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상 전국언론노조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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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신문들을 읽고 있노라면 정말 ‘무찌르자 노동계!’라는 섬뜩한 구호가 날마다 넘실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정말 악의적인 보도에는 두 손 두 발 몽땅 들게 된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사용자는 ‘전투적’이라는 방증이리라.
<한국경제>와 <매일경제> 12월6일치에는 ‘날로 높아지는 근로자 평균연령’, ‘노동시장 경직성이 문제다’라는 제목의 사설이 각각 실렸다. 내용인즉, 강력한 강성 노조가 일자리를 내놓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국내 노동시장이 엄청나게 경직적이고 그래서 ‘젊은 피’가 수혈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산현장에서 젊은이를 찾아보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 노동시장이 얼마나 경직적인가를 보여주는 증거다. 강력한 노조의 보호를 받고 있는 근로자들이 어떤 일이 있어도 일자리를 내놓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결국 기업이 젊은 피를 수혈하기가 그만큼 어려워지는 셈이다 … 종업원 10명 이상 기업체 근로자의 평균 연령이 80년 28.8세에서 지난해 36.7세로 높아졌다 … 우리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획기적으로 높이지 않으면 갈수록 심각해지는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고 외국 근로자들이 넘보는 수십만 개 일자리를 지킬 수도 없을 것이다. 더 이상 생산현장에서 20대 젊은이가 희귀종 취급을 받아서도 안 되고 비정규직 근로자들까지 조직화돼 기존 노조의 행태를 답습해서도 안 될 일이다.(매경)

근로자 평균연령이 지난해 말 현재 36.7세를 기록해 90년보다 4.1세, 80년에 비해선 7.9세나 높아진 것은 노동력의 고령화 추세를 뚜렷이 보여준다 … 특히 제조업 생산현장의 노동력 고령화 추세는 더 심각하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평균연령이 44.5세, 평균근속연수는 16년에 달한단다. 노동력 고령화 현상은 청년층 진학률 상승, 수명연장, 고령층 활동 증대 등에도 상당한 원인이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 이유는 노동시장의 탄력성 부족에 있다고 봐야 한다. 강성노조가 기존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진입장벽을 만든 탓에 젊은 피가 공급되지 않는 것이다.(한경)

‘비정규직은 노동3권을 행사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고 내뱉는 매경

사설의 ‘사회적 폭력’ 앞에서는 말문이 막힌다. ‘강력한 강성 노조가 젊은 피 수혈을 막는다’ 운운하기에는 우리나라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너무나 낮다. 올해 8월 현재 노조 조직률은 11.4%(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 기준)이다. ‘10인 이상 사업체 상용직’ 숫자는 2002년 말 전체 노동자 1,418만명의 36%인 510만명이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에 조직된 노동자 수는 약 160만명으로, 10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 510만명의 31% 정도밖에 안 된다. 31%로 인해 10인 이상 사업장의 평균연령이 80년보다 7.9살이 높아지려면, 69%는 전혀 나이를 먹지 않는다고 할 경우 31% 사업장에서 평균 25.2살(510*7.9/160)을 더 먹어야 한다. ‘강력한 강성 노조의 일자리 내놓지 않기’라는 주장의 황당한 결론이다.

노동부가 지난 11월27일 세계은행그룹의 ‘Doing business in 2004, 근로자 고용과 해고’라는 보고서를 빌려 아이슬란드와 룩셈부르크를 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 회원국 가운데 우리나라의 비정규직의 채용이 두 번째로 가장 쉬운 것으로 소개한 것이 불과 며칠 전의 일이다.

또한, 해고사유와 해고절차, 통보기간 등의 기준에서 볼 때 해고에 대한 우리나라의 법적 규제는 조사대상 29개 국가 가운데 12번째로 나타나 중간 정도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경제월간지 <포브스> 1월30일치는 △1년 이상 장기실업자 비중 △단체협약 적용률 △해고의 용이성 △법정 휴가일수 등 4가지 지표를 척도로 삼아 비교한 결가 “한국의 노동시장 유연성은 OECD 국가 가운데 미국, 캐나다에 이어 제3위”라고 발표한 바도 있다.

얼마 전에는 2002년 직장을 떠난 노동자 304만명 가운데 정년 퇴직자는 0.37%(1만2천명)밖에 안 되고, ‘삼팔선’이니 ‘사오정’이니 하는 말이 나올 정도로 30~40대가 직장에서 부지기수로 퇴출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한국 노동자의 직장 퇴출 개시 연령이 35살로 OECD 가맹국 평균보다 10년이나 이르지만, 정작 사회 은퇴 연령은 68살로 세계 4위라는 통계도 있다.
그런데도 국내에 널리 알려진 제프리 존스 주한미상공회의소 명예회장이 지난달 25일 조찬강연에서 “한국에서 노동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위해 정리해고제가 도입돼야 한다”고 사기를 치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다음날 신문에 이를 그대로 보도한다.

근로기준법에 명시돼 있는 정리해고제가 마치 없는 것처럼 보도하고 있는 것이다. ‘무찌르자 노동계!’ 무자비한 손배가압류로 인한 노동자들의 분신, 자살의 분노가 조금씩 수그러들자 다시 이 구호가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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