노골적으로 사직서를 요구하고 거부하는 교환원들에게 징계위원회를 열어 징계하겠다는 협박을 하며 사직서를 받는 한편, 조기퇴직을 끝까지 거부했던 26명의 교환원들은 모두 직권면직 시켰다. 교환원들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도 징계위원회를 통해 직권면직 되었던 것이다.
더구나 K기관은 대부분의 교환원을 감원하고 ARS로 변경한 후 한 달 만에 퇴직한 교환원들을 다시 파견업체를 통한 계약직으로 채용하였다.
이러한 사실만으로도 P기관은 교환원들을 214명이나 감원할 만한 객관적인 필요성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국가공무원법 제70조 제1항의 3호는 직제와 정원의 개폐 또는 예산의 감소 등에 의하여 폐직 또는 과원이 되었을 때를 직권면직의 사유로 제시하면서, 제3항에서는 임용권자 또는 임용제청권자는 제1항 제3호의 규정에 의하여 소속 공무원을 면직시킬 때에는 임용형태·업무실적·

직무수행능력·징계처분사실 등을 고려하여 면직기준을 정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정부 구조조정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직권면직에 있어서 공정성과 합리성을 잃지 않고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엄격하게 요건을 정하고 있다.
공무원도 근로자임이 명백하고 게다가 헌법으로 신분을 보장하고 있는 마당에 정리해고에 있어서도 민간기업과 같이 엄격하고 객관적인 기준이 적용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K기관의 직권면직은 근로기준법에서 정하고 있는 정리해고기준에도 훨씬 미치지 못한다. ARS시스템을 6개월간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교환원 감축여부를 판단하라는, 일정규모 이상의 사무소에는 교환원을 유지하라는 정부지침에 따라 해고를 최소화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음에도, 전혀 하지 않고 우격다짐으로 사직서를 받아내고 징계위원회를 통해 직권면직을 하여 목표한 수치의 교환원을 감원하고야 만 것이다.

K기관의 직권면직자들이 제기한 직권면직취소소송은 법원에서 기각되었다. 그런데 K기관은 교환원 정원이 늘었다면서 해고한지 2년 만에 직권면직자들을 국가공무원법 제28조 제2항 1호에 의해 특별채용하였다.
그러나 갖은 압력을 견디다 못해 사직서를 제출한 조직퇴직자들은 일용잡급직 또는 계약직이라 불리며, 매년 재계약을 걱정하며 기능직공무원일 때와 같이 동일한 업무를 하고 있다.
이들도 소송을 통해 억울함을 구제받으려고 했지만, 온갖 위협을 버티지 못하고 쓴 ‘자발적인’ 사직서 때문에 구제받을 수 없었다.

지방자치단체와 중앙정부기관에서 이뤄지는 집단해고사건을 접하면서 공무원들은 한결같이 정부의 지침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였고, 법원은 한결같이 정부정책이고 지침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경영상의 이유가 된다고 판단하였다.
일반 사기업이었다면 당연하게 고려하고 집행할 법적기준이 도리어 국가기관에서는 실종되어 버리고, 마치 정부지침 앞에서는 무뇌아 집단이라도 되어 버린 듯이, 판단주체도 없고 책임주체도 없다.
그래서 오늘도 해고자들은 억울한 가슴만을 치고, 담당 공무원들은 하늘만을 쳐다보며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상담문의 :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부설 민주노무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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