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수 공인노무사(민주노무법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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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1년 전 P시는 수로원(도로보수원) 20명을 일시에 해고했다. 해고이유는 업무의 민간위탁으로 인한 ‘정리해고’. 수로원들은 추운 겨울에 거리로 나서서 천막을 치고 농성을 시작했는데, 이것은 해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노동자들이 당연히 감수해야 할 인내와 고통의 시작이었다.

P시가 도로보수업무를 민간위탁하면서 내세운 가장 큰 이유는 1998년도 국가적인 구조조정이 진행될 때 내려온 구조조정 지침이었고, 지침의 목적은 효율성과 예산절감이었다. 그러나 지방노동위원회에서는 P시의 정리해고가 경영상의 이유가 명확하지 않고, 노동조합과의 협의절차를 충실하게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당하다는 결정을 하였다.

사실 P시는 민간위탁에도 불구하고 위탁계약금이외에 도로보수비용이 종전과 동일하거나 오히려 증액하여 책정해서, 예산을 증가시켰다.
게다가 P시는 2003년에 대시민용 선심성예산, 해외연수지원, 판공비 증액 등 낭비성예산 수십억원을 증액 편성했고, 민간위탁해서 절감시켰다는 인건비 3억원 가량은 전체 예산규모에 비추어 0.1%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고, 도로보수예산은 민간위탁비와 중복 편성되어 오히려 증액된 상태였다. 즉, 민간위탁-정리해고와 시예산 감축과의 인과관계는 없었다.

그러나 P시는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청구를 하면서 지노위의 결정을 이행하고 있지 않다. 해고자들에게 노동위원회의 결정은 구세주와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곧 수로원들은 노동위원회 결정이 억울한 해고자를 복직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게다가 수로원들이 지방법원에 제기한 해고무효 확인소송은 지방노동위원회 판결과 대조적으로 기각되었다. 법원판결의 요지는 정부지침은 ‘경영상의 이유’에 해당되며, 민간업체로 고용승계노력을 했기 때문에 해고회피 노력을 한 것으로 간주, 노조와도 충분한 협의를 하고자 노력했다는 것이다. 같은 사실을 놓고 판단이 상반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근로기준법 제30조에는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를 금지하고 있다. 노동자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음에도 집단적으로 해고돼야 하는 정리해고는 통상적인 징계해고보다 훨씬 더 엄격하게 해고가 정당한지 여부를 판단해야 하고, 판단의 무게도 경영상의 필요성과 더불어 노동자의 생존권 보호라는 측면이 동일하게 실려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판례도 해고회피노력을 경영상의 이유와 함께 정리해고의 실질적 요건으로 보고 있다. 해고회피노력에는 신규채용중지, 배치전환, 자발적인 임금삭감, 순환휴직, 희망퇴직 등이 있는데, 판례는 모든 경우에 동일한 해고회피의 기준을 적용하지는 않고 각각의 특수한 상황에 적합하게 달라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대법원 1995.12.22.).

예를 들어 정리해고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경우였다면 별도의 해고회피노력이 없어도 정리해고는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리해고 직후에 신규채용, 계약직채용이 있다면 정리해고는 정당화돼서는 당연히 안 된다.(서울고법 2001.11.14. 2001누1026)

그런데 현재 판례는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를 기업의 도산을 회피하기 위한 경우에만 한정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보아 인원을 감축할 만한 합리성이 있는 경우에도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대법원 1991.5.11. 99두1809, 2001두10783).

그래서 정부의 지침에 의한 구조조정-정리해고를 판단함에 있어서 일관되게 경영상의 불가피한 이유로 판단하고 있다(대법원 1993. 12. 28. 선고 92다34858,대법원 1996. 8. 23. 선고 96다19796). 여기에 어느 정도의 해고회피노력을 보이면 정리해고의 실질적인 정당성을 인정하고 있다. 판례의 이런 태도는 경영상의 이유에 대한 폭넓은 인정 외에도, 정부정책이라는 측면에서 사기업의 ‘경영상의 이유’에 관한 기준을 그대로 적용시킬 수 없다는 판단에 기초한 것 같다.

그러나 공공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를 주된 목적으로 하는 공공기관이 경영악화에 직면해서, 또는 수익성 개선을 위해 정리해고를 한다는 것은 조직의 목적과 맞지 않고, 오히려 조직의 목적을 포기해야 가능한 일이다.

법대로 공공기관이 경영상의 이유로 인한 해고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하려면 조직의 사업부문 축소나, 폐업을 하는 상황 외에는 있을 수가 없다. 그런데도 정부의 지침은 근로기준법의 해고보호조항을 간단히 무력화시키는 만능열쇠가 되어 있다.

이런 배경 아래에서라면 P시의 정리해고에 대해 지방법원의 ‘정부지침에 따른 공공부문 구조조정’이기 때문이라는 단순하고 초법적인 판단은 - 비록 P시가 해고회피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어도, 노동조합과의 교섭에서 정리해고의 기준을 협의하지 않았어도, 심지어 교섭이 사용자가 요구하는 대로 잘 되면 정리해고를 하지 않을 수 있다고 공공연히 주장했어도 - 가능한 것이다. 노동자들은 정부의 정리해고에 대해 속수무책으로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상담문의 :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부설 민주노무법인
02) 376-0001, http://minju.workingvoic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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