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때보다 더 하다’ 많은 사람들이 아우성친다. 과연 엄살인가. 침체의 늪에 빠진 한국경제. 이 와중에 고용불안과 노사간 갈등의 골은 깊기만 하다. 원인은 무엇인가. 본지는 지난 16일 위기의 한국 경제와 노사관계를 진단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좌담에는 사회로 인하대 윤진호 교수(경제학)가, 토론자로 서강대 남성일 교수(경제학), 민주노동당 송태경 정책위원회 국장, 한국노동연구원 배규식 부연구위원 등이 참석했다.
<편집자주>


윤진호 교수(윤) : 올해도 노사관계는 적잖은 파열음을 내며 순탄치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 속에 묻어있는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논의는 적잖이 등한시 된 측면이 있습니다. 따라서 경기, 고용, 분배 그리고 이런 구조 속의 노사관계에 대한 논의가 보다 깊게 진행돼야 할 듯합니다. 다들 어렵다고 하는 국내 경기, 앞으로의 상황도 낙관적인 것 같진 않습니다. 침체의 원인과 전망에 대해 말씀해주시지요.


배 : 지난 5년간 일자리 추이를 보면 수는 늘었는데 질은 떨어진 양상입니다. 상용근로자의 경우 4만개 일자리가 감소한 반면 임시직은 120만개나 늘었다는 거죠. 일자리 수는 중소 서비스 업종을 중심으로 늘었고 제조업의 경우는 줄었습니다. 일자리 양극화 현상을 소득 수준별로 나눠보면 상위 30%와 하위 30%의 경우는 늘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중간층은 떨어진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1997년 이후 일반화한 추세입니다. 일자리가 수량적인 측면에서 유연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사용자가 추구한 경향이 강합니다. 투자를 하지 않으면서 기업 활동의 효율화를 인력감축에서 찾은 거죠.

송 : 고용문제에서 걱정되는 것은 비정규직입니다. 노동시장이 경직화가 아닌 대단히 유연화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겁니다. 여기에다 소득차별도 심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여성이나 청년의 경우 정규직에 비해 임금이 절반이하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죠.

나아가 사회병리현상으로 전개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성장에 앞서 우리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차원으로 이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남 : ‘실업과 인력난’이라는 상반된 현상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는 시장원리만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최근 몇 년간 20대 취업자 수는 전체적으로 준 반면 대기업의 경우 30대는 늘었습니다.

1997년 이후 직원을 뽑지 않아 빚어진 것으로 ‘사오정’이란 말이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은 측면이 있습니다. 대기업노조를 보면 생산성보다는 임금 상승률이 높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155만명에 달하는 전국 노조조직 상황에서 대기업 노조 조합원은 120만~130만명에 이릅니다. 노조가 교섭력을 높이면 기업은 노조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구조죠. 여기서 사람을 뽑지 않는다든지, 하청단가를 낮춘다든지 하는 문제가 이어집니다. 당연히 비정규직이 많은 10인 이하의 사업장에선 임금이 올라갈 수가 없죠. 결국 특정 근로자 집단의 요구가 다른 근로자 집단의 희생을 만드는 겁니다.

배 : 중소기업 근로자의 임금은 대기업의 67%에 머물고 있습니다. 또한 대기업의 경우 임금 수준이 생산 활동에 기여한 측면보다 높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인력은 줄었지만 연공서열 등 고성장기의 제도가 남아 있기 때문이죠. 청년실업은 대학 진학률이 높아지는데다 대기업 취업을 희망하는 즉, 눈높이가 높아 나타난다는 현실적 계산이 나오기도 합니다.

국내 노동시장을 세부적으로 보면 유연하고 경직된 측면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직무에 있어 외국과 달리 다양한 일을 수행하는 등 유연한 면이 있고, 대기업 노조가 구조조정에 저항하면서 임금 측면에서 경직된 부분이 있다는 말이죠.

성장과 분배 그리고 노사관계

남 : 고용원리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한마디로 고용을 있게 하는 쪽은 기업이란 말이죠. 이런 단순원리를 수용하고 기업의 고용여력을 위축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송 : 대만의 중소기업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저임금에 기초한 우리보다 기술혁신과 노동자의 삶의 질이 높죠. 기술혁신은 생산부터 분배까지 전 과정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니 제조업 공동화가 갈수록 높아지는 것이죠. 대기업 노조의 경직성과 관련해선 조직 수치를 따져보면 30만~40만명 정도 됩니다.

경직적인 면을 보이는 사업장은 과거 노사관계가 적대적이었던 곳으로 지금은 바뀌고 있는 과정입니다. 덧붙여 노조가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구조가 아닌 과거 (작업장 수준의) 노사관계의 연장이다 보니 임단협 등이 잘 안되는 양태를 띠게 되는 겁니다.

성장과 분배 문제로 넘어가면 성장과 분배는 구분되는 게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관계입니다.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것이죠. 여기서 핵심은 ‘성장의 질’입니다. ‘어떤 성장이고, 이에 상응한 분배는 어떤 모습인가’라는 겁니다.
김대중 정부시절의 성장은 해고와 비정규직 즉, 노동자의 소득악화를 기초로 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성장주의는 변함이 없다고 봅니다. 이 과정에서 수백만 절대빈곤층이 항상적으로 존재하게 됩니다. 따라서 사회복지 차원에서 분배구조를 적극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남 : 물론 성장과 분배를 따로 떼서 생각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성장을 잘하는 나라는 분배도 좋았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환경에 대한 관심도 높았고요. 따라서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성장이 기본입니다.
최소한의 성장을 해야 한다는 말이죠. (기업의) 의사결정 구조에 참여를 보장하는 성장은 ‘잠재성장’을 해칠 우려가 있습니다.

배 : 과거 정권에서와 달리 지금 노동계는 만족여부를 떠나 일정한 요구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제도적 참여’가 가능하다는 말이죠.
따라서 노동계가 책임 있는 주체로서 현안에 전략적으로 참여하는 비전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일정부분 성장이나 분배문제 등에 노동계가 참여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팽개친 측면도 있습니다.

비정규직 문제가 투쟁으로 해결될지는 의문시 됩니다만 주어진 기회를 활용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노사관계 정책은 중장기적으로 추진돼야 합니다. 무리하면 갈등만 부추기게 됩니다.
지금의 노사관계는 한마디로 ‘권력의 교착’ 상태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타협 가능한 것부터 노사간 접점을 찾아야 합니다. 핵심은 제도를 만드는 것보다 운용을 얼마나 탄력적으로 하는 가에 달려 있으니까요.
경기, 고용, 성장 등은 긴밀히 연계돼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좋은 일자리를 지키는 방법이 어떤 게 있을까’라는 방법론적 모색이 필요합니다.

남 : 지난 몇 년간 이른바 ‘노동권력’이 급격히 신장했습니다. 개별 수준에선 노조의 힘이 정부를 굴복시킨 예도 있으니까요.
두말할 것도 없이 한 국가에서의 기업 환경이 어려우면 다른 곳으로 피해가는 시대입니다. 상대편에 대꾸하지 않고 그대로 떠난다는 겁니다. 일자리가 없어지는 건 당연하죠. 이런 상황에서 노동계의 참여 범위와 수준은 달라져야 한다고 봅니다.

송 : 형식보다 실질적인 참여가 중요합니다. 기업단위에서 보면 떠나는 건 ‘지분’입니다. 따라서 소유지분과 관련된 전반적인 참여가 있어야 합니다. 기업은 노동자들의 터전입니다.
노동자 생산협동조합 등의 사례에서 보면 노동자들은 적극적인 참여 속에서 회사를 발전시키는 쪽에 힘을 기울입니다.

윤 : 마무리하면 경기침체의 현상에는 공감했지만 원인과 처방에 대한 입장은 다른데요. 일례로 고용의 질이 안 좋다는 점엔 공감하면서도 규제완화나 노조의 (의사결정) 참여 등에선 의견이 갈렸습니다.
특히 노사관계에서 양쪽 다 불만인 이유 등을 깊게 논의하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덧붙여 앞으로 경총 등 사용자 단체들의 역할에 대한 논의도 활발히 나와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정리 박길명 기자(myung@labornews.co.kr)
사진 조금미 기자(mizzery@labo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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