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요즘 각 대학의 풍물패나 사회과학 동아리 등 이른바 ‘운동권’ 동아리에 신입생들이 모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노동조합 문화패에도 조합원들의 발길이 뜸하다. 그 자리를 대신 메우는 것은 검도나 헬스, 인라이스케이트 등과 같은 동호회다. 노조 활동과 동호회 활동과의 상관관계를 2주에 걸쳐 살펴본다.



여가를 즐기는 노동자들

열심히 죽도를 휘두르는 한 노동자에게 다가갔다. 주?야 맞교대 시스템의 생산직들은 아침운동에 꾸준히 나오기가 쉽지 않은데 엔진부에 있다는 이 아무개씨(36)는 누구보다도 열심이란다. “물론 시간을 내기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럴수록 일만하면서 방치했더니 건강이 많이 나빠졌습니다. 동호회에 가입해서 꾸준히 운동을 했더니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어요.” 그러고 보니 12시간 주,야 맞교대로 벨트를 타고 잔업에, 특근에 어느 곳보다 최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는 자동차 노동자들이야말로 열심히 운동이라도 해야 그나마 체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체력적인 것뿐만이 아니죠. 기수별로는 수시로 모임을 갖고 일년에 한번 정도는 총회도 하면서 전체 회원들 간의 친목활동도 활발해요. 생산직 뿐 아니라 여러 직종 동료들과 친해 질 수 있다는 것도 아주 좋아요.” 그렇다면 지금 진행되고 있는 노조 임원선거나 노조 문화패들 활동에 관심이 있는지 물어봤다.
“선거는 아직 초반이라. 관심이 안 가네요. 노조 풍물패나 노래패는 좀 안 맞아서. 노조도 조합원들의 복지증진을 위해 애쓰는 것도 아는데 좀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해요. 근골격계 질환이 자동차 내에서 최대 이슈인데요, 작업환경도 바뀌어야 하지만 꾸준히 운동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리고는 다시 서둘러 죽도를 든다.

현대차 사내동호회의 장점은 같은 취미를 중심으로 신체나 정서를 발달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강요되지 않는 인간적 화합’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화합은 매우 인간적이어서 노조에서 운영하는 어떤 ‘목적의식적’인 문화패 활동보다는 훨씬 부담이 없다.

게다가 회사는 동호회 활동을 적극 권장하고 필요하다면 지원도 해 준다. 회사의 지원은 반드시 수치로 계량된 활동상황과 인원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각 동호회들은 결속력을 높이고 회원수를 늘려 재정지원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애쓴다.

노동자들의 ‘건전한’ 여가생활을 위하여

현대중공업노조 김형관 전 조직국장은 “회사의 지원을 받는 동호회가 활성화되는 것을 노조나 노동운동 진영에서 그대로 방치하다가는 언젠가 모든 조합원들의 정서가 동호회 활동의 주축이 되는 회사 쪽 논리와 상통하게 될 것” 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현대중공업에서는 현대자동차보다 훨씬 먼저 사내 동호회 활동을 막대한 자금력을 동원해 집중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는데 올 초에는 ‘1인 1서클 운동’을 벌이면서 회사에서 적극적으로 사내 동호회 규모를 확대했다. 김 전 국장은 “회사가 지원금을 주고 임원들이 각 동호회 장을 하는데 어느 동호회가 노동자의 관점을 가지고 모임을 갖겠느냐”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노동자들의 동호회 활동을 통한 여가생활을 마냥 ‘색안경’을 끼고 볼 일도 아니다. 주5일제를 단협으로 마련하고도 주6일, 주7일을 기계처럼 일하면서 연봉 6천만원 받는 ‘노동귀족’이라는 차가운 시선을 받는 것도, 그러면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과로사로 픽픽 쓰러져 나가는 현실을 더 이상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차 회사 쪽 관계자는 “회사가 동아리를 지원해 주는 것이 관리차원의 목적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며 “그렇지만 이미 조합원들은 노조를 통해 자신을 지키는 것과 회사 재정적 지원을 이용해 이익을 챙기는 것을 다 할 줄 안다.”고 말한다.
게다가 최근 현대자동차 문화회관에는 사내동호회 활동만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가족들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센터 강좌도 열린다. 수영, 헬스 등의 스포츠는 물론 종이접기, 꽃꽂이 등 웬만한 백화점 문화센터에 개설된 강좌는 다 있고 조합원 가족 3,200여명이 수강한다. 수강료는 겨우 1만원.
노조 풍물패장을 맡고 있는 송남섭씨는 “이런 가족 단위의 지원은 여자들의 발언권이 센 시대에 노조 방침에 따라 파업이라도 할라 치면 집에서도 이해받지 못하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노조 최병철 문화부장은 “문화라는 것은 잠식되어 가는 것인데 노동자들이 지금은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활동을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회사와 노조가 대립각을 세울 상황이 되면 동호회는 어떻게 이용될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이어 “98년 정리해고 투쟁 때도 노조가 집회를 잡으면 그 때 동호회 일정을 잡는 거다. 조합원들도 투쟁과정이 힘들어지니까 동호회 모임에 가는 거고. 당시 노조가 동호회 때문에 받은 타격은 매우 컸다”고 한다.
노동자들의 노동자적 정서가 딱히 무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노동자 의식이 아닌 개별화되고 개인주의적 정서가 강해지고 있는 것은 어두운 그림자임에 틀림없다.

김경란 기자 eggs95@labor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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