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13만여명. 선거인수 7만5,000여명. 현대차노조 조합원 2만5,000여명. 현대차 관련 노동자와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를 더하면 이를 훨씬 웃돈다.
지난 16대 총선 때 한나라당 윤두환 의원이 겨우 1만9,430명의 지지표로 당선된 걸 감안하면 현대차 노동자만 누군가에게 표를 몰아준다면 어느 누구든 당선시킬 수 있는 곳이 울산 북구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노동계와 진보정당들이 뼈아픈 교훈을 남긴 지난 2000년 총선에 이어 내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의 의회진출 가능성을 기대하며 다시 한번 울산 북구와 현대차노조 조합원들을 주목하고 있는 이유다.
울산 북구에 민주노동당 후보로 나서는 이는 조승수 전 구청장(41)이다.
정갑득 현대차노조 6, 8대 위원장, 김광식 현대차노조 7대 위원장도 민주노동당 총선후보 선출을 위한 예비경선에 나섰지만 현대차노조 소속 당원들은 자신들의 전 위원장보다 조승수 전 구청장을 택했다.
김광식 전 위원장의 말처럼 “현장과 지역의 구분이 이제 깨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선거결과”였다. 조승수는 어떤 사람이길래 ‘현장’과 ‘지역’의 구분을 무너뜨릴 수 있었는가.



* 현장과 지역의 구분이 깨진 선거결과

이번 조승수 후보의 당선은 당내 경선에서 나선지 세번째만이다. 지난 2002년 북구청장 후보경선에서 이상범 현대차노조 전 위원장에게 패배했고, 지난해에는 민주노동당 울산시지부장 경선에서 김창현 현 지부장에게 패배했다.
경선 전 여론조사에서 이상범 후보보다 두 배 이상의 강한 본선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 확인됐음에도 그가 패배한 이유는 ‘현대차노동자’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조 후보는 민중당 울산중구지구당 사무국장, 진보정치연합 울산시지부장, 국민승리21 울산지역본부 집행위원장 등을 맡는 등 진보정당 운동에서 결코 벗어난 적이 없으며, 진보정당 후보로서 시의원과 구청장에 당선되는 현실을 최초로 보여준 ‘상징적 인물’일 뿐만 아니라, 구청장으로서도 ‘전국 기초단체 베스트 13’에 뽑히는 등 행정능력도 인정받았다.

그는 지난 2002년 구청장 후보 내부경선에 떨어진 뒤에는 평당원으로서 학교급식조례제정운동에 앞장서는 등 적극적인 지역운동과 지구당 활동을 펼치는 데만 집중해왔다.
평당원에서 국회의원 후보로 오랜만에 전국적으로 주목받게 된 상황에서 지난해 12월30일 저녁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함께 하며 틈틈이 질문을 던졌다.
당선이 결정된 직후 여기저기서 끊임없이 걸려오는 축하전화. 그는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라고 기쁨을 표현했다.
하지만 ‘동지’들끼리 경쟁해야만 하는 당내경선은 어떤 본선보다도 고통이 컸다. 초반에는 사퇴할 고민까지 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번에도 떨어질 경우 ‘상처’가 너무 컸을 터였다.

김광식 후보가 당시 현대차노조 집행부 출신 현장조직인 민노투의 지원을 받고 있고 2차 경선에서 격돌했던 정갑득 후보가 실노회의 지원을 받고 있는 것에 비하면 조 후보는 ‘조직’ 자체가 전무한 상황이었다. 조 후보의 부인이며 지구당 부위원장이기도 한 박이현숙씨는 “계란으로 바위 치는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당권자 1,600여명 중 1,200여명이 현대차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선거운동은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이번 경선에서도 여전히 상대편으로부터 “현장출신 후보가 아니면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이룰 수 없다”는 식의 공격도 받았다. 정갑득 후보는 경선결과에 승복하면서도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4년 뒤로 미뤄졌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맘을 비우고 임했던 1차 투표에서 예상 외로 1위로 결선에 진출하자, 당선에 대한 욕심이 생기더라. 1차 투표 때부터 현대차를 방문하는 대신 하루 8시간 이상씩 당원들의 집을 방문했다. 집이 비어있을 때는 편지를 문에다 붙여놓고 왔다. 이렇게 방문한 당원 집이 600여곳이다. 이런 선거운동 방식이 ‘바람’을 일으키는데 한 몫 했다.”

국회의원 후보로서 북구 지역을 더욱 속속들이 알게 하는데 ‘교육’적인 선거운동 방식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가 결선투표 때 돌린 편지에는 “직접 조직한 당원이 가장 적은 제가 예상을 깨고 당당히 1위를 한 것은 조승수가 이뻐서라기보다는 오직 우리 국회의원 한 명을 만들어 내고 싶은 동지들의 간절한 염원의 표현입니다”고 써있다.

* 현대차노조의 적극 협조 과제

당선 당일 조 후보는 “현장 동지들의 아픈 뜻을 잘 압니다. (경선과정에서 나온) 현장출신이냐, 본선경쟁력이냐, 라는 구분을 떠나 ‘민주노동당 후보’로서 반드시 승리하겠습니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앞으로의 과제는 경선에서 벌어졌던 갈등을 모두 해소하고 현대차노조 활동가들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본선에 대비해야 한다는 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 후보는 ‘대기업 노동운동’에 대한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2002년 지방선거 경선에서 떨어진 뒤 적극적으로 ‘대기업 노동운동’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겠다고 말한 바도 있었다.
“대기업노조가 권력화 되고 있고, 현장조직들도 뚜렷한 차이 없이 권력을 추구하는 성격이 강하다. 현장조직들이 힘을 바탕으로 당원을 배가하고 또 그 힘으로 후보로 당선되는 과정을 인정할 수 없다면 내가 나서서 왜곡된 부분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번 선거과정에서도 많은 동지들이 이런 활동방식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고 문제가 드러났다고 본다. 이번 선거결과도 잘못된 대기업 노조운동의 조직논리, 권력지향적인 노조운동의 패배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지난해 지방선거 내부경선에서 떨어진 뒤 대기업 노조운동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긴 했지만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 특별한 활동을 펼치진 못했다.”
당내경선이 끝난 바로 다음날, 북구지구당에 “탈당하겠다”는 전화가 이어진 점은 ‘단 한번의 투표행위’를 위해 입당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울산북구에서 현대차노조의 협조는 민주노동당의 국회진출에 있어 필수적이다. 지난해 말 위원장 선거에서 당선된 이상욱 현 위원장은 현장조직 ‘민투위’ 출신으로 민주노동당 지지에 유보적인 ‘노동자의 힘’ 소속이다. 현대차노조 현 집행부와 유기적 관계를 맺는 것도 과제인 것이다.

“현대차노조가 성향을 불문하고 그동안 민주노동당과 함께 해왔기 때문에 이번 총선에서도 충분히 함께 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이는 현대차노조와 총선승리의 과정을 함께 만들어가고 현 집행부와 승리의 기쁨을 나누고 싶다는 다른 표현일 수도 있었다.
한편으론 그가 현 집행부 간부들을 민주노동당 당원으로 얼마나 끌어들일 수 있을지 기대되는 대목이기도 했다.

전국의 당원들이 이번 경선 과정에서 민주노동당 홈페이지와 조승수 개인 홈페이지에 올린지지 글을 보면 대부분 그의 일관된 진보정당 활동과 ‘당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그가 공개적으로 열린우리당과 선거연합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자칫 ‘해당행위’로 비판받을 수도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무엇보다 당내논의를 거쳐 방침을 정해야 대응할 수 있는 문제다. 다만 이번 총선에서 반드시 필승할 수 있는 전술을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이번 총선을 통해 국회 내에서의 진보정치를 실현시키는 게 목표라면, 한국 정치 전체로 본다면 지역주의 정치를 깨는 게 주요한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울산이 영남지역이기 때문에 한나라당의 싹쓸이를 막는 게 중요하다. 한국정치의 고질적 병폐, 지역주의를 넘어서기 위해 보수정치의 아성 한나라당과 또 다른 보수정당인 재벌정당 국민통합21을 제외한 모든 세력이 힘을 합쳐 한나라당을 꺾어야 한다. 민주노동당 입장에서 본다면 한나라당과 1:1 구도가 유리하다.
울산북구만 놓고 본다면 선거연합 정세에서 민주노동당이 확고한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라고 본다. 공세적으로 제기할 수도 있는 문제다. 민주노동당으로 후보단일화하자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현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조승수 구청장의 선거연합 이야기는 울산북구에만 한정된 이야기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 조승수 개인은 어떤 사람인가.

총선에 나설 준비를 했다면 왜 조직하지 않았을까. 혹시 조직하는 능력이 부족한건 아니었나. 승리를 자축하는 뒤풀이에서도 그는 크게 나서지 않는 편이었다.
한 당원은 이렇게 말한다. “친화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 정치인이라면 입에 발린 소리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전혀 그러지 못한다. 다행히 술은 잘 마신다. 실무형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차노조 밖에서 조직한다는 건 한계가 너무 많다.”

지난 2002년 내부경선에 떨어진 뒤 조직화에 나서기보다 모 전문대학에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사회복지학 강의를 나간 것을 두고도 조승수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나온 바 있다.
부인의 또 다른 평가. “경선에 나서기 직전까지 고민이 많았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자기중심으로 사람들이 집중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가 청장으로 있던 북구청의 공무원 중에서 민주노동당 당원확대 활동을 벌이는 공무원이 있을 만큼 ‘조직하지 않은 조승수 지지자’들이 곳곳에 있었다. 뒤풀이를 한 식당의 여성노동자도 조승수씨가 민주노동당 후보로 결정됐다는 소식에 조씨의 손을 부여잡고 환호했다.
실제 당선 당일 뒤풀이에서 만난 현대차노조 한 조합원은 “승수형을 안지 10년이 넘었지만 그동안 전혀 변하지 않았다”며 “그래서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울산북구지구당의 활동가들은 이번 총선에서 당보다 사람이 부각되는 것을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조승수는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후보지, 조승수 개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뒤풀이 내내 ‘민주노동당 총선승리’ 구호만 되풀이 됐을 뿐, 그 흔한 ‘조승수 파이팅’ 한번 외쳐지지 않았다.
최근 정치에서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진보정당이 하는 정치에서 어찌 ‘사람’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그런 면에서 조 후보는 최소한 울산 북구에서 정치적 입장을 떠나 믿음을 주고 있는 사람인 듯 했다. 새벽녘이 다 돼서야 뒤풀이가 끝나자 조 후보는 “집에 아이들이 없어 18평짜리 집이 36평만 하다”며 그때까지 남은 대여섯명의 사람들을 집에 데려가고 싶어했다. 조 후보의 집에 이미 가본 사람들은 “가봐야 앉을 자리도 없다”며 웃으며 사양했지만, 기자는 ‘민주노동당 첫 국회의원’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사람의 집에 가보지 못해 아쉽기도 했다.

2003년의 마지막 해가 떠오르기 직전 택시를 타고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2004년 진보정당 최초의 국회진출의 역사가 시작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2004년 ‘갑신년’은 역사적으로도 민중의 피와 땀이 ‘보상’받는 해라고 한다.

송은정 기자(ssong@labo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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