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덕상 후보(48)는 비정규직 조직화와 공무원노조 가입 등을 통해 임기 내 30만명을 조직해 100만명의 조직으로 확대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유 후보는 ‘투쟁노선의 정통성’을 견지했던 후보임을 내세우며 현장을 살리고 ‘힘 있는 민주노총’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 노무현 정부를 평가한다면.
“출범 초기 노 대통령이 ‘힘의 균형론’, ‘5대 부분 차별해소’,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등을 말하는 걸 보면서 이전 정부보다 좀 개혁적이지 않겠냐는 관측도 있었다.
그런 분위기속에서 두산중공업 노사합의, 네이스 관련 노정합의, 철도 4.20 노정합의가 가능했고 화물연대 파업도 대화로 풀 수 있었다.
그러나 5월 이후 친자본, 반노동자적 본질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보수언론의 이데올로기 공세와 재계, 한나라당 등 보수수구 세력의 공격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정권의 성격이 신자유주의 정권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노 대통령이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말하면서 민주노총에 대한 악선전, 네이스, 철도 합의 번복 등 일관되게 ‘노동탄압’을 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주5일 노동을 빌미로 근로기준법을 개악하기도 했다.
현장이 절망하면서 분신정국이 이어지기도 했다. 앞으로 노무현 정권의 이 같은 본질은 강화될 것이라고 예상된다. 동북아 국가중심 정책을 강조하면서 전면적인 개방을 주장할 것이고 자본에 대한 특혜가 강화될 것이다.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도 신자유주의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조기에 노동운동을 약화하고 노조를 무력화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미 예상됐던 것이지만 노무현 정권의 본질이 빨리 드러난 것일 뿐이다.”

-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입장은.

“이미 노사정위의 실효성이 없다는 게 입증됐다. 그래서 민주노총이 계속 안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노사정위는 구조조정을 무리 없이 추진하면서 노동자들의 저항을 봉쇄하기 위해 활용되고 있다.
정리해고 합법화 등을 달성했고, 노동자에게 유리하게 합의된 부분은 이행되지 않았다. 이런 부정적인 면은 지금도 똑같다. 노사정위 가입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지금은 들어가지 않겠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 ‘총파업 남발’ 비판 동의 못 해

- 교섭전술이 미흡하다는 비판도 있는데.
“올해에도 노사정위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철도, 네이스 직접교섭을 통해 노정합의를 이끌어냈다. 이는 상당히 긍정적이다. 실질적인 교섭은 노동자에게 힘이 있으면 할 수 있다. 철도나 네이스 문제는 노정교섭을 통해 풀 문제이지, 노사정위에서 풀 수 없는 사안이었다.
그런데 무조건 노사정위에 들어오라는 식은 말이 안 된다. 사안에 따라 노정교섭을 추진하기도 하고 산별교섭도 확실하게 추진해야 한다.
총체적 교섭구조 틀, 중층교섭 틀이 필요하다. 투쟁 안하는 사람들이 보통 교섭전술이 부족하다고 말하곤 한다.
사안이 있을 때마다 정부와 직접교섭 통해 관철시켜 왔다. 투쟁이 담보되지 않으면 따낼 수 있는 여지가 적다. 투쟁이 담보되지 않고 교섭이 된다면 요구조건이 대폭 낮춰질 수밖에 없다”

- ‘민주노동당을 통한 정치방침’에 비판적이었던 ‘노동자의 힘’과 선거연합을 했는데, 임박한 총선 등 정치방침은 어떻게 가져갈 생각인지.

“민주노동당을 통해 정치세력화한다는 정치방침은 대의원대회에서 결정된 사안이다. 이를 준수해야 한다.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의회전술이 유효한지에 대해서는 많은 고민이 필요하겠지만 이미 결정된 사안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수행한다는데 이론이 없다.
4.15 총선에서 총력을 기울여 노동자 후보를 의회에 진출시키고 대중 정치투쟁을 본격화하고 변혁적 정치역량을 강화시킬 것이다. 난 당원이고 중앙위원이기도 하다.”

- 민주노총 활동에 대한 평가.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자 역관계 속에 가면 갈수록 노동자에 대한 착취와 탄압은 고도화되고 있다. 사실 노동운동하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그동안 자주성을 잃지 않고 투쟁의 원칙을 갖고 전체 노동자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는 점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국제적으로도 민주노총을 다 인정할 정도로 조직적 위상을 높여왔다.
한계도 있었다. 효율이 강조되고, 자본의 공세가 강화되다보니 현장이 무너지고 실리가 강조되면서 운동의 위기가 심화된 측면이 있다. 차기 지도부는 이런 한계를 진단하면서 혁신해 나가야 한다.”

- 비판보다는 ‘계승’을 말하는 것 같은데.
“어려운 시기에는 투쟁보다 타협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기 때문에 민주노총의 그동안 활동에 대한 평가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어려울수록 투쟁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민주노총이 그동안 총파업을 남발해왔다고 하는 비판에 동의하지 못한다. 꼭 해야 하는 투쟁을 해왔던 것이다.
또한 총파업은 지도부 맘대로 결정했던 게 아니다. 문제는 조직적으로 결정된 방침을 현장에서 실천하지 않은 게 문제였지, 결정 자체의 문제는 아니었다. ‘3대 악법 저지 총파업’이나 열사 투쟁시 총파업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총파업 남발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려운 조건에도 불구하고 총파업에 참여한 동지들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 통합적 지도력 필요한 시기

- 평등회의, 메이데이포럼, 노동자의 힘 등 세 조직의 선거연합 의미는.
“계급적으로 단결해 통합적 지도력으로 연결한다는 의미가 있다.
좌파연대는 노동자 생존권과 직결된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에 가장 앞장서서 해왔던 조직이다. 투쟁의 정통성을 견지해온 조직들이라고 할 수 있다.
운동진영이 다같이 연합해서 민주노총 단일후보를 만들어냈다면 더 좋았겠지만 우선 가까운 동지들이 뭉치는 것부터 필요했다.
세 진영의 연합은 선거 이후에 더 큰 형태의 연합, 전체를 통일, 단결시키는데 복무할 것이다.”



- 출마한 이유는.
“현재 신자유주의 완성구도로 가고 있고 현장이 어려워지면서 민주노총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어려울 때일수록 원칙을 지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계급적 노동운동을 강화하기 위해 위원장으로서 확실하게 해야 한다는 대의 속에서 출마하게 됐다. 난 위원장 직무대행도 했고 수석부위원장으로 일하면서 누구보다 조직사정을 잘 알고 있다.
우리 운동이 어려움 중의 하나가 통합력이 약하다는 것인데, 통합적 지도력을 발휘하는데 적임자가 아닐까 생각했다. 노조민주화 활동을 통해 5만명 규모의 한국통신노조 위원장을 했던 경험, 공공부문 공동투쟁 조직화, 초기 비정규직 조직화 사업, WTO국민행동 집행위원장 역할 등 다양한 경험이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본다.”

(이와 관련, 기호1번 선본 이해관 상황실장은 “유덕상 후보는 큰 흐름을 만들어내고 대중의 역동성을 파악하는데 강하다. 지금 상황에서 필요한 사람은 조율하는 역할보다는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면서 운동의 흐름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 당선된다면 앞으로 3년간 주력하고자 하는 사업은.
“‘현장이 전부’라는 게 지난 선거에 나올 때 슬로건이었다. 지금도 무엇보다 현장을 살려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철저하게 준비된 투쟁이 필요하다.
많은 조합원이 참여할 수 있도록 밑으로부터 조직된 투쟁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현장토론과 교육을 강화할 것이다. 현장을 살리는 사업을 최우선적으로 배치해 힘 있는 민주노총을 만들어 내겠다.

힘 있는 민주노총을 만들기 위해 현재 70만 조직으로는 부족하다. 이후 10년간 조직규모를 300만명으로 확대하겠다. 임기 내에 100만명의 조직으로 성장시키겠다. 이를 위해 비정규직 사업이 핵심이 될 것이며 임기 내 공무원노조도 가입시키겠다.
또한 제대로 된 산별노조 체제로 변화시켜 내야 할 것이다. 산별시대에는 지역본부 역할의 강화도 필요하다. 100만 민주노총 시대는 ‘제1노총’ 시대를 말한다.
또한 대중정치를 실현하고, 자주교류 사업이 중심이 아닌 대중적 통일운동을 확산시킬 계획이다. 반신자유주의 전선을 확대하는 것도 주요과제다. 이와 함께 브라질 구찌, 남아공 코사투 등을 중심으로 국제적으로 진보적 노동운동을 발전시키는데 민주노총이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
또한 취약한 아시아지역 노동운동을 발전시키는데도 나서겠다. 아시아지역 노조활동가 교육프로그램도 구상하고 있다. 이를 통해 민주노총의 국제적 위상을 높일 계획이다.”

<<현재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인 유덕상 후보는 74년 한국통신에 입사해 현장조직 활동을 통해 한국통신노조를 민주화시킨 장본인으로 한국통신노조 위원장(94년) 출신이다.
한통노조 파업과 관련해 구속된 데 이어 96년 공공부문노동조합대표자회의(공노대) 공동대표로 공공부문 5사 공동투쟁을 벌여 두 번째 구속이 되기도 했다. 98년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으로서 5월 총파업 지도부를 맡았으며, 2002년8월 민주노총 임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을 수행하기도 했다. >>

송은정 기자(ssong@labo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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