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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의 ‘순수한 여유’를 찾아서(Ⅱ)일상의 문화, 곧 정치다
요즘 각 대학의 풍물패나 사회과학 동아리 등 이른바 ‘운동권’ 동아리에 신입생들이 모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노동조합 문화패에도 조합원들의 발길이 뜸하다. 그 자리를 대신 메우는 것은 검도나 헬스, 인라이스케이트 등과 같은 동호회다. 노조 활동과 동호회 활동과의 상관관계를 살펴본다.<편집자주>


(⇒ 5일자에 이어) 아침 출근시간에는 분명 간간이 약하게 내리던 빗줄기가 갑자가 굵어졌다. 드넓은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안은 컨베이어벨트가 멈춘 점심시간이 되자 후둑후둑 떨어지는 빗소리로 꽉 찼다.
총총걸음으로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 앞에 비치된 조합원 게시판은 11대 집행부 선거에 출마한 5개 선대본의 대자보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쏟아지는 비 때문인지 노동자들은 걸음을 멈추고 게시판을 들여다보기보다는 서둘러 식당으로 들어가거나 식사를 마치면 다른 건물로 뛰어간다.

문화는 케이블티비를 타고

식당 안에도 선본들은 유인물을 나눠주느라 분주하고 밥을 먹으며 이를 찬찬히 읽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의 눈길은 대부분 유인물이 아닌 한 곳에 집중되어 있다. 바로 식당 곳곳에 비치되어 있는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되는 사내방송이다. 잠깐 보니 사내뉴스가 방송되는 것 같다.

회사 시설확충 계획이라든가 각종 행사가 소개되는가 하면 직원 ‘동정’으로 봉사 동호회인 ‘수지침연구회’ 활동도 소개된다. 울산 어느 양로원으로 보이는 곳에서 이 동호회 사람들이 수지침을 놓아주며 봉사하는 것이 미담으로 전해진다.

멍하게 티비를 응시하는데 같이 밥을 먹던 현대차노조 박유기 사무국장이 말한다. “사내 케이블티비 인기 좋지요, 이게 사택에도 모두 들어가는 방송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홍보효과나 파급력이 커요”라고 말한다. 박 국장은 “이번에 단체협약으로 노조가 케이블방송에 참여해서 방송권을 가지도록 했습니다.

노조에게 있어서는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일 만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한다. 집회에 불러 모으고 일일이 선전전을 하는 것보다 훨씬 적은 품으로 큰 홍보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어느 틈에 노조는 조합원들의 ‘일상’에 침투하려고 하지만 잘 되지 않고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여유시간까지 노동을 생각하기를 꺼리는 것 같다.

그런데 점심식사를 하는 잠깐 동안에도 노동자들은 케이블티브이를 비롯한 각종 매체에 노출돼 있다. 무의식적으로라도 무언가를 받아들인다.

노동자들의 여가시간은 양질의 노동을 위한 개인적인 휴식시간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가장 정치적인 시간이기도 한 것이다. 케이블티브이를 비롯한 일상의 홍보공간은 노사 모두가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일이다.
오후 8시. 다시 구정문 앞 문화회관으로 발길을 돌렸다.(문회회관은 현대자동차 사원들의 복지증진을 위한 문화공간이다) 지하 헬스장에는 퇴근을 하고 저녁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새벽에 검도동아리 ‘검우회’를 둘러 봤을 때의 열기가 또 한번 전해진다. 조금 더 들어가니 익숙한 풍물소리가 들린다. 문화회관 지하에 둥지를 틀고 있는 노조 문화패들이다.

문화패들, 누구보다도 ‘문화적 위기’느낀다

현대자동차노조 문화패들은 최근 5년간 신입회원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도 걱정이다. 현대차노조에는 노래패 노래모듬, 극회 시선, 풍물패 해방천지, 영상패 이렇게 4개의 문화패가 있다.

영상패를 제외하고 89~90년 사이 노조가 결성되면서 함께 생겨난 이들 문화패들은 한창 때는 풍물패에만 50명 정도가 활동을 할 정도로 활발했지만 지금은 노조 문화패들을 다 합쳐봐야 40명이 안된다.

노조 문화패 총패장을 맡고 있는 허명호씨는 말한다. “투쟁과정에서 만들어진 노조 문화패들은 아직까지 ‘집회할 때 동원되는 집단’ 정도로만 생각만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문화패에 가입하면 회사에 강성으로 찍힌다고 생각하고. 우리도 고민 많죠. 문화패들의 성격을 운동적인 측면보다 개인적 취미를 키우는 것까지 확장해 나가야 하는지.”

“그런데 우리가 지금 어떻게 조합원 대중에게 다가갈 것인지는 다르게 생각해야 해요. 지금 사내 동호회가 잘 된다고 해서 노조도 그런 동호회를 만들어서 회사랑 같이 문화사업을 하려고 하면 게임이 안 되는 거죠. 50~60억원을 들여서 조합원 가족 강좌까지 만들어서 사업하는 회사를 어떻게 감당하겠어요? 노조의 문화운동은 자본의 공세 속에서도 노동자들이 노동자적 정서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에 있다고 봐요.”(풍물패장 송남섭씨)

그렇다면 지금의 위축된 문화활동 상황에서 어떻게 노동자들의 정서를 파고 들 수 있을까? 현대자동차 조합원들의 면면을 보건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평균연령 30대 중반을 넘긴 가족을 책임지고 있는 가장들이다. 주5일 근무를 여가와 함께 즐기기보다는 야근과 특근을 해서라도 수당을 좀더 챙기는 것을 선호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그 틈새를 사내 동호회나 매체가 파고들고 있고 노동문화에 대한 접근성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 모두 다 인정하고 있는데 말이다.

울산 문화단체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왔으며 지금은 현자노조 문화패 상근간사를 하고 있는 이강민씨는 “그렇다고 어떻게 대중성을 확보할 지는 잘 모르겠어요. 정말 노래패는 모두 록음악을 하고 풍물패는 10년 동안 해온 ‘길놀이’를 그만둬야 하는 건지.

사실 그런 시도를 한 문화활동가들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뚜렷한 성과가 없었다는 거죠. 난 100년이 지나도 ‘파업가’는 가장 훌륭한 노래라고 생각하는데, 안 그렇습니까?(웃음) 난 장르의 문제가 아니라고 봐요. 문화패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창작물과 공연으로 다가 간다면 노동자들이라면 분명 공감하는 지점이 있다고 봐요” 이강민씨는 이것을 ‘중심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다양성’이라고 말한다.

노조 선거라는 것이 문화패들이 분위기를 띠우기 마련이어서 문화패들도 선거 준비에 바쁘다. 늦은 밤까지 연습을 하던 문화패원들은 밤 10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갈 준비를 했다.

강조하건데, 문화는 ‘잠식’당한다. 게다가 매우 개인적이다. 그렇게 개개인을 움직인다. 정치 혹은 이데올로기도 개인을 움직인다.

그래서 정치와 문화는 닿아있다.

그것을 노조는 단체협약을 통해 케이블티브이 방송권을 ‘따냈다’고 했다. 그런데 그 노조의 방송이 실제로 노동자들의 눈길을 붙잡을 수 있는가는 또 다른 과제다. 마찬가지로 노조 문화패가 ‘중심을 지키며’ 노동자들의 정서에 다가 갈 수 있을지도 여전한 과제다.

김경란 기자 eggs95@labornews.co.kr

김경란 기자  labortoday@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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