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핏 '김시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 김시자는 불덩이가 돼 대회장으로 들어왔다. 화상치료의 전문병원인 한일병원의 간호사였던 김시자. 그는 이렇게 당시 35세 나이로 운명을 달리한다. 한국노동운동 역사상 최초의 여성 분신이었다.

지난달 17일 삼성동 한전본사 대강당에서 열린 전력노조 대의원대회에서 핵심 쟁점이던 직선제 규약개정안이 첫 번째 부결돼, 대회장이 한바탕 북새통을 이룰 때 누군가 마이크를 잡고 이렇게 외쳤다.

"우리, 김시자 열사를 생각합시다"

그 사람은 바로 서울본사 지부 이상현(38세) 교육선전부장이었다.

결국 이날 규약개정안은 세차례에 걸친 찬반투표를 거친 끝에야 통과됐고, 전력노조의 55년 역사상 최초의 직선 위원장을 선출할 수 있었다.

* 첫 직선제 지부장의 절규, 그리고 분신

지난 94년 1월 12일 오후 경주 교육문화 회관. 이날 회관에선 당시 전력노조 최태일 집행부가 전력노조 본부 위원장 후보로 출마를 준비중인 광주전력지부 위원장 오경호(현 본부위원장)와 당시 최태일 집행부에 반대했던 한일병원지부 위원장 김시자를 정권 조치하기 위한 중앙위원회가 열렸다.

전력노조 최초로 직선제 지부위원장으로 당선됐던 김시자는 신상발언을 위해 미리 준비한 원고를 차분히 읽어나가고 있었다.

"저는 우리 한일병원 500여 조합원들의 소중한 한 표, 한표에 의해 당당히 선출된 한일병원 조합원의 대표입니다…우리병원 조합원들만 저를 징계할 수 있는 것이고, 여기 계신 지부 위원장님들로부터 법적으로나 상식적으로도 징계를 당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김시자는 20여분에 걸쳐 너무도 침착하고 당당하게 '최후 변론'을 마쳤다.

그러나 잠시 후 김시자와 오경호의 정권을 결의하는 투표가 예정대로 진행됐고, 이를 막기 위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때까지 아무도 김시자가 대회장을 빠져나가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고리원자력 지부 김채로(현 전력노조 비상대책위 상황실장) 위원장이 얼핏 '김시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 김시자는 불덩이가 돼 대회장으로 들어왔다.

화상치료의 전문병원인 한일병원의 간호사였던 김시자. 그는 이렇게 당시 35세 나이로 운명을 달리한다. 한국노동운동 역사상 최초의 여성 분신이었다.

* 꿈에 나타난 김시자 열사

김시자의 분신 상황 당시의 이야기를 어렵게 끝낸 김채로(47세) 노조본부 상황실장은 눈이 붉게 충혈돼 있었다. 김 실장은 김시자 열사의 마지막 말을 들은 사람이다.

"남은 일은 김채로 위원장이 맡아주세요."

김채로 실장은 김시자 열사의 마지막 모습을 회상하는 듯 하다, 천천히 말했다. "저는 살아있는 동안 절대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입니다."

김 실장은 규약개정 전날인 지난 16일밤 자신이 분신하는 꿈을 꾸기도 했다고 한다.

추모사업회 양성호 집행위원장(현 전력노조 기획국장, 46세)도 김시자 열사와 각별한 인연이 있는 사람이다. 양 국장도 지난해 전력산업 분할·해외매각 방침에 저지하기 위한 명동성당 철야농성을 하던 때 김시자 열사을 꿈에서 봤다고 한다.

그때 양 국장은 준비위 상태로 있는 추모사업회를 빨리 출범시켜야겠다는 초조함을 느꼈다.

양 국장은 최근 김시자열사 추모사업회의 소모임으로 역사현장 기행을 하고 있다. 이 모임을 통해 김시자 열사를 알리고자 함이다.

김시자 열사의 죽음으로 인생이 크게 변한 사람중에 또 한명은 현재 추모사업회 노조발전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인희 본사지부 위원장(39세)이다. 평소 노조 활동에 냉소적이었다는 이 위원장은 열사 죽음 이후 당시 집행부의 모습을 보며 "이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위원장에 출마해 당선된 사람이다.

* 추모사업회 발족 다음날 대법원의 간선제 위원장 무효판결

올 1월 15일 드디어 발기인 70여명, 매달 회비를 내는 회원 200여명으로 김시자열사추모사업회(회장 박인기, 한일병원지부 위원장)를 정식 발족했다.

전력노조 조합원 중 자유가입을 통해 회원이 되는데, 회원중에는 열사 분신 후 입사한 사람도 있고, 열사를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들도 물론 있었다.

우연히도 출범 다음날 대법원의 중층간선제 위원장 무효판결이 나왔다.

추모사업회는 바빠지기 시작했다. 노조정상화추진위원회(정추위, 위원장 오경호)를 구성하고 직선제 쟁취를 위한 투쟁에 돌입했다.

최태일 집행부를 이은 권원표 위원장이 임기 도중인 지난 7월7일 사퇴를 발표하자, 정추위 위원장인 오경호씨가 권원표 집행부와 연합집행부를 구성하게 된다. 연합집행부 구성후 우선 열사의 죽음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쳤던 최태일 집행부 인물들은 축출했다.

정추위는 결성 6개월만인 지난달 오경호 위원장 당선 후 해산됐다. 이제 추모사업회 사업에 몰두하기 위해서다. 회사에서 '김시자'라는 이름을 입밖에 내지도 못하게 하던 시절, 추모식에 참석하는 것도 눈치를 봐야 했던 때가 있었다. 추모사업회 사람들은 내년 5주기에는 본부노조 차원에서 추모식을 가질 계획에 들떠 있다.

열사의 '아름다운 꿈'이었던 '직선제 위원장'을 선출한 지금 회원들은 아직도 해야 할 일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열사의 명예회복과 노조 민주화 투쟁을 꾸준히 해나가는 것 등등. 열사의 뜻이 직선제 쟁취만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알기에….

*"열사는 죽어서 말한다"

지난 31일 전력노조 본사지부에서 늦은 시간 취재를 시작하자 추모사업회 회원 한명 두명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결국 9명이 모였다. 2일 전력범대위의 투쟁선포식 준비로 바쁜 와중에도 회원들은 직선제 위원장을 선출한 지금 김시자 열사를 너무도 말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김시자 열사가 경주로 떠나기 전날 모든 조합원들과 악수를 하며 돌아다닐 때 김시자 열사의 결심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박인기 회장(40세)은 직선제 위원장 선출 이후 모란공원에 다시 한번 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김채로 위원장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제안했다. "제목을 '열사는 죽어서 말한다'로 달면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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