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희 본지 논설위원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부소장
sheekim2@hanmail.net


올 겨울 거리도 노동자들의 투쟁의 열기로 뜨겁다. 김영삼 정부의 노동법 개악에 맞서 시작된 노동자들의 겨울 투쟁은 김대중 정부에서도 계속되더니 이제 노무현 정부에서도 재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집단적 저항의 통로마저 ‘배부른 노동자들의 집단 이기주의 투쟁’이란 비난으로 막혀버리자, 노동자들은 개인적 옥쇄라는 최후의 투쟁수단을 택했다. 이제 '뜨거운 불만의 겨울(the hot Wineter of Discontent)'은 '처절한 분노의 겨울(the bitter Winter of Wrath)'이라는 어두운 색조로 덧입혀지고 있다. 왜 이런 상황에 이르렀을까?

노동개혁은 김영삼 정부 이후 노동정책의 단골 메뉴였다. 그러나 노동개혁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못해 비참할 지경이다. 노동개혁은 노동부문에서 전근대적이고 비합리적이며 불균형한 힘의 관계를 대등하게 조정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실제 진행된 노동개혁은 노동을 ‘위한’ 개혁이 아니라, 노동에 ‘대한’ 개혁이었다. 개혁의 주체 또는 동반자가 개혁의 대상으로 바뀐 것이다. 노동개혁 10년의 역사는 ‘노동유연화의 역사’이자, 형식적 포섭과 실질적 배제라는 ‘노동배제의 질긴 역사’이다.

노무현 정부의 노동정책은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라는 틀 안에 5대 차별 시정, 동일노동 동일임금 실현 등 과거보다 진일보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보수적 정권의 최선에 가까운 개혁구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통합적 구상은 어느덧 협력적 노사관계의 구축이라는 김영삼 정부 이래 오랜 노동정책 기조로 바뀌었다. 협력적 관계와 노사관계 안정화는 노무현 정부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노동개혁을 적극적으로 전개한 결과이지, 개혁에 앞서는 목표가 될 수 없다. 이 순간 과거 노동개혁 실패를 극복할 대안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게 된다.
노무현 정부가 노동개혁을 실현하고 개혁정부의 이름 아래 남은 기간을 보낼 것인지 여부는 다음 네 가지의 측면에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성장과 분배의 조화’라는 경제정책의 기조가 어느덧 ‘위대한 2만불 시대’라는 성장우선주의 구호로 뒤바뀌었다. 이는 국가경쟁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제도적 개혁의 포기와 규제완화’ 그리고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는 ‘노동유연화의 확대’를 의미한다. 노동에 대한 개혁이자, 유연화의 역사였던 왜곡된 노동개혁의 역사는 되풀이되게 된다.

둘째, 노사관계 안정화가 최상위 목표로 설정되는 순간 노동자들의 불만과 파업은 국정 운영의 장애요인일 뿐이다. 노동자들의 집단 이기주의적 투쟁이라는 비난은 80년대 영국 대처정부의 신보수주의 정책과 맹렬한 반노조정책을 연상케 한다. 개혁을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가 확고하다면 노동자들의 저항과 투쟁은 개혁의 자양분이지, 방해물이 아니다. 갈등과 저항은 배제하고 협력만을 포섭하고 제도화하려는 구상으로는 최소한의 노동개혁도 성취할 수 없으며 배제적 노동정책을 재현할 뿐이다.

셋째, 노사관계 개혁의 큰 그림을 세울 수 있을 것인가? 좌초된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구상도 김대중 정부의 형식적 노동개혁의 상징물인 노사정위원회를 넘는 수준의 내용을 담고 있지 않았다.

과연 노동자들의 투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며 갈등의 비용이 커지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던 적은 있는가? 50년 이상 이어져온 와그너법체계의 미국의 노사관계를 총체적으로 개혁하기 위해 클린턴 정부가 구성했던 던롭위원회, 그리고 60년대 후반 작업장에서 터져 나오는 비공식적인 파업과 노동자들 저항의 원인을 탐색하고 작업장 노조체계의 제도화를 시도했던 영국의 도노반위원회와 같은 총체적 노동개혁의 구상이 만들어지지 않고 졸속으로 만들어진 노동개혁의 구상에서 기대할 것은 없다.
넷째, 한국 노사관계의 끊임없는 갈등의 원인은 기업별 노조체계의 한계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정부와 자본의 시각에서도 기업별 노조체계의 효용치를 한 번 깊이 따져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개별화된 갈등을 증폭시키는 문제의 핵심으로서 제도적 개혁의 제1의제로 설정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기업별 노조체계의 한계와 비용을 인식하고 산별체계를 제도화하려는 구상 하나만으로도 노동개혁은 큰 진전을 이룰 것이다.

‘뜨거운 불만의 겨울’과 제도적 개혁 사이의 빈 공간이 바로 노동개혁의 공간이다. 이 공간을 보수적 정부에게 맡기는 것은 넌센스라는 관측이 연속된 세 정부를 경험한 최종 학습효과일 것이다. 이 개혁을 목표로 인식하든 과정으로 인식하든, 이제 제도적 개혁은 노동운동의 역량에 의존하는 일이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

제도화의 미비로 발생하는 갈등과 무질서의 비용이 제도화로 치러야 하는 대가보다 크다는 것이 확실하게 인식될 때에 정부와 자본은 제도화에 나서게 될 것이다. 노동운동은 갈등과 무질서라는 비용을 더 인식시켜주는 방법 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뜨거운 불만의 계절은 계속될 것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