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는 노벨상 수상보다 더 유명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는 단순한 소설가가 아니다. 노벨 문학상 수상 당시 일본 천왕이 수여한 상을 거부함으로써 오에는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지식인의 상으로, 일본의 진보 세력을 대표하는 인물로 새겨졌다.

오에 겐자브로 “이라크 참전 분노”

이 사건은 오에 자신의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됐다. 자전적 소설 <사육>에서 드러나듯이 아버지에게서 문학 세례를 받은 그는 책과 함께 성장기의 대부분을 보냈다.

그 시기는 일본의 태평양전쟁 패전과 미국의 민주주의 그리고 전후 일본 사회에 실존주의의 물결이 넘실대던 때였다. 오에의 문학을 규정짓는 실존주의라는 단어는 이러한 성장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일본인의 내면 풍경과 실존적 위기를 적확하게 묘사해내는 문장의 힘은 젊은 오에 겐자부로를 주목받는 위치에 올려놓았다.

그는 일본 전후문학의 선두주자였으며 1965년에 발간한 <히로시마 노트>를 통해 원폭 문제에 관한 깊이 있는 에세이를 써내기도 했다. 이러한 영향력은 SF 소설의 영역까지 관심을 넓혀 <치료탑>에서는 원폭 이후 세기말의 일본 사회를 매섭게 그려내었다.

일본 사회를 축약한 듯한 엘리트 중심의 미래 일본 사회는 우주에서 발견된 ‘치료탑’이라는 상징적 매개를 통해 구원의 메시지를 확인하게 된다.

그는 소설 밖에서도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베트남 반전 운동의 선두였던 베평련의 중심 멤버로 활약한 반전주의자였고 문학의 정치성을 누구 못지않게 각인한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다.

그가 좋아하는 한국인은 ‘김지하’다. 일본의 정치적 격변 속에서 문행일치를 화두로 언제나 역사적 격동의 중심에서 자신의 세계를 다듬어왔다. 매우 일관되게.

조선일보 파병주장 책임 피해가기

그런 오에 겐자부로가 지난 3일 조선일보의 28면에 얼굴을 드러냈다. 기사의 제목하여 “이라크 참전에 분노한다”는 것이다. 오에 겐자부로는 지난 1일자 프랑스 좌파 일간지 리베라시옹에 ‘나는 분노한다’는 제목의 글을 보내 일본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을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오에 겐자부로의 파병반대 주장을 단독 보도했다. 그러나 같은 날 조선일보는 34면 강천석 칼럼을 통해 파병을 독려했다. 그것도 전투병 중심으로 파병하라고 부추겼다. 조선일보 강천석 논설주간은 전투병 파병의 이유를 한국 젊은이들이 지원병 중심으로 파병돼서 몰살당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되도록 전투병 중심으로 파병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 주간은 시민단체 등 문외한들이 파병문제에 ‘감 놔라’ ‘배 놔라’하면 안 된다고 꼬집었다. 또 비전투병 중심으로 파병할 거라면 우리의 젊은이들을 아예 보내지 말아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결국 조선일보는 모조리 특수부대 출신의 전투병으로 보내라는 거다. 조선일보는 파병 이후 전사자가 발생했을 경우 “봐라 내가 뭐랬냐. 모두 전투병으로 보내라고 했잖아. 비전투병을 보내는 바람에 사상자가 생겼다”는 논리를 펴며 자신들의 파병 주장이 미칠 파장을 피해가려는 것이다. 나중에 미칠 사회적 비난에도 유유히 빠져나가기 위해 안전장치를 만드는 것이다.

행동하는 지식인 아쉬운 나라

그나저나 우리에겐 왜 오에 겐자부로 같은 소설가 한 사람 없는 것일까. 툭 하면 이민 가겠다는 소설가, 시인 나부랭이들은 늘려 있지만 사회문제에 대한 제 목소리를 내는 용기 있는 지식인은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질 않는다.

그러니 파병을 독려하는 선무공작대에 다름없는 보수 언론들만 기가 살아 광란의 칼춤을 추는 것이다. 지식인들이 얼마나 썩어 문들어졌으면 보다 못한 현역병이 탈영까지 감행해 파병 반대 농성을 벌였겠는가. 이 사건을 MBC가 지난 4일 저녁 프로그램에 내보내자 중앙, 동아일보는 사설을 통해 ‘경솔한 영웅 만들기’니 ‘사회일탈’ ‘탈영병 미화’라는 식으로 헐뜯었다. 강 이등병은 파병을 독려해온 이들 신문들로서는 용서할 수 없는 범법자였을 것이다. 미쳐 돌아가는 사회를 제대로 읽어내는 지식인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니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없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정호 언론노조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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