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장기 불법체류자 단속을 피해 노숙생활을 하던 중국동포가 9일 새벽 서울 시내에서 동사(凍死)했다. 사고 당시 이 중국동포는 112와 119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9일 오전 5시20분쯤 서울 종로구 혜화동 혜화고가 인근 도로에서 중국동포 김모(46)씨가 인도에 쓰러져 숨져 있는 것을 환경미화원 김모(55)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김씨가 숨진 장소는 경찰 지구대 사무실에서 불과 20여m 떨어진 곳이었으며, 김씨의 휴대폰에는 이날 오전 1시15분 119에 1분43초, 1시18분부터 4시25분까지 112에 각각 6초∼4분여 동안 13차례 전화한 기록이 남아있어 경찰과 119구급대가 김씨의 구조 요청에 안일하게 대응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경찰은 “112신고는 신고자가 신고장소와 상황 등을 명확히 밝혀야 접수되고, 김씨의 신고는 112에 정식 접수되지 않았다”며 “김씨와 112 간에 실제 통화가 이뤄졌는지는 이동통신사를 통해 확인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씨의 사인과 관련, 경찰은 “몸에서 타박상 등 타살흔적이 발견되지 않은 만큼 최근 갑자기 추워진 겨울 날씨 때문에 동사한 것으로 보인다”며 “부검을 통해 정확한 사인을 밝힐 예정”이라고 말했다.

‘중국 동포의 집’ 관계자들은 “김씨가 지난달 18일부터 서울 기독교 100주년 기념관에서 중국동포 150여명과 불법체류자 강제추방에 반대하는 농성을 벌이다 지난 2일 농성장을 이탈한 뒤 소식이 끊겼다”며 “농성장을 벗어난 뒤 불법체류 단속을 피하기 위해 노숙생활을 하다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 ‘중국동포의 집’의 김해성 목사는 “정부가 외국인 불법체류자들에 대한 강제 추방과 단속을 벌인 이후 사망한 외국인 희생자가 벌써 일곱 번째”라며 “언제까지 중국동포와 외국인 노동자들이 정부의 단속에 쫓겨다니다가 이렇게 죽어가야 하느냐”며 정부의 강제추방 중단과 재외동포법 개정을 촉구했다.

김씨는 중국 하얼빈(黑龍江)성 출신으로 지난 2001년 7월 국내에 밀입국한 뒤 막노동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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