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상 전국언론노조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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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대항권은 강화되진 않고 권리는 더욱 제약됐다. … 이번에 발표된 로드맵의 가장 큰 문제점은 파업을 정당시하고 그 기회를 한껏 넓혀 놓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파업은 나쁜 것이며 억제해야 할 일이다. 노조에는 권리의 행사일지 몰라도 사회 전체적으로는 긴요하게 쓰여야할 생산자원이 놀게 되는 사회적 낭비이다. … 그리고 공해처럼 제3자에게 피해를 주는 음의 외부성이 있다. … 외신에 의해 ‘죽도록 파업하는 나라’로 평가될 정도 ….”

지난해 12월23일 대한상공회의소가 연 토론회에서 정부가 발표한 ‘노사관계제도 선진화 로드맵’이 ‘동북아 파업중심국가’를 낳을 것이란 독설을 퍼부은 남성일 서강대 교수(경제학)가 한국경제 12월11일치에 갈겨댄 칼럼 ‘로드맵은 노사갈등의 불쏘시개’의 일부이다. ‘파업은 나쁜 것이니 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을 읽으며 먼저 말문이 막히고 온갖 상념이 꼬리를 문다. 억제해야 할 나쁜 파업을 노동자의 기본권으로 버젓이 헌법에 규정한 사람은 도대체 제 정신이었을까 하는 의문부터, 경제학 교수는 ‘파업’과 ‘파업의 자유’도 구분하지 못하는구나 하는 절망감에 이르기까지.

누군가 이렇게 주장했다고 하자. ‘이혼은 나쁜 것이다. 고로 법,제도상으로 이혼의 자유를 매우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 이혼을 제기한 쪽을 상대로 이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해야 한다.’ 이혼을 금기시하는 가톨릭을 국교로 채택하고 있는 국가들도 이런 식으로 이혼 관련법을 만들지는 않는다.

파업과 파업의 자유도 마찬가지다. 비록 최후의 수단인 파업이 가급적 피해야 할 대상이라고 해서, 그 자유를 법으로 억제해서는 곤란하다. 이런 사고는 남 교수 주장처럼 로드맵을 만든 ‘일부 노동법학자들’만의 것은 아니며, 그럴 수도 없다.

모두들 한국자본주의에 건강하고 생산적인 노사관계가 자리 잡기를 바라고 있다. 그래서 경제학자들도 노동계에 대해 이런저런 주문을 내놓고 있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문화일보 12월29일치 칼럼 ‘수출 느는데 왜 고용 악화되나’에서 이렇게 당부했다. “과도한 노사분규를 자제해야 한다. … 종전과 같이 무조건 임금 인상만을 고집하기보다는 실질임금을 안정시키고 일자리를 마련하는 데에 주력해야 한다.

실제로 노동자의 후생이나 실질임금은 정부의 경제정책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내수 위주의 경기 부양 정책이나 생활비를 높이는 교육제도, 그리고 부동산 가격을 높이는 부동산 정책은 모두 빈부 격차를 심하게 하고 노동자의 실질임금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따라서 앞으로의 노동운동은 이를 개선하는 데에 주력해야 한다.” 노동계가 실질임금을 안정시키려면 사회개혁 투쟁을 통한 ‘사회임금’ 확보에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이는 90년대 중반부터 노동계의 주요한 고민이기도 했고 지금도 그렇다.

‘노동쟁의’ 개념 확대는 ‘상식’

하지만 과도한 ‘노사분규’의 원인을 임금 인상에 찾는 김 교수의 분석은 방향을 잘못 짚은 것이다. 임금인상을 둘러싼 쟁의행위는 감소하는 반면, 고용안정 등 단체협약을 둘러싼 쟁의행위는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1990년과 2002년 발생한 쟁의행위는 각 322건으로 같았다. 90년의 경우 임금 인상과 고용안정 관련 단체협약을 둘러싸고 발행한 쟁의행위가 각각 167건, 49건인 반면, 2002년에는 각각 44건, 249건으로 상반된 결과를 보였다.
구조조정을 둘러싼 갈등을 포함하면 고용안정 관련 쟁의행위는 더 많아진다.

달리 보면, 이는 그만큼 ‘임금 대신 고용’이라고 하는 이른바 ‘양보교섭’이 정규직 노동자들로 이뤄진 사업장의 노동조합에 상당히 정착됐다는 방증이다. 동시에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이 서로 맞지 않아 생긴 분쟁상태’라는 전통적인 노동쟁의의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 쟁의행위가 많아졌음을, 그만큼 사용자가 불법쟁의로 간주해 손배,가압류를 남발할 가능성이 높아졌음을 뜻한다.

사용자에 의한 부당노동행위나 부당해고 구제신청이 급증하고 있는 데서도 노사관계의 현주소를 알 수 있다.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은 97년 495건에서 2000년 1,040건으로, 부당해고 구제신청은 1,928건에서 3,918건으로 두 배 이상씩 늘어났다.
2000년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의 80%인 831건이 ‘노조 가입이나 결성, 노조활동을 이유로 한 해고 등 불이익’이 원인이었다.

이런 배경에서 정부 로드맵이 단체교섭,쟁의행위 대상을 근로조건뿐 아니라 ‘조합활동, 단체교섭의 방법,절차 등 집단적 노사관계에 관한 사항’까지 확대한 것은 그 기본방향에서 합리적이다.
제3자의 조정 대상이 되는 노동쟁의 개념을 ‘노동관계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인해 발생한 분쟁상태’로 확대해 단체교섭의 해석,이행을 둘러싼 권리분쟁까지 포함한 것도 그렇다.

적어도 정부 로드맵에는 “파업 만능주의 조장”이라는 감정적 어휘에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파업과 파업의 자유를 구분하는 상식은 담겨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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