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상 전국언론노조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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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웃기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 23일 채권단의 2조원 신규자금 지원으로 연명한 엘지카드는 물론 금융감독위원회까지 나서, 엘지카드가 부도 위기에 몰린 원인을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신용불량자 구제대책’에 떠넘기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언론까지 여기에 가세하고 있다. 논리인즉 이렇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10월 중순 원리금의 70%를 깎아주는 신용불량자 구제대책을 마련 중이라는 소식이 언론에 보도됐는데, 그 직후부터 ‘배째라’고 하는 연체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각 카드사의 연체채권 회수율은 15~20% 떨어졌다. 연체자들에게 빚을 독촉하는 전화가 ‘연결’되는 확률도 9월의 평균 56%에서 20~30%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동아 11월28일치 A6 ‘기자의 눈’ “‘배짱연체’ 누가 부추겼나”). 캠코의 구제대책 이후 “8개 전업카드사에서 빚 갚기 기피로 늘어난 카드연체가 매월 최소 2조원에 이르렀다고 한다… 엘지카드의 유동성 위기는 연체채권 회수율 급락이 주요한 원인이었다”(김문환 국민대 교수 겸 신용카드학회장). “캠코의 신용불량자 구제책이 연체자의 도덕적 해이를 불러왔다”(이종석 엘지카드 사장). “카드 부실의 원인은 캠코의 채무 탕감 계획과 채무자들의 도덕적 해이… 연체율 악화를 보도한 언론”(금융감독위원회) 등등.

* 신용불량자 책임론이라니

언뜻 보기에 원리금의 70%를 깎아준다고 했으니 ‘캠코 때문에 그럴 만 하다’고 여길 것이다. 천만의 말씀. 10월16일 언론에 처음 보도된 캠코 구제대책은 은행?카드사 등으로부터 사들인 상각채권(대손충당금으로 털고 손실로 처리한 채권) 가운데 재산이 있는 채무자나 2개 이상 금융기관에 빚이 있는 다중 채무자 등을 뺀 30~40만명을 대상으로 원금 50% 등 원리금의 최고 70%를 감면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방안은 이미 금융기관들이 재산조사 등 1차 회수를 시도했지만 회수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고 상각채권 원리금의 70%를 감면하는 합리적 대책이지, ‘도덕적 해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는 10월22일치 사설 ‘빚 갚는 사람 바보 만드는 정부’에서 “은행빚이나 카드빚을 정상적으로 갚아나가는 사람들을 바보 취급하는 듯한 풍조”라고 비난했다. 이런 비난 속에서 10월30일 캠코는 원금 감면폭을 일부 금융기관들의 자율협약기구인 신용회복지원회와 같은 수준인 30%로 낮추는 등 원리금의 최대 50%로 감면폭을 낮추겠다고 발표했으나 <매일경제>는 11월2일치 사설 ‘신용사회 흔드는 빚 탕감책’에서 “선심성 빚 탕감 … ‘해 볼 테면 해봐라’는 식의 악성 채무자 양산”이라고 힐난했다.

채무 감면의 대상이 상각채권이라는 사실은 아예 언급도 하지도 않은 채 도덕적 해이 타령을 해대고 있는 것이다. 캠코 대책이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줄 알고 ‘배째라’고 자리를 펼친 신용불량자가 있다면, 그 책임의 상당부분은 캠코가 아니라 언론이 져야 한다.
캠코 대책이 ‘배째라’ 신용불량자 급증으로 이어져 카드사 위기를 부추겼다는 통계적 증거도 불명확하다. 신용카드 관련 신용불량자는 10월말 228만3,319명으로 9월보다 7만8,966명 증가했다. 이는 8월말과 견줘 9월 한 달 동안 늘어난 신용카드 관련 신용불량자 8만589명보다 오히려 더 적은 규모이다.
전체 신용불량자 증가인원에서 신용카드 관련 신용불량자 증가인원이 차지하는 비중을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이 비율은 7월말 70.30%, 8월말 81.04%, 9월말 90.08% 등 증가세를 보이다가 10월말 83.76%로 되레 하락했다.

* 엘지카드의 지나친 사업 확장 탓

문제의 핵심은 엘지카드가 지나친 사업 확장을 하다 자본 조달과 상환에 어려움을 겪으며 ‘빚 내어 빚 갚는’ 악순환 속에서 유동성 부족에 빠졌다는 데 있다. 실제로 채권단의 지원 이전에 엘지카드를 부도 직전까지 몰아간 것은 엘지카드가 자본 조달을 위해 매출채권을 담보로 발행한 약속어음 3,015억원 어치였다.

교보생명이 11월21일 이 약속어음의 지급을 요구한 것이 엘지카드 사태를 촉발시켰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이 약속어음은 27일에야 겨우 결제됐다. 현재 엘지카드의 채무는 카드 매출채권을 담보로 발행한 자산담보부증권(ABS) 7조2,902억원(이중 절반이 제2금융권 보유), 카드채 6조6,843억원(이중 제2금융권 2조8,829억원 보유), 대출차입 4조7,200억원 등 21조원에 이른다. 특히 ABS와 카드채, 기업어음 가운데 만기가 1년 미만인 단기채 비중이 50%를 웃돌 만큼 자금구조가 취약하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0월8일 카드사 숨통을 트여주기 위해 연체율을 적기시정조처 적용기준에서 배제하거나 현행 10%에서 15%로 높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10월부터 구본무 일가는 엘지카드 주식을 꾸준히 팔아치웠다. 그러면서 뻔뻔스럽게도 신용불량자 책임론을 내뱉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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